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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Oct 08. 2023

두 마리의 늑대

https://brunch.co.kr/@dalda-grim/56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일까? 이타적인 동물일까? 유사 이래로 이에 대해 인간은 스스로 질문해 왔고, 성선설, 성악설등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깊이 있는 철학적 사고를 해 오기도 했다. 나름의 결론들이 있지만 수학 문제만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닌 것도 같다. 인간은 착하게만 태어난 것도, 악하게만 태어난 것도 아닌 것 같다. 어느 현명한 인디언은 이렇게 손자를 가르쳤다고 했다. 


- 네 안에는 두 마리에 늑대가 살고 있단다. 너를 선한 길로 이끄는 하얀 늑대와, 너를 악한 길로 이끌려하는 검은 늑대가 항상 마음속에서 살고 있단다. 하얀 늑대가 이길 때 너는 착하고 선한 일을 행하게 되고, 반대로 검은 늑대가 너의 마음을 차지하면 악하고 나쁜 일들을 스스럼없이 하게 되지 그 늑대들은 항상 너의 마음속에서 싸우고 있단다. - 

- 할아버지 그러면 어떤 늑대가 이기게 되는 거예요? -

- 그건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항상 이긴단다 -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했다. 삼일을 굶으면 담장을 넘지 않을 이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나쁜 일에 유혹되기 쉽다. 특히 생존에 관련된 일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평화에 우리는 슈퍼마켓을 약탈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쟁 중이라며, 우리는 하루를 더 버티기 위해, 돈이 없어도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쳐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나라면 그럴 것 같다. 생존에 관련된 문제에 윤리 규범이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먹고살아남아야 한다는 명제는 선악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그 경계를 흐리게 한다. 생존을 위해 이제껏의 규범, 윤리, 법, 도덕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극단적으로 생각해 선악의 선택은 개인의 몫이라고도 할 수 있다. 스스로 선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순수악을 선택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사람이라면 이기적으로 살 수는 있을지언정 순순악을 표방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믿는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타인과 어울려 살아야 하기에 의도적으로 갈등을 만들지는 않는다. 부족하고, 모자라고, 불편하기에 타인의 것을 빼앗고, 내가 누리기 위해 갈등이 발생한다. 갈등은 결핍에서 비롯된다. 결핍으로 불편이 생기고,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갈등이 발생한다. 스스로 갈등의 상황까지 이르지 않기 위해서는 불편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불편은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스스로 불편을 감수하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도덕적, 윤리적인 사람에 가깝다 말할 수 있다. 인간의 도덕과, 윤리가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행동을 말하며, 이는 갈등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다. 도덕적, 윤리적 인간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다. 스스로의 통제는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은 항상 스스로를 점검하고 통제하며, 그것들을 인내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언제든 건널 수 있는 선을 스스로 지킨다는 것만큼 강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경쟁보다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려운 일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매년 시작되는 3일의 약속과, 매주 다시 시작되는 다이어트, 금연의 약속들은 타인과의 약속과 경쟁보다 스스로가 정한 선을 지킨다는 것이 더 어려운 일임을 알게 한다. 도덕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 어떤 의미의 강자임은 분명할 것이다. 


삶에서 타인을 핍박하고 괴롭히는 사람은 스스로마저 통제하지 못하는 약자와도 같지만 강자처럼 묘사되고, 사회와 스스로의 규범을 지키는 사람은 약자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더 잦아진 것 같은 분위기가 단순한 나의 착각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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