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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Feb 06. 2024

김루미와 전부

살아오면서 이상하게 잘 잊혀지지 않는 인연들이 있다. 아니 인연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겐 김루미와 전부 이 두 사람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내가 1991년도 혹은 92년도의 일이다. 초등학교 5-6학년쯤의 일로 기억한다. 여름 방학을 맞아 시골의 큰집으로 놀러 갔다. 같은 지역이었지만 우리 집은 그래도 시내 쪽에 살고 있었고, 큰 집은 좀 더 농촌지역이었다. 큰집과 외갓집이 한 동네라 간혹 겸사겸사 놀러 가곤 했다. 내가 방문했던 그해는 큰 집 동네에 이상하게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평소에는 아저씨들 밖에 보이지 않았던 곳인데 다니는 족족 젊은 형 누나들이 한껏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잘 기억도 나지 않는 깃발들을 항상 들고 다녔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모습에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동네 어른들이 내게 어느 대학에서 농활을 나왔다고 알려 주셨다. 


당시는 농활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도 잘 몰랐지만 그저 농촌 봉사 활동쯤으로 생각했다. 나는 논두렁 밭두렁을 다니며 형, 누나들이 일을 하는 것을 물끄러미 구경하느라 바빴다. 그러다가 심심해지면 동네 개울로 가서 피라미를 잡으며 놀았다. 


하루는 형, 누나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저녁에 마을 회관에서 회의가 있다고 오시면 좋겠다고 어른들을 초대하였다. 


"근데 저는 여기 안 살아요. 잠깐 큰 집에 놀러 온 거예요"

"그래도 괜찮아 꼬마야. 저녁에 잠깐 와서 우리들이랑 놀다 가, 맛있는 것도 많이 준비했어"

"그럼 큰어머니께 여쭤볼게요"

"그래 우리가 6시쯤 데리러 올게"


큰어머니께 여쭤보니 다녀와도 괜찮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저녁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아까 내게 말을 걸어주던 누나에게서 달콤한 냄새가 났던 것 같았다. 기분이 두군 거렸다. 


형들과 동네 아저씨들은 방 안에서 막걸리를 드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셨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의 내용들은 관심도 없었고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나중에 내가 대학을 가서 겪은 농활과 다르지 않다면 대략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 것이고, 어린 내가 당연히 이해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을 이야기였을 것이다. 


나는 농활을 온 누나와 함께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안녕. 내 이름은 김루미야. 별명은 두루미고. 유치하지 ㅎㅎ"

"안녕하세요... 저는 성준입니다.."

귀까지 빨개지면서 더듬더듬 내 이름을 알려주었다. 기억 속에서 누나와 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 학교를 다니고, 몇 학년이고, 이곳에 대한 감상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었었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커서 서울로 오면 연락도 하라고 했었다. 이것이 정말 나의 기억인지, 편집된 내용인지는 가물가물하지만 그 시절 농활에서 만난 '두루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김루미라는 여인을 나는 그 뒤로 꽤 오랫동안 기억하게 되었다. 


과거의 일기장을 들쳐보면 김루미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그 짧았던 만남이 나에게는 꽤나 강렬하고 인상 깊었던 추억이었다. 종종 미래를 꿈꿀 때면 나중에 대학을 가서 김루미를 찾아가 본다라는 위시리스트가 있을 정도였다. 지금도 그 이름만은 잊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 여인을 단 하루 몇 시간을 만난 게 전부이며, 솔직히 지금은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만화에서 종종 얼굴에 "?"를 단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내게 김루미라는 존재는 그런 존재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 김루미라는 이름의 여인은 꽤나 내 추억 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몇 안 되는 존재 중의 하나다. 


내가 12-13살 때 대학생이면 나와 대략 10살 정도 차이가 났을 터, 지금이면 50대 중반이 되어 있겠다. 30년도 지난 단 하루의 이야기인데 왜 나에겐 이렇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일까? 난 이 이야기를 30대 초반까지는 그리 자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 초반에 만난 한 아이가 나에게 이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여름휴가로 동창과 함께 홍천강으로 천렵을 갔다. 시골 출신인 우리들이 노는 여름휴가법이었다. 물고기가 있을 곳에 어항을 놓아두고,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는 잡은 피라미를 즉석에서 튀김으로 먹으려 하고 있었다. 우리보다 하류에서 놀던 아이들이 물고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왔다. 대략 7-8명의 아이들이었다. 서울말을 쓰는 걸로 봐서 어디 학원 같은 곳에서 단체로 소풍을 나온 건지로 모른다 생각했다. 그중 붙임성 있는 아이들이 우리가 노는 게 신기했나 보다. 


"아저씨 뭐 하고 있어요?"

"아저씨는 피라미 튀김을 하고 있지요"

"그거 맛있어요?"

"왜? 한번 먹어볼텨?"

"그래도 돼요?"


꽤 많은 수의 피라미를 잡았기에 아이들에게 한 두 마리씩 입어 넣어주었다. 낯선 음식이라 거부할 것도 같은데 곧잘 받아먹고는 자기들끼리 깔깔 거리며 웃는 폼이 좋았다. 아예 아이들은 우리 근처에 자리를 잡고, 함께 놀기 시작했다. 우리도 신이 나 아이들을 물속에 던지기도 하고 물싸움을 하기도 하며 한바탕 놀아주었다. 


"아저씨 저는 전부예요"

"뭐가 전부야?"

"아니야 이름이 전부라고요. "

"그래? 무슨 전부?"

"성이 전이고 이름이 부에요 반포자이 아파트에 살아요" 

"아 그렇구나 좋은 곳에 사네 반포자이에 살고 있는 전부~"

"네~"


붙임성 있던 아이가 와서는 자신의 신상정보를 한바탕 읊고 간다. 아이들은 한바탕 신나게 놀고는 관장님이 부르신다고 다시 가버렸다. 태권도 도장에서 놀러 왔단다. 


나는 한동안 전부를 기억했다. 이름이 특이해서일까? 사는 곳을 스스럼없이 밝혀서였을까? 아니면 그 둘다 기억이 남아서였을까. 각인되었다. 그리고는 김루미가 함께 떠오르곤 했다. 그 사람도 나처럼 나를 놀아줬겠지? 그 사람의 눈에도 내가 전부처럼 순수하고 귀엽게만 보였겠지? 같은 생각을 했다. 


김루미와 전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김루미를 떠올릴 때면 아찔한 사춘기의 기억들이 함께 떠오르고, 전부를 떠올릴 때면 뜨거웠던 강가의 태양과 시원한 물놀이가 있었던 여름날이 함께 떠오른다. 아마도 그 두 사람은 나를 기억조차 못 할 것이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일조차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내겐 왠지 모를 아련함에 함께 남는 기억이며 인연이다. 김루미와 전부. 모두 잘 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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