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이 있으니 밤이 있다. 빛이 있으니 어둠이 생기는 것처럼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이치다. 자연의 순리가 그러하고 우리의 삶이 그러하다. 허나 내게 있어 밤은 낮과 다른 장소가 된다. 단지 빛이 사라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공간은 전혀 다른 곳이 된다.
우리의 삶은 낮과 밤, 두 공간 속에서 살고 있고
그 삶은 두 세계의 교차점에서 펼쳐지는 향연의 연속이다.
빛과 함께 하는 공간은 생명력이 가득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하늘을 향한다. 바람에 흩날리는 잡초마저도 낮의 그 시간 동안에는 살아 숨 쉬는 듯하다. 낮의 에너지는 온통 외부로 발산된다. 그 생명력이 빛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 안으로 녹아든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들은 더 이상 에너지를 발산하지 않는다. 뿌리 아래로 깊숙이 더 깊이 파고들어 간다. 빛이 사라지는 순간 목표를 잃은 듯, 흩날리는 모습마저 자신을 지키려는 듯 보인다. 낮동안의 에너지를 내면에 차곡차곡 쌓아두려는 것처럼, 가만히 가만히 숨을 죽인다.
단지 빛이 사라졌다는 사실만으로,
집중의 방향이 역전되어 버렸다.
좀 더 깊은 곳, 낮에는 찾아보지 못했던 곳, 더 깊은 심연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더듬어 간다.
어둠 속에서의 모험은 속도가 느리지만,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동원해 더 깊은 곳까지 더듬고, 귀를 기울여간다. 미처 빛에 가려져 그 역할을 하지 못했던 다른 것들의 외침인지도 모른다. 낮은 보이는 세계의 모험이고, 밤은 느끼는 세상의 모험이다.
그래서 나는 두 개의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셈이다.
미처 알지 못해도 이미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에너지는 결국 나를 벗어나 나른 곳에 머물지만, 우리는 어둠을 통해 다시 그 에너지가 다시 우리 안으로 축적된다. 굴레처럼, 수레바퀴처럼 빛에서 어둠으로, 낮에서 밤으로, 밖에서 안으로 그렇게 소용돌이친다.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극과 극을 경험한다. 두 세계 사이에서 변하고 자란다. 밤이 내려앉으면, 에너지는 내면으로 회귀하여 탐색하게 만들고, 낮에는 미처 몰랐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다. 밤에서 우리는 집중하고, 성찰한다.
빛에서 어둠으로 낮에서 밤으로
우리는 넘나들며 살아간다.
무한한 순환 속에서 나무의 나이테가 켜켜이 쌓이듯 우리는 흔적을 남기고 결을 세긴다. 삶은 그렇게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나는 오늘도 이 밤을 더듬어 찾아간다. 오늘 하루만큼 자란 나의 나이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