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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Mar 20. 2020

강천보에서 만난 일상

역병을 피해 좀 더 멀리 가기로 했다. 집에서 한 시간을 달려 여주 강천보에 도착했다. 

내가 하는 생각은 다른 사람도 곧잘 할 수 있는 수준인가 보다. 평일임에도 주말처럼 사람들이 많았다. 

실은 오랜만에 오는 강천보라 요즘 어떤지 잘 알지 못한다. 

그래도 짐작컨대 개학이 연기되어버린 지금 아이들과 그나마 안전한 장소를 고르려 애쓴 결과가 여기라 생각한다. 


차량의 통행은 없고, 넓은 면적이라 주위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으며, 어느덧 봄이라 햇살도 제법 따스하다. 낙차를 따라 부서지는 물보라와 소리는 답답한 마음에 조금은 위안이 된다. 


점심 식사 후의 짧은 산책 겸 피크닉을 마치며, 잠시 편의점에 들렀다. 

잠든 아이를 팔에 안고 있던 나는 유모차를 지킬 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와이프는 아이들과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아니 내가 이긴다니까요~-

-뭐 갸들은 그렇게 말 안 하던데?- 

-그거야 그렇게 입 맞추고 말하니까 그리 말할 수 있는 거고요 다이다이 붙으면 내가 빠르다니까요-

-정말이여?-

-이번에 내가 58분대로 들어왔는데 참말로-

-그럼 한 번 하던가 10만 원 빵으로 -

-허~ 참 그려요 해요 해- 


누가 봐도 자전거를 타시는 두 아저씨들이 다투고 있다. 

바람결이라 매끄럽게 들리지는 않지만 당신이 얼마나 빠른지를 증명하고 싶은 것 같다. 

이제는 돈내기까지 이어졌다. 


정말 순수하게 속도를 경쟁하고 싶은 건지, 장비를 자랑하고 싶은 건지, 혹은 자존심 때문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조금은 목소리를 높여가며 자신이 얼마나 빠른지를 증명하고 싶어 했다. 


-이거 이번에 산거요?-

-이거 얼마 안 줬어 40만 원-

-어이구... 돈지랄은...-

-뭠 마?!- 

-그래도 내가 빠르다니까요-

-너 갈 때 해 나랑 10만 원 빵- 

-그려요 하자구요 나중에 딴 소리나 말아요-


샅바를 당기듯 거칠게 음료수의 뚜껑을 물어 열고는 목을 축인다. 

자전거화를 페달에 연결하고는 강변을 따라 시원하게 뻗어있는 도로로 나섰다. 나서는 순간에도 누가 떠 빠른지의 논쟁과 10만 원 빵의 내기를 끝나지 않았다. 


부서지는 물소리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인파와 평소와 다름없는 사내들의 작은 자존심 싸움을 보고 있자니 지금이 역병으로 고생하는 시기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사람들의 얼굴을 반 넘게 가린 마스크만 없었다면 꿈이라 여겨도 될 법한 일이다. 정말 잠시나마 일상으로 돌아온 듯했다. 



많이 지친 요즘이지만 오늘 같은 날씨에 강천보에서라면 마스크 안의 얼굴도 살며시 미소 지어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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