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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ul 16. 2024

제10화_주하의 답장

성준은 그것이 우연임을 알고 있었다. 첫 번째, 안개를 담았던 때. 그리고 두 번째 정희 씨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담은 안개. 모두가 본인의 노력이 아님을 어렴풋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방법을 바꾸지 않고서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안개를 담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정희 씨와 함께 담았던 안개는 텀블러에 고이 담아 잘 숨겨두었다. 성준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좋은 것, 소중한 것은 잘 숨겨놔야 한다는 것을.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도 그랬고, 성인이 되어 조직 생활을 할 때도 그랬다.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것들은 서로 차지하려 속고 속였다. 성준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이골이 났다. 그래서 안개를 담은 텀블러 아무도 모를 법한 곳에 몰래 감추었다. 


아니나 다를까. 외출하고 돌아온 성준의 오두막은 좀도둑이 들었다. 몇 개 있지도 않은 짐들이 흐트러져 있었고, 텀블러처럼 생긴 모든 것들을 뒤진 듯 어지러워져 있었다. 


"하.. 내가 뭐랬냐? 인간 다 악하다 그랬지? "


성준은 마루 바닥을 한 장 제치고 그 아래 감춰진 텀블러를 열어보았다. 반짝이는 안개가 잘 담겨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묻어 두었다. 마루 바닥은 이음새가 보이지 않게 잘 마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처음에는 외부에 감추려 했지만, 숲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켜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차라리 집안에 감춰 두기로 했고, 마루 한 장을 뜯어 비밀 공간을 만들어 둔 것이다. 


설마 이런 곳에서도 다른 사람의 것을 탐할까? 싶기도 했지만, 감춰두길 잘했다. 인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또 배웠다. 성준은 이 현실이 다행이면서도 씁쓸했다. 내심은 자신이 틀렸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남쩡~ 그 옷 좀 잘 포장해 봐 봐."

"옷? 배냇저고리? 그건 왜요? "

"그 옷 내가 전해주려고. 그러려고 안개 모은 거니까.."

"... 정말요? 고맙긴 한데.. 그렇게 써 버려도 괜찮겠어요? 그렇게 고생해서 모은 안개인데? "

"맘 바뀌기 전에 포장이나 해놔. 이렇게 라도 쓰지 않으면 누가 아주 내 집을 홀라당 태워 버릴 것 같단 말이야"

"무슨 말이에요?"

"아냐 그냥 기분이 그렇다고."

괜히 다른 사람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다. 아니 남쩡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냥 아무도 믿을 수는 없지만. 안개를 모으기 위해 했던 약속을 어기자니 왠지 찜찜했다. 그냥 넘어가면, 다음번에는 아예 모으지 못할 것 같았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생각했다 지만, 그 문제는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성준은 매번 그랬다. 뭐든 닥쳐서 해결하는 버릇이 있었다. 어린 시절 자신이 꿈꾸고 계획하는 일들은 제대로 되는 것들이 없었다. 아니 시도조차 해 볼 수 없는 상황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성준에게는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었다. 스스로가 하루 살이 같다고 생각했다. 


"나도 여기 들어온 지 꽤 되었고, 그 친구가 어떻게 사는지 몰라요. 들어오기 전까지는 여천에 살고 있었어요. 여천 용기 초등학교 근처에 살았어요. 이사 갔는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어요? "

"몰라. 어떻게 되겠지 뭐. 여천 초등학교 근처에 산다라... 혹시 그 친구는 SNS 같은 거 안 해? 그리고 혹시 둘만에 암호 같은 거 없어? 뜬금없이 내가 가서 남쩡 친구라고 해봐야 의심만 할거 같은데?"


"ㅎㅎㅎ 그러네요. 나라도 납치당하는 줄 알 거야. 만나주지도 않을걸요. 성준 씨 같은 사람은? 음... 내가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한 말이 있기는 한데.. 그거는 우리 둘만 했던 대화니까.. 기억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해요.."

"뭐.. 그래 그럼 그거라도 알려줘.."


용기 초등학교를 찾아가는 것 까지야 일도 아니었다. 저번에 받은 골드바 하나를 장물로 팔아버린 덕분에 현금은 넉넉히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돈이 있다고 사람이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성준은 골치가 아팠다. 여기까지 오는데 벌써 텀블러 1/3이 비어버렸다. 돌아가는데 필요한 양을 계산하면. 반나절 안에는 친구를 찾아야 한다. 


친구의 이름은 주하였다. 이름은 안다고 어디서 찾을까.. 벌써 시간은 점심이 지났다. 예전 인스타를 했다고 하는데 아직도 할까 모르겠다. 배도 채울 겸 피씨방에 들러 예전 아이디를 검색했다. 다행히 인스타는 뜨문뜨문 올라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남정희 씨 친구입니다. 남정희 씨가 주하 씨에게 남기신 것이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연락부탁드립니다. ]


카운터에 짜파게티를 하나 시켜놓고 디엠을 보냈다.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른다. 안 올 가능성이 더 클지도 모른다. 성준은 라면을 입에 밀어 넣고는 그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뉴스를 주욱 훑어 보았다. 사회면과, 사건 사고를 꼼꼼히 읽었다. 범죄면은 더 자세히 읽었다. 괜히 찾아보면 형님들의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봐야 조그마한 조직의 이야기는 신문에 잘 실리지도 않고, 실명도 아니니 괜히 짜증만 나기 시작했다. 벌써 시간은 두 시간이 흘렀고, 벌써 시간은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늦어도 5시에는 출발을 해야 한다. 텀블러의 안개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처럼 성준의 인내심도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3시가 넘어가니 동네 초등학생들이 피씨방을 점령했다. 초딩들의 게임 소리에 골치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때때로 욕설을 섞어 쓰는 초딩들을 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 피씨방 한 번 가려면 빈병을 팔아 돈을 모으던 옛 시절이 떠올랐다. 괜히 부아가 치민다. 


"이 어린놈의 시키들 조용히 안 해?!"

"왜요? 이 피씨방 아저씨꺼에요? 남이사"

"뭐 이 쪼끄만 놈이 버릇없이!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몰라요. 이 시간에 피씨방인걸 보니 딱 봐도 백수네 뭘."

"뭐 이 X 새끼야!"


성준은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이는 놀랬는지 움찍 어깨를 움츠렸다. 성준은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카운터 알바생이 무슨 일인가 고개를 빼고 쳐다보고 있다. 괜히 이목을 끌 필요는 없다. 


"아휴... 알았으니까.. 좀 조용히 해라... 으엉?"

"... 네..."


아이는 풀이 죽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곧 피씨방에서 나가야 할 것 같았다. 괜히 경찰이라도 부르면 일이 잘못될 듯했다. 그때 띠리링 알람이 울렸다. 


주하에게서 디엠이 왔다. 


[정희를 아시나요? 누구시죠?]

[제가 시간이 없는 이유로.. 용기 초등학교 앞 커피숍에서 기다리겠습니다. 4시까지만 기다릴 수 있습니다. 시간 되시면 부탁드립니다. 저는 검은색 티셔츠에 파란 텀블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준은 답장도 받지 않은 채 피씨방을 나섰다. 아까 알바생의 눈빛이 영 마음에 걸려서 더 머무를 수가 없었다. 


성준은 초등학교 앞 가장 번화한 커피숍을 찾았다. 일부러 창가가 잘 보이는 곳에 앉아 파란 텀블러를 보란 듯 세워 두었다. 멀리서 주하가 보더라도, 사람이 많은 곳이면 덜 고민하고 나타날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마시는 커피가 꽤나 만족스럽다. 오늘 주하를 만나지 못해도, 괜찮은 커피 한잔 마신 셈 치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저.. 정희 친구분.. 이신가요? "

 성준이 돌아보니 한 여성이 세 살 정도 되는 여자 아이 손을 잡고 성준을 불렀다. 아... 벌써 아이를 낳았구나. 이제 이 옷은 필요 없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네.. 안녕하세요 박성준입니다. 남정희 씨와는.. 음.. 친구입니다. "

성준은 엉거주춤 일어나 인사를 했다. 주하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맞은편에 앉았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경계하듯 아이를 두 팔로 안았다. 


"저.. 무슨 일로... 아니 정희는 어디에 있나요? 혹시 정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아!. 정희 씨는 잘 있습니다. 음... 건강이 좋지 않아서 멀리까지 나올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직 살아 있습니다." 딱히 거짓말은 아니다. 일일이 설명해 봐야 믿지 못할 이야기인지라 적당히 얼버무렸다. 


"... 잘 지내나요? 정희는?"

"... 네.. 일단 이것 받으세요.."

"이게 뭐죠? "

"저는 전달만 해드리는 거라 잘 몰라요. 주하 씨한테 꼭 전해주고 싶은 것이라는 것만 알아요.. 그럼 전 이만 시간이 없어서요.."

".. 아.. 네... 감사합니다. 저... 혹시 정희한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게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


주하는 무엇인가 더 묻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성준은 시간이 없었다. 아니 30분 정도 여유는 있었지만, 대략적인 사연은 이미 들어 알고 있기에 괜히 더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성준은 커피숍을 나서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찾았다. 터미널을 가는 방향을 가늠하고 있을 테 갑자기 주하가 뛰어나왔다. 


"이거 정희가 준거 맞아요? 이 배냇저고리 정희가 만든 건가요?"

"네.. 꽤 오래전부터 만들었던 것 같은데.. 정희 씨가 만든 거 맞아요."

". 아.... 기억하고 있었구나... 정희가... 흐... 흐흑"

주하는 커피숍 앞에서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안 그래도 이런 모습이 걱정되어 먼저 자리를 피했건만... 성준은 당황해 어쩔 줄 모르다 다시 커피숍으로 주하를 데리고 들어가 앉혔다. 


"저.. 울지 마세요.."

"정희는요. 참 착한 아이였어요.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였구요. 정희가 아프기 시작했을 때 전 세상이 무너졌어요. 정희 앞에서는 울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몰라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정희를 보고 있으면 내가 너무 미안했어요.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데 무력감도 느꼈구요. 그러다 하루는 정희가 제게 처음으로 화를 내었어요. 왜 자신만 아프냐고, 왜 자신이 죽어야 하냐고. 저한테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어요. 저보고, 너는 예쁘고 부자고, 착하고 건강한데 왜 자신만 이렇게 죽어가냐고 울며 소리쳤어요. 저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내일 보자며 병실을 나왔어요. 그리고는 집에 가서 한참을 울었죠. 정희가 화를 내는데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랐기도 하고, 그러면서 안쓰러워서 한참을 울었어요. 그리고 후회했어요. 


좀 더 달래주다 왔어야 하는데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병실에서 도망치듯 나온 거예요. 아니라고. 괜찮다고. 너도 건강해지고 우리 예전처럼 다시 놀러 다니고,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어야 했는데.. 전 아무 말도 못 한 거예요. 그때 어쩌면 저는 정희를 포기하고 있었는지 몰라요. 병세가 악화되는 모습에 저는 희망을 잃었는지 몰라요. 그날 밤 저는 많이도 울었어요. 그리고 다음 날 정희를 만나면, 어떻게 이야기를 할지 밤새워 편지를 썼어요. 


나는 아직 너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나는 너를 끝까지 지켜줄 거라고. 정희에게 편지를 썼어요. 그리고 다음날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정희는 사라지고 없었어요. 


물어 물어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지만. 이미 정희는 사라지고 난 뒤였어요. 아무도 정희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데요.. 저는 정희가 죽은 줄만 알았어요. 어디에서도 소식을 모르고, 연락도 없고 저는 마지막으로 정희에게 아무 말도 못 했던 게 너무도 후회돼서. 너무 후회하면서 살았는데.. 


정희가 아직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 줄 몰랐어요. 이 배냇저고리는 정희와 제가 중학교 때 재미로 한 약속이었는데 정희가 이걸 잊지 않고 있었어요. 정희가...."


주하는 그렇게 독백처럼 쏟아내고서는 한참을 더 울었다. 자그마한 계집아이를 두 팔로 꼬옥 껴안고 한참을 울었다. 영문도 모르는 아이는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다 함께 울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쳐다보기 시작했다. 성준은 또 주변의 시선에 당황했다. 졸지에 두 여자를 울린 몹쓸 남자가 되어 있었다. 


"저... 주하 씨 울지 마세요... 저기요... 제가 이상해... 지잖아요.."

"아... 죄송해요.. 정희 생각만 했네요..."

"저 부탁하나 드려도 될까요?"


아이코. 성준은 어쩌다 자신의 신세가 심부름꾼이 되었는지 한탄을 했다. 누구 탓을 할까 하다 화풀이할 대상도 없어 그저 스스로 전생에 죄가 많은가 보다 생각했다. 주하는 성준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전달 사항을 잊지 않겠다고 몇 번을 다짐하고서야 주하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었다. 


"자.. 받아.."

성준은 산 아래서 마지막 안개를 마시고, 뛰다시피 산을 올랐다. 안개가 떨어지면 어떤 고통이 올런지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아 겁이 났기 때문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정희에게 주하가 맡긴 것을 건넸다. 


"이게... 뭐예요..."

"몰라... 보면 알겠지... 참... 주하 씨 세 살 된 딸이 있더라고.. 배냇저고리는 안 맞을 거 같아. 어떡하니?"

"뭐 괜찮아요. 어쩔 수 없지요 뭘.... 주하... 잘 지내던가요?"

"응 잘 지내 딸은 엄마를 쏙 닮았고. 배냇저고리는 잘 간직하겠데.. 일곱 달 후에 잘 입히겠다네?"

".. 네?? "

"응 그래.. 둘째를 임신 중이더라고.. 배냇저고리.. 잘 입히겠다고 했어"

"그래요? 아.... 다행이다~"


정희 씨의 뺨이 붉게 물들었고, 눈가가 반짝거렸다. 환하게 웃고 있는 정희 씨의 눈에서 눈물이 똑하고 떨어졌다. 밝게 빛나는 달빛이 정희 씨의 눈물을 타고 성준의 발치에 머물렀다. 


정희는 성준이 건네준 것들을 받고 고맙다 인사하고 가슴에 꼬옥 안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고마워요.. 정말.."

"음... 뭘... 내가 원래 좀 착한 편이거든.. 흠... 고마우면 밥이나 한 턱 쏴!"

성준은 괜히 장난스레 인사를 하고는 돌아섰다. 주하를 만나고 돌아오며, 택배로 보낸 선물은 잘 도착했는지. 받으면 어떤 표정일지 궁금해졌다. 괜히 달빛이 따스하다. 성준은 시큰해진 콧날을 쓰윽 비비며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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