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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Nov 10. 2023

<窓 ;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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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30여 년 전 고등학생 무렵 참여한 시화전이 있었다. 내 글의 제목은 <窓 ; 창> 이었다. 

한 소년이 창밖의 세상을 동경해 결국 창 밖으로 나가는 결심을 한 내 글은 실상 죽음을 동경하는 나르시즘에 가까운 글이었다. 예뻐 보이는 글이었지만 나는 죽음을 동경했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꽃을 사 오려거든 하얀 국화를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여담이지만 흰 국화를 송이로 파는 꽃집이 많지 않은 터라 흰 국화는 몇 송이 걸리지 못했다. 


죽음을 동경했던 이유는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단순한 사춘기의 감성이었을까? 윤회에 대한 믿음과 호기심이었을까? 아니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함일까 모르겠다. 죽음을 갈망할 만큼의 힘들과 어려운 기억이 없었음에도 나는 죽음을 습관적으로 찬미하는 남들은 모르는 독특한 취미가 있었더랬다. 그 당시 끄적이던 글들엔 이스터에그처럼 죽음에 대한 메시지를 감추기를 좋아했고, 아무도 찾지 못했지만 혼자서 만족해했다. 


20여 년쯤 흘러 나는 가족의 죽음을 직접 경험을 했고, 인식과 경험의 차이를 그 후 10여 년 동안 함께하고 있다. 죽음은 생각보다 다르고, 생각보다 빨랐고, 생각처럼 아름답지 않았고, 생각만큼 편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나는 죽음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남겨진 자를 경험했기에 그럴지 모른다. 


죽음을 찬미하면서 나는 남겨진 자를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사춘기란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못하는 시기라 믿고 있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생각할 줄 안다면 사춘기는 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기에. 오로지 자신만에 집중하는 시기가 사춘기이기에 나는 죽음과 그 곁에 남겨진 자를 바라보지 못했다. 


창밖을 동경하고 창밖으로 나가는 결심을 했던 소년을 그 창밖을 바라보는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가족들을 인지하지 못했고, 남겨질 가족을 떠올리지도 못했다. 단 한숨의 시간만큼이라도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기에 그 소년은 창밖의 세상을 동경했는지 모른다. 


남겨진 자


원해서가 아니라 남겨져 버린 사람들이다. 원하지 않은 자리에 던져진 사람들은 그 자리를 단 한 번도 원한 적이 없다. 그저 남겨지고 버려져 고통받을 뿐. 

창 밖을 바라보는 소년은 그럴 의도야 없었겠지만 남겨진 자들은 자신들의 모든 행동들을 후회하고 반성해야 할 형벌이 따른다. 자신들의 모든 행동들을 의심하고 후회하는 삶이 주어진다. 


-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 


하지만 남겨진 자들은 끊임없이 의심하며 살아간다. 


- 정말 내가 잘못한 것이 단. 하나도 없을까? - 


죽음은 생각과 같지 않다. 생각해 왔던 모든 것들 모다 생각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로 가득하다. 

나는 남겨진 자들을 만들지 않기 위해 산다. 


남겨진 자들의 고통을 알기에 버티며, 죽음이 아닌 삶의 의미를 찾으려 애쓴다. 


그 아름다워 보였고, 예뻐 보였던 창밖의 세상을 이제는 동경하지 않는다. 

나의 창은 10년 전에 닫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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