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후가 되면 통통한 알밤이 잘 익어간다. 밤나무 아래를 지나면 언제 떨어질지 모르게 입을 잔뜩 벌린 밤송이들이 그득하다. 발아래의 알밤만 찾다가는 제 자식 주어간다며 밤나무의 호된 꿀밤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이런 밤이 그득 하면 나는 조림을 한다.
밤 조림은 간단하지만 손이 많이 간다.
1. 알밤의 겉껍질만 벗겨내어 벌레 먹은 밤을 골라내고, 베이킹소다에 담가 하룻밤을 담가둔다.
2. 속껍질은 남겨두고, 밤 사이사이의 심을 적당히 골라낸다.
3. 밤이 잠길 만큼의 물을 넣고, 중약불로 30분 정도 끓여준다.
4. 찬물에 담가 조심스레 씻어내고, 중간중간 밤 사이의 심을 골라내어 준다.
5. 이 과정을 3번 이상 반복한다.
6. 마지막으로 삶아낼 때 밤 무게 정도만큼의 설탕을 넣어준다. 1시간 정도 중약불로 졸여준다.
7. 10여분은 남기고, 간장 2스푼과 럼, 와인 등 풍미를 더할 술을 한 잔정도 넣어준다.
8. 열탕 소독한 병에 담가 냉장 보관 후 즐긴다.
9. 2-3개월 정도 보관 가능하다.
하루에 끝나는 법이 없다. 최소 1박 2일의 프로젝트로 실행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간식이다. 겉껍질도 벗겨내야 하는데, 이때 속껍질은 최대한 그대로 남겨두어야 오래 삶았을 때 모양이 부스러지지 않는다. 베이킹소다에 담그고, 삶아내고, 속껍질의 심을 이쑤시개로 잘 제거하면 속껍질을 함께 먹어도 떫거나 하지 않다. 달콤하고 달달한 겨울 간식이 되는 것이다. 차나 커피와 함께 먹으면 좋다. 겨울밤이 더 운치 있어진다. 손이 많이 가지만 그만큼의 달콤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간식이다. 하지만 우리 집 사람들은 아무도 이 밤조림에 손을 대지 않는다. 겨우내 냉장고에 고이 모셔져 있던 밤조림은 봄이 되면 버려진다. 심지어 나도 이 간식을 입에 대지 않는다. 그리고 가을이면 또 밤을 사러 간다.
내가 밤 조림을 시작한 건 몇 년 되지 않았다. 처음 접한 간식이기도 했고, 그동안 이렇게 오랜 시간을 공들일 간식을 만든다는 것은 내 성격과 맞지 않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매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밤조림할 생각이 가득하다. 올해는 어떤 방식으로 해볼까? 어떤 술을 넣어볼까? 참 이상도 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 동생에게 주고 싶어 밤조림을 한다. 우습게도 나와 내 동생은 어려서 밤조림을 먹어본 적도, 아니 들어본 적조차 없다. 밤조림에 대해 둘의 추억은 단 하나도 없다. 그런데 밤 조림을 하는 1박 2일 동안 나는 동생 생각을 한다.
'요거 해서 동생과 함께 먹어보고 싶다. 요거랑 커피 한잔 하는 것도 괜찮겠네.. 이제는 이런 간식 먹어도 되겠지.'
아! 동생은 10살 때부터 소아당뇨를 앓아 평생을 달달한 간식을 맘 편히 먹어본 적이 없다. 뭐 지금이라면 먹는다고 어찌 될 일도 없으니.. 가능만 하다면야 김치냉장고 한가득도 만들어 줄 수 있는데. 평생을 단 음식을 제대로 먹어본 적도 없고, 하물며 함께 한 추억도 없는 간식을 만들면서 동생 생각을 하는 것도 우습기도 한데. 몇 년째 밤조림을 하고, 동생을 떠올린다.
찬바람이 불고, 얼음이 얼기 전에 우리는 동생을 보냈고, 내게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문턱은 유난히도 그냥 넘기기가 어렵다. 이제 10여 년이 흘렀음에도 상실감은 채워지지 않는다. 내가 밤조림을 만드는 것은 동생에 대한 애도의 표현인지 모른다. 밤을 고르고, 껍질을 벗기고, 삶고, 또 벗겨내고, 조리고, 식히는 손이 많이 가는 간식이 오히려 내겐 동생을 그리워하고, 아파하는 시간인셈이다. 또다시 10년이 지나도 나는 밤조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된다 하여도 이 상실감을 메꿀 수는 없겠지만, 지금의 외로움과 아픈 상처에는 어느 정도 딱정이가 앉아 있지 않을까?
오늘도 난 동생을 닮은 밤을 사러 가야겠다.
사진출처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2470938&memberNo=35667439&vType=VERTIC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