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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ul 17. 2024

제11화_그림자

그날 밤 정희는 주하에게서 받은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정희가 모질게 내뱉은 그날 주하는 정희에게 긴 편지를 썼다. 편지에는 주하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날 그렇게 모진 말을 듣고도 주하는 정희를 달래고, 응원하고, 미안해했다. 


[... 내일은 우리 아무 일 없었던 듯. 하루를 살자. 그리고 또 떠오를 태양처럼 지더라도 다시 떠오르자. 언제고 네 옆에 있을게.. 내 친구라서 고마워 정희야. 그리고 사랑해]


주하의 과거의 편지는 이렇게 끝이 났고, 그 아래는 급하게 쓴 듯한 새로운 글씨가 덧붙여 있었다. 


[정희야. 어디에 있든, 어떻게 있든. 우리 다시 만날 거야. 

이번생이 아니면 다음 생에서라도. 

고마웠어. 

모든 것이. 

보고 싶다 내 친구 정희]



정희는 처음으로 이 숲에 온 것을 후회했다.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을걸. 남은 시간 그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온전히 작별 인사를 할걸. 이제 그녀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고, 그리움도, 외로움도 모두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다. 정희는 숲에 온 뒤 처음으로 지독한 외로움과 그리움에 몸서리쳤다. 


살아간다는 것. 사라진다는 것 그 어느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했다. 정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고, 사과도, 인사도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자신의 상처에 남겨질 사람들의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외면했다. 그저 그렇게라도 기억되고 싶었다. 상처로라도 그들의 기억에 머물기를 바랬는지 모른다. 


지금 정희에게 그 모든 것이 되돌아왔다. 이제 그녀는 아무것도 전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살아있어도, 소중했던 그들에게서 정희는 잊혀 가는 존재가 되었다. 과연 이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었던가를 정희는 한참을 되돌아보았다. 살아간다는 것. 살아남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밤이 새도록 되짚어 내었다. 



성준이 돌아오는 길목에서부터 검은 그림자가 동행했다. 헐떡 거리는 숨을 내쉬며 산을 오르는 성준의 모습을 보며 육상 대회 기록을 체크하듯, 메모를 남겼다. 성준이 주희에게 편지를 전하고, 주희가 집으로 돌아가 편지를 읽고, 감정이 복받쳐 흐느끼는 모든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예 접니다. 이번에도 돌아왔습니다. 예. 또 안개를 모았구요. 아직 어떤 방식으로 모으고 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한 번의 성공으로 컵을 채운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모으는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입니다. 예. 예. 더 지켜보겠습니다.


그나저나. 남정희는 어떻게 할까요? 그냥 이렇게 두어도 되겠습니까? 예. 예 알겠습니다. "


이곳에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 있었다. 그림자의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있고, 어디론가 보고를 하고는 지시사항을 전달받은 듯 다시 메모에 기록했다. 그리고는 몇 번을 다시 읽고 외우고 노트를 찢었다. 


"찌익~"

밤이라 유난히 길고 크게 들리는 종이 찢는 소리에도 아랑곳 않았다. 그리고 확실하게 처리하려는 듯 그 종이에 불을 붙여 태웠다. 재까지 발로 비벼 흙이랑 섞어놨다. 누굴 대려 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본인이 직접 할 것이지. 자꾸 귀찮게만 한단 말이야.. 퉤!"

그림자는 명령이 귀찮은 듯 침을 퉤 뱉고는 숲의 어둠에 몸을 감추었다. 



성준은 잠이 오지 않았다. 이곳에 머무르는 게 앞으로 얼마나 이어질지, 영원으로 이어질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성준은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었고, 산에 오르기 전에는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안개를 벗어나려 했더니 지독한 통증이 밀려오고 숨을 쉬는 것이 어려워졌고, 정신이 아득해져 옴을 경험했다. 그 고통을 경험한 후로 함부로 안개를 벗어나는 것이 두려워졌다. 


산 아래를 내려갈 때는 산소마스크를 끼듯 텀블러를 챙겼고, 외부에서 통증이 오기 시작하면 서둘러 한 모금을 들이켜고, 정신을 차리곤 했다. 마치 천식 환자가 네뷸라이져를 찾듯, 공황장애 환자가 약을 찾듯, 성준은 안개를 옆에 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안개에 대해서 좀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정희와 안개를 모을 때부터였는지 혹은 그전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자꾸만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마치 감시당하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처음에는 기분 탓이라 생각했지만, 텀블러에 안개를 모으고 난 뒤 좀도둑을 든 이후로는 거의 확신하게 되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아직까지 이 사실을 티 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었다. 집 밖에서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날리고, 세상 걱정 없는 한량으로 살아가면서, 집에 들어오면, 오늘 하루 무엇을 하고, 누구와 만나고, 무슨 일을 했는지 기록하기 시작했다. 


누구의 인내심이 더 오래갈지 경쟁을 시작했다. 오늘로 5일째 일기를 쓰지만 아직까지 특정할 만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멀리서, 티 나지 않게 자신을 지켜보고만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이 도 씨 어때 일은 잘 돼 가? 얼마나 수확했데?"

"에이. 잘 안 돼 이상하게. 예전만 못 한 거 같아"

"그래도 그거 꽤 요긴한 물건이라 읎으면 아쉬워. 잘 좀 수확해 봐."

"예 그럴게요. 잘해볼게요"


도광규 씨는 얼마 전부터 안개 모으기 담당이 되었다. 안개 모으기란 예전 황 씨 집에 있던 더치커피 깔때기로 안개를 모으는 것이다. 한 시간을 기다려야 겨우 1ml의 안개가 모인다. 안개 모으기의 핵심은 아테나를 어느 방향으로 두느냐에 따라 그 모아지는 양이 다르다. 운이 좋다면 한 시간에 2ml까지도 모을 수도 있고, 방향을 잘 못 잡으면 1/3도 모으지 못한다. 


그래서 안개 모으기 담당은 항시 내려받는 양을 체크하면서 안테나의 방향을 정해 주어야 한다. 잘 모이면 안테나의 방향을 그대로 두고, 덜 모인다 싶으면 다른 방향으로 돌려주는 일이 전부다. 딱히 노하우가 필요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수시로 체크를 해 주어야 하고, 위치가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홀로 된 곳에 있다 보니 좀 심심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다른 탐탁지 않아 한다. 


하지만 안개 자체가 중요한 역할을 하다 보니, 그만둘 수 없는 노릇이다. 보통 한 달씩 돌아가며, 당번을 맡기로 했다. 이번 달의 당번은 도광규 씨다.  이번 달 당번도 거의 다 왔다. 이제 며칠만 더 하면 다시 마을로 돌아간다. 


보통 열흘에 우유팩 한 팩정도의 200ml가 모인다. 두 개를 채우고, 이제 나머지 하나만 더 채우면 목표량 달성이다. 보통 한 달 단위로 당번이 바뀌지만, 운이 좋아 며칠 빠르게 세 팩을 채우고 나면 나머지는 그냥 놀거나, 조금 일찍 마을로 복귀하곤 한다. 


그러니까 기간 별 알바이기도하면서 동시에 할당량을 채우는 알바이기도하다. 먼저 다가오는 날짜가 우선이다. 광규 씨의 이번달은 영 부진해서 아무래도 날짜를 꼬박 다 채워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세 팩을 채울 수 있을지 영 불안하다. 


지난 시간 떨어진 양을 가늠해 보고, 안테나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할 것 같다. 바람을 마주 보는 쪽으로 돌리는 게 효율이 좋았던 것 같다. 


끄응차. 예전 같으면 지붕 위에 오른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인데. 몸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지붕에 오르니 조금 더 숲이 멀리 보인다. 바람에 나무가 살랑이는 곳을 찾아 안테나를 돌린다. 그리고 몽키로 안테나를 꽈악 고정해 둔다. 그렇지 않으면 바람에 사방 머리를 흔들어 재끼고, 그만큼 광규 씨는 초조해질 테니. 


"뭐.... 뭐야? 엉?"


광규 씨가 지붕에 올라갔다 온 사이에 누가 집안으로 들어온 것 같다. 분명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가득 채운 두 병의 안개와, 채우고 있던 안개 한 병이 깔때기 아래 가지런히 놓여있었는데. 가득 채워진 두 병이 감쪽 같이 사라졌다. 


광규 씨는 서둘러 집 밖으로 뛰쳐나가 주위를 돌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누가 안개를 훔쳤다?"


이제껏 벌어지지 않던 일이었다. 지금까지 안개를 모으곤 했지만, 특별히 안개에 대해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할 일이 없으니 소일  삼아 하곤 했던 일이다. 그런데 그 안개를 누군가 탐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 황씨네 집은 마을 사람 모두가 드나드는 곳이다. 모두가 구조가 어떤 진 어떤 방식으로 안개를 모으는지 알고 있다. 어느 길로 다녀야 하는지, 어디가 사각지대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곳이다. 누구라도 이곳을 드나들 수 있다. 


도광규 씨는 채우다 만 안개를 뚜껑을 닫아 챙겼다. 깔때기 아래는 새로운 병을 두고 집을 나왔다. 그리고 마을로 돌아가 이 일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아마 마을 사람들 사이에 범인인 있겠지만, 이렇게 말하고 나면 더 움직이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호기심에 한 번의 욕심이라면, 여기서 멈추기를 바라고자 했다. 


"도 씨 벌써 다 모은 거야? 며칠은 더 걸릴 것 같았는데. 바람이 좋았나?"

"헉... 헉... 아니... 그게 아니고.. 사람들 좀 모아봐... 어서"

"왜... 무슨 일이야 왜? "

"안개... 안개가.. 도둑맞았어. 누가 안개를 훔쳐 갔다고."

"뭐? 누가.. 왜?"

"나야 모르지 그니까. 빨리 사람들을 모아 봐... 어서"


마을 중앙을 작은 양동이 같은 것을 마구 두들겼다. 딱히 쓸 일이 없어 대충 종소리를 낼 수 있을 만한 것을 찾았지만, 찾은 것이라고는 낡은 페인트 통이 전부다. 


"뭐야... 무슨 일이야... "

"어디 전쟁 났어요? 이게 무슨 소리야?"

"어이... 다 들 모여봐요.."


마을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경고 소리에, 마을로 모였다. 이런 일이 없던 터라 걱정보다는 어떤 일인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사라진 김호열 씨를 대신하고, 성준을 포함에 마을 사람 10명이 다 모였다. 

저마다 궁금한 표정으로 페인트 통을 두드린 도 씨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저기 황씨네 집에 누가 침입해서 안개를 훔쳐갔어요"


"안개를?"

"누가?"

"아니 그거 어디다 쓴다고"

"언제 그랬데요?"

"아저씨 몸은 괜찮고요"

"아니 얼마나 가져갔는데요?"


저마다 한 마디씩 하니 금세 마을은 소란스러워졌다. 지금까지 평화롭기만 하던 마을에 갑자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분명 이 안에 안개를 가져간 그 누군가가 있을 텐데 그 그림자는 태연하게 사람들 사이에 섞여 범인을 탓하고, 이 일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알리바이를 대기 바빴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기도 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절반쯤은 결백해 보였고,  절반쯤은 의심스러워 보였다. 

지금까지 누구도 안개에 대해 욕심부린 적 없던 마을에서 갑자기 누군가 안개를 훔쳤다는 사실 하나로 안개의 가치에 대해 다들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안개가 왜? 안개가 무엇이길래.. 이것을 탐낼까? 

사람들은 범인이 누군가 인지에 대해 보다 안개가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일까에 대해 저마다 추측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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