brunch
매거진 TaPick

내 돈 주고 산 e북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TaPick #57

by 팀어바웃

1. 얼마 전 예스24 해킹 사건이 큰 화제가 됐습니다. 무려 6일간이나 서비스가 마비되면서 수 많은 사용자들이 공연 관람에 차질을 겪거나, 쇼핑을 하지 못하거나, 돈 주고 산 e북을 읽지 못하는 황당한 경험을 했는데요. 특히 디지털 콘텐츠에 접근이 아예 불가한 사태를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구매=소유'라는 개념이 디지털 세상에서는 얼마나 무력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렸습니다.


2.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e북을 '소유'한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서점에서 책을 사면 그 책은 온전히 내 것이 되어 책장에 꽂아둘 수 있지만, e북은 다릅니다. 대부분의 플랫폼에서 우리는 e북 자체가 아닌 '사용권'만을 구매합니다. 파일은 플랫폼 서버에 저장되고, 우리는 그저 인터넷을 통해 접속할 권한만 얻는 셈입니다. 플랫폼이 다운되면 돈 주고 산 책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는 저작권 보호라는 명분 하에 도입된 DRM 기술의 결과물이지만, 소비자에게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3. 이런 현상은 e북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넷플릭스의 영화, 스포티파이의 음악, 스팀의 게임까지 우리 일상을 둘러싼 디지털 콘텐츠 대부분이 '구독' 또는 '라이센스' 모델로 운영됩니다. 우리는 소유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일시적 사용권만 획득한 것입니다.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약관이 변경되면 언제든 접근이 차단될 수 있는 불안정한 소유권인 셈입니다. 미국 법학 교수 애런 페르자노프스키가 2016년 저서에서 "우린 단지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허락'을 받은 것"이라고 지적한 이유입니다.


4.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변화가 소비자 권리의 근본적 약화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물리적 책은 중고로 팔거나 친구에게 빌려줄 수 있지만, e북은 그럴 수 없습니다. 플랫폼이 서비스를 중단하면 수십 년간 모아온 디지털 라이브러리가 하루아침에 증발할 수도 있습니다. 소유권의 핵심인 '처분권'과 '영속성'이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는 편의성을 얻은 대신 소유의 실질적 권리들을 포기하고 있는 셈입니다.


5. 예스24 사건은 우리가 디지털 전환의 이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경고등입니다. 기업들은 '구매'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실제로는 임시 사용권만 제공하고 있고, 소비자들은 이런 구조적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채 기존의 소유 개념에 갇혀 있습니다. 앞으로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시대에서 우리는 진정한 소유권을 어떻게 보장받을 것인지, 그리고 디지털 자산에 대한 새로운 권리 개념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단순한 해킹 사건이 던진 질문은 생각보다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https://www.thescoop.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6280


하루 하나의 뉴스, 하루 하나의 명화로 당신의 하루를 더 풍요롭게❤️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Las Meninas), 1656.

1750754884886?e=1756339200&v=beta&t=9uucgQQIaOlvp2ZYYaPWbc17YbS7pxNaND2K-Tn5gk4


잘 읽으셨다면 클립 & 구독, 팀어바웃의 링크드인 페이지를 방문해주세요!

팀어바웃 링크드인

스타트업을 위한 풀코스 PR 파트너, 팀어바웃 홈페이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파는 자만 넘쳐나는 유통업계의 러시안룰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