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반려 생물들이 참 많이도 다녀갔다. 아이가 셋이다 보니 하고 싶은 것도 외동아이에 비해 세배쯤 되나 보다. 큰 아이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 해서 강아지가 두 마리. 작은 아이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 했지만 아직까지는 보류. 막내는 가리지 않고 마음에 들면 무조건 키우자고 조른다. 하긴 5살 꼬맹이가 뭘 알겠냐 싶다. 되도록 많은 경험과 돌봄에 대한 책임을 알려주고파 가능하면 시도해 보는 편이다.
우리 집을 거쳐간 반려생물들을 세어 보자면 음
1. 구피가 한 4-50마리쯤
2. 시골에서 부화해 보라며 보내주신 유정란에서 나온 병아리가 5마리
3. 막내가 좋아하는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를 할아버지가 잡아주셔서 7마리
4. 무지개다리를 건넌 포메라이언 한 마리
5. 현재 동거하고 있는 시츄, 말티즈 한 마리씩
이상이 움직이는 생물이라면
6. 금전수 한 그루
7. 고무나무 한 그루
8. 파리지옥 몇 그루(?)
9. 허브 나무 하 그루
10. 이름도 기억 안나는 공기 정화 식물 한 그루
11. 애플 트리 한 그루
12. 철마다 심고 죽이길 반복하는 허브 씨앗들 다수
이렇게도 많은 생물들이 우리 집을 거쳐갔다. 그중 아직도 숨이 붙어 있는 녀석들도 있지만 시츄와 말티즈를 제외하고 모든 동물들은 명을 달리했다. 부화한 병아리는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잘 돌봐주다 다시 시골 밭으로 보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밭에 가보니 병아리는 사라지고 깃털 몇 개만 남았다고 하셨다. 아마 산짐승의 귀중한 한 끼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 후로 아버지는 새로이 닭장을 하나 만드셨는데 이번엔 야생짐승이 들이닥치지 못하도록 튼튼히도 지으셨다. 여기에 지금 자라고 있는 닭은 일대일로 마주하면 겁이 날 정도로 덩치가 크다.
농사를 지으시는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을 거라 믿고 식물 키우기에 대해 감이 있을 거라 여겼지만 나는 이상하게 도시촌놈 같다. 키우는 족족 식물들이 말라가고 성장이 더디고, 웃크거나 한다. 일조량이 부족해서 인가 싶기도 하고, 영양제가 부족한가 싶기도 해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데 잘 안된다. 그간 씨앗부터 틔우기를 시도했는데 그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다 너무 외롭다 싶어 알로카시아 한 뿌리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모든 인터넷으로 다 살 수 있는 세상 편한다.
알로카시아 한 뿌리를 조금 넉넉한 화분에 분갈이를 하고는 관심 있게 지켜보기로 했다. 식물은 관심을 가지면 더디 크는 것 같고, 너무 방치하면 쑥쑥 자라는 것 같다. 알로카시아를 볕 잘 드는 창가에 두고는 아침저녁으로 살폈다. 이번엔 꼭 제대로 키워 더 큰 화분으로 이사를 시켜줘야지 하는 목표도 잡았다. 택배로 온 아이치고는 생기 있어 보여 다행이다. 손바닥보다 넓은 잎에 아침으로 이슬이 맺히는 걸 보고 있으면 그래도 제대로 자라는 것 같다. 어릴 때 배웠던 증산 작용이 이건가 싶다. 밤에는 식물들이 수분을 배출한다였나? 그랬던 것 같다.
한 달쯤 지났는데 자라는 듯 아닌 듯 영 지지부진하다. 슬슬 쳐다보는 횟수도 적어지는 것 같다. 이러다 또 한 그루 마른 화분을 치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화분 겉흙이 마른 듯하여 목이나 적셔주자 싶어 화분을 드는 데 줄기 사이로 새순이 삐죽 솟아 나온 게 보인다. 분명 어젯밤에도 못 본 것 같은데. 밤새 자란 건가? 그러기엔 많이 큰 듯도 하고. 내가 관심을 잃을까 봐 잘 살고 있다. 잘 크고 있다. 손을 내민 것 같다.
순간 그냥 울컥했다. 마치 그간의 내가 돌봐준 밥값을 하겠다는 건지 새순을 내미는 것도 대견하고, 그래도 이렇게 돌볼 수 있는 수준이 된 나도 기특하고, 나이가 들어 청승맞아진 건지. 작은 일에 괜히 눈물도 나고 상념에 빠지기도 하고 그런다. 요즘은 작은 일 하나하나에 성취감을 느껴보고자 노력한다.
[오늘 하루도 잘 버텼어 잘했어]
[오늘은 집 청소도 잘했고, 아이들 공부도 많이 봐줬어 잘했어]
[아침엔 운동도 했고, 약도 빠지지 않게 잘 챙겨 먹었어 잘했어]
[오늘은 화를 한 번도 안 냈어 잘했어]
[오늘도 글을 한 편 썼어 잘했어]
나는 잘했어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 같다. 스스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 잘했어라는 이 말이 듣고 싶은 것 같다. 그리고 솟아난 새싹이 마치 나에게 "참 잘 돌봐주었어요"라는 도장을 찍어준 것 같아 아침부터 청승맞게도 울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