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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ul 15. 2024

제9화_남정희의 배넷저고리

"어이 남쩡~ 잘 지내나? "

"아니... 남쩡이 아니구요... 남. 정. 희 라구요"

정희 씨는 눈을 흘기며 성준에게 대꾸했다. 이름을 알려준 다음부터 성준은 정희 씨를 남쩡이라 놀리며, 오다가다 불러댄다. 딱히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이름으로 한참을 놀려대다가 사라진다. 마치 초등학생이 친구를 놀리는 것 같다. 


"그래 았았어 정희 씨. 근데 오늘 나 좀 도와줘야겠는데? 시간 괜찮은가?"

"뭐... 알잖아요 여기 딱히 바쁜 일도 없다는 거."

"알아 나도. 그냥 예의상 물어본 거야. 가자 어디 좀."

성준은 정희 씨의 대답을 미쳐 듣기도 전에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따라갈까 망설였지만, 이곳에서는 딱히 무얼 할 것도 없다. 구경삼아  가보자며 정희 씨도 성준을 따라나섰다. 


"어디로 가요?"

"응. 저기 아래로. "


성준은 눈을 한 껏 찌푸리며, 천천히 산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볕이 잘 드는 길을 피해 그늘로만 찾아 걸었다. 보기엔 피부관리에 하나도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은데 햇볕을 싫어하나 보다 생각이 들었다. 


"너무 멀리 가면 안돼요.. 알죠?"

"아... 네 잘 알아요.. 나도.. 어디 보자.... 아! 저쯤이 좋겠다."


성준은 숲에서 가장 햇볕이 들지 않으면서 널찍한 공터로 정희 씨를 데리고 갔다. 넓지만 습한 분위기의 공터에는 옅게 안개가 끼여 있었다. 성준은 그곳에서 텀블러를 하나 들고는 공중을 휘젓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예요? "

 성준은 대꾸도 없이 열심히 공중을 휘젓고는 텀블러 안을 확인하고, 텀블러를 또 공중으로 휘젓기를 반복했다. 


"아!"

얼마 전 성준이 안개를 담아 희수의 곰인형을 가져온 일이 있었다. 성준이 그 테스트를 통과한 것은 숲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아무도 그가 돌아오리란 기대를 한 사람이 없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돌아온 적 없었다. 단 한 사람도. 그리고 그가 안개를 담아서 마셨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안개가 상처 치유에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마셔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준이 그 방법을 일러준 후로 마 씨 아저씨가 안개를 마셔보았지만, 효과는 고작 10여분을 넘기지 못했다. 성준은 한 모금의 안개로 두 시간을 버텼지만, 아무도 10분을 넘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안개를 모으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어찌 되었던 안개를 마시면 바깥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증거가 되었기에 안개 모으는 방법을 연구하려 했다. 이제껏 황 씨가 머물던 집에 있던 기계로 모으던 안개에 대해서는 마을 공동의 소유물로 여기는 암묵적인 규칙은 아직 유효한 듯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그마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왜 이러지? 왜 안되는 거야? 갑자기?"

"원래 안 되는 거 아니었어요? 내가 보기엔 그런데..."

"에이 알잖아 나 저 아래까지 다녀온 거. 그거 보면 증가가 되지 않나?"


정희 씨는 딱히 반박할 만한 말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성준은 저 아래까지 다녀온 것은 분명하니까. 


"뭐.. 그건 알겠어요. 근데 나는 왜 데리고 온 거예요?"

"아? 그거?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

"네? 아이고 참.. 나 바쁘거든요. 그럼 난 먼저 갈래요."

"어? 잠깐만 나 혼자 있으면 무섭다구~"


정희 씨는 투덜거리는 성준을 뒤로하고 다시 산으로 올랐다. 곧 해가 질 텐데 잘 돌아오겠지 걱정도 되었다. 성준은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산 아래로 내려가곤 했다. 매번 정희 씨를 불러 같이 가자 조르는데 한사코 거절을 했다. 그럼에도 성준은 끊임없이 함께 가자며 조르다 혼자 투덜거리며 내려가곤 했다. 


"오늘은 기필코 담을 거라고,!"

"이것 봐 여기 담은 거 보여? " 아무리 봐도 비어 있는 빈 통을 흔들며 자랑하기도 하고, 어디다 힘껏 내동댕이를 쳤는지 찌그러진 텀블러를 보여주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집으로 들어가는 날도 있었다. 안개를 담으러 가자 조르는 성준의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안개를 담지 못해 온갖 투덜 거림과 불평을 듣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이봐 오늘도 나 혼자 가야 돼?"

"오늘도 가려구요? 보기보다 끈기 있는데요?"

"뭐 됐고 그런 말은 안 가면 나 혼자 간다."

"오늘은 같이 가요 잠시만요 뭐 좀 챙기고"


정희 씨는 에코백 하나를 챙겨 나왔다. 


"뭐야 그건? "

"그냥 기다리기 심심할 거 같아서. 그냥 소일거리예요"


성준과 정희는 다시 공터에 다다랐고, 정희는 햇볕이 잘 드는 나무 그루터기에 자리를 잡았다. 성준은 찌그러지고, 긁힌 텀블러를 꺼냈다. 보아하니 그동안 꽤나 맘고생을 한 것 같다. 아마도 텀블러는 그 마음고생을 고대로 받아 몸고생을 한 듯 싶다. 성준은 춤을 추는 듯, 태권도를 하는 듯 허공에 대고 텀블러를 휘젓기 시작했다. 때때로 거친 숨을 몰아쉬기도 하고, 땀에 젖은 이마를 닦아 내기도 했다. 꽤 오랜 시간을 불평 없이 시도하는 모양새가 제법 진지해 보였다. 


"아. 저 사람은 진지하면 저런 표정이구나."

정희 씨는 턱을 괴고는 성준의 무술영화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성준은 잠시 쉬려는 듯 정희 옆에 다가왔다. 


"그건 뭐야? 옷을 만드나?"

"아? 이거요. 뭐. 별거는 아니고.. 연습이죠"

"뭐야 어디 봐봐~"

"아니에요. 별거 아냐. 됐어요"

정희가 애써 감추려는 옷감을 성준은 홱 하고 순식간에 잡아채었다. 그리고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옷은 사이즈가 아주 작았다. 아마 신생아 정도나 입을 수 있을까 싶은 옷이었다. 


"뭐야? 이거는 혹시 이런 걸 배넷저고리라고 하나? "

"뭐야? 아기 옷 처음 봐요?"

"어 처음 봐. 내가 낳은 적도 없고, 아이도 없으니.. 본 적이 있어야지.. 내가"

"네 이런 옷을 배넷저고리라고 해요. 보통 신생아에서 100일 정도? 뭐 그 정도까지 입힐 거예요. 나도 아직 입혀본 적 없으니 잘 모르지만. "

"이런 건 왜 만들어? 여기엔 임산부도 없는 거 같은데? 그렇다고 어디다 보낼 수도 없는데. 그냥 재미 삼아 만드는 거야?"


"음... 내가 여기에 들어온 게 28살이었어죠. 그게 벌써 4년쯤 된 것 같은데... 암튼. 나는 20대 초반에 꽤 아팠거든요. 물론 지금도 병이 나은 건 아니니 아픈 거지만... 여기에서는 그럭저럭 살고 있는 거죠. 


나한테는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동창이 있어요. 소위 베프라고. 우리는 꽤나 잘 맞았아요. 형제도 없던 내게 그 친구는 형제였고, 친구였고, 언니 같았어요. 사춘기를 함께 보내고, 이뤄지지 않은 내 짝사랑에 더 슬퍼해주고, 좋은 일은 내일 보다 더 기뻐해주던 그런 친구. 있잖아요. 무얼 해도 즐겁고, 오랜만에 연락해도 엊그제 만난 것 같은 그런 친구. 우리는 고등학교까지 함께 했어요. 중고등학교 거의 6년의 시간을 붙어 다녔고, 뭐든 함께했어요. 그런데 대학을 다른 곳으로 떨어진 거예요. 자주 연락을 하긴 했지만. 예전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지는 못했죠. 그래도 몇 달 만에 만나거나, 방학 때면 늘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어요. 

그러다.. 22살에 자꾸 쓰러지고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백혈병이래요. 그래서 꽤 오래 투병생활을 했어요. 그 친구는 자주 시간을 내서 병원엘 찾아왔었죠. 말라가는 내 손을 잡고 울어주기도 하고, 용기를 주기도 했었죠. 


그런데 사람이 극한 상황에 몰리면 삐뚤어지기도 해요. 나는 갑자기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그 친구에게 풀었어요. 왜 너는 멀쩡하고, 나만 아픈 건지 모르겠다고,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다고. 너는 예쁘고, 부자고, 건강하기까지 한 거냐고, 그 친구에게 마구 쏟아내었죠. 


이유가 있던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갑자기 내 불쌍한 내 신세를 누군가에게 쏟아붓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어차피 곧 죽는다 생각하니까. 세상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어진 것 같았죠. 그러면서 내 안의 모든 분노란 감정이 그냥 가까이 있던 사람에게 퍼부어진 것이었어요. 친구는 괜찮다고는 했지만, 눈물을 보이며 병실을 나갔어요.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했지요. 


친구가 가고, 나는 내 행동이 너무 창피해 견딜 수가 없었어요. 마침 병원에서도 호스피스 병원을 넌지시 제안하던 때라. 바로 병원을 옮겼어요. 여기 경산 터미널 근처에 있는 호스피스 병원으로요. 그러다 장 기사님을 만나고 이곳으로 오게 되었죠. "


"뭐야 당신도 그 호스피스 병원에서 온 거야? 거기서 그 택시 아저씨를 만났고? 뭐야 이거 수상한데?"

"뭐.. 여기 온 사람들 거의가 다 그럴 거예요 다른 병원에서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기고, 그곳에서 장 씨 기사를 만나고. 아마 몇 사람을 빼면 다 그럴걸요? "

"어? 그럼 다른 방법으로 온 사람도 있어? "

"성준 씨도 우리랑 다른 방법으로 온 사람이잖아요"

"아! 그렇군. 그렇기도 하네... "


"뭐.. 암튼.. 여기 오고 좀 살만해지고 정신이 드니까. 내 행동이 너무 창피했던 거죠. 나를 위로해 주던 가장 친한 친구에게 몹쓸 소리만 해대고 사라져 버렸으니. 그렇지만 뭐 연락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마음속으로 미안함만 가지며 살고 있는 거예요"

"그거랑 아기 옷이랑은 무슨 상관인데?"

"아.. 원래 우리 둘이 서로 아이가 생기면 서로 배넷저고리를 만들어 주자고 어린 시절 장난으로 약속한 적이 있었거든요. 잊고 있었는데 옛날 생각하다가 그 약속이 떠오르지 뭐예요. 그래서 그냥 만들어 보고 있었어요. 이제는 제법 그럴듯하게 만들 수는 있게 되었는데. 뭐.. 알다시피 전해줄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제는 소일 삼아서 하고 있는 거죠 뭐. "

".... 전해 주고는 싶구? "

".... 방법만 있다면야.. "


끙하고 신음을 내며 성준은 몸을 일으켰다. 


'어이.. 이거.. 안개 담아주면. 저 약속 지키게 해 줄게. 누가 들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뭐 근사한 힘이 있는 존재가 있다면 이 정도 봐줄 수도 있잖아. 약속은 꼭 지킬 테니. 한번 도와줘봐...'


성준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딱히 종교도 없고, 믿는 것도 없는 성준에게는 그저 저 약속을 지켜주고 싶다는 바람에 스스로에게 한 다짐이었다. 


"어? 어?"

정희 씨는 눈앞의 모습을 보고도 믿지 못했다. 성준이 눈을 감고 가만히 집중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주변의 안개들이 천천히 회오리 치듯 돌면서 텀블러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욕조의 마개가 빠진 듯 텀블러 속으로 회오리 치는 모습에 정희 씨는 깜짝 놀랐다. 


"왜? 왜? 뭐야?  이게 뭐야?"

성준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텀블러를 휘두르지도 않고 가만히 쥐고만 있었는데 텀블러는 안개로 가득 찼다. 놀란 것도 잠시 정신을 차린 성준을 서둘러 뚜껑을 담았다. 


"봐! 내가 담는다 그랬지? "

정희 씨를 보며 씩 하고 웃는 성준의 표정이 얄미우면서도 개구쟁이 같아 정희 씨도 따라 씨익하고 웃음이 났다.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도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또 성준이 안개를 담았다. 그것도 텀블러 한가득. 나무 뒤로 몸을 숨긴 그림자는 눈빛이 반짝 빛이 났다.  먹잇감을 바라보는 맹수의 눈처럼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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