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준 Jul 11. 2024

제7화_ 안개

"도대체 이거 뭐냐고요? 아무도 몰라요? 여기 사람들 다?"

"몰라.. 우리도. 우리가 이걸 설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아니 그럼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사는 거예요? 다들? 궁금하지도 않고?"

"이봐. 우리는 다들 죽을 사람들이야. 이미 죽어 어디 납골당에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그런데 여기서는 멀쩡하게 살아. 고통스럽지도 않고, 움직이는데도 전혀 지장이 없어. 우리도 궁금하지 않은 건 아냐. 도대체 무슨 목적이 있는 곳인지. 아니 목적이 아니어도 도대체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다들 궁금해 하지만 방법이 없어. 자네도 경험했겠지만, 여기는 벗어날 수가 없어. 아니 밖으로 나갈 수는 있지 그런데 그건 소멸이야. 소멸에 가까워.


내가 사실 하나를 말해줄까? 자네 그날 이후로 호열이형 본 적 있어? 없지? 못 봤지?"


그러고 보니 심부름을 다녀온 그날 밤 숲으로 들어가는 김호열 씨를 본 게 마지막이다. 어디서 마음을 추스르나 싶어 더 찾지 않았고, 그저 어디서 혼자 훌쩍이지 않을까 싶었다. 뭐. 자신이야 심부름해주고 골드바 하나만 챙기면 되니 솔직히 별로 관심도 없었다.


"왜요? 어디 갔어요? 왜? 어디서 짱 박혀서 울고 있데요? 아줌마 생각에? 참 나잇값도 못하는 양반일세"

"이 사람 뭘 모르면 주둥이 좀 막 놀리지 말어"

"뭐!! 뭐! 내가 못할 말 했나? 뭐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그 아재가 어디 가든 말든 내가 그런 것도 아닌데 뭐 어쩌라구 자꾸 나한테 뭐라 하는 거야 진짜. 다들 왜 이리 예의가 없어. 예의가."


"아이고 이 사람아. 저기 저 집이 호열이 형 살던 집인 건 아냐? "

"뭐..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왜?

"뭐 달라진 거 안 보여?"

"뭐? 뭐가 달라졌다고, 똑같은 집이구먼"

"지붕이 까매졌잖아. 지붕이!"

"오~ 그르네 지붕이 까매졌네. 저건 누가 그랬데? 뭐야? 나한테 뒤집어 씌우려고? 어림없는 소리들 한다. 정말"

"아이고 이 사람아. 누가 너래? 모르면 그냥 들어. 그냥. 자. 잘 들어봐. 여기는 14채의 집이 있어. 각 집마다 한 명씩 거주를 해. 잘 봐봐. 여기 13채의 집이 있지? 그리고 나머지 한 채는 자네 잡아오던 곳 근처에 한 군데가 있어. 예전에 황 씨가 살던 곳이었지. 뭐 암튼.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다른 집들이랑 다르지 않아. 뭐 그냥 평범한 집이지. 그런데 주인이 없는 집은 지붕이 검게 변해. 집주인한테 무슨 일이 있을 때 그렇게 변해. 대부분 집주인이 안개 밖으로 나가 고통스럽게 죽었던가. 아니면, 어떤 이유에선가 더 이상 여기 있을 필요가 없을 때 소멸하듯 사라져. 소리 소문도 없이. 지금 호열이 형 집 지붕이 검게 변했다는 건 호열이 형한테 이미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거야. 더 이상 만날 일 없다는 거야. "


"뭐? 그럼 그 아저씨가 죽었다고? "

"어쩌면 그럴 수도 있고, 우린 그냥 떠났다고 해. 그냥 떠났다고. 그게 덜 슬프니까."

"와... 그 양반 나한테 골드바 하나 달랑 넘기고, 갔다고? 원래 두 개 주기로 했으면서? 참 어이가 없네 정말"

"이 사람아 사람이 떠났다는데 그깟 돈이 중허냐?"

"왜 이래? 나한테는 돈이 중하지? 내가 중병에 걸리길 했니? 뭐 칼에 찔린 것쯤은 시간이 지나면 아물 테고, 내가 당신들처럼 시한부도 아닌데 나한테는 돈이 중하지 않겠어? "

"아이고.. 아직 사람 되려면 멀었다 멀었어. 아! 그리고 자네 잘 생각해 봐. 산 아래로 내려가려 할 때 어땠는지. 이제 자네도 숲 사람이야. 조금 다르긴 하지만"


성준은 그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첫 심부름이나 호열 아저씨의 편지를 전하러 갈 때 이상함을 느꼈다. 평범하지 않다고, 편지를 전하러 갔을 때는 두 시간마다 한 모금씩 안개를 마셔야 했다. 그래야 숨을 쉴 수 있었고, 몸이 아프지 않았다. 서늘한 느낌이 등줄기를 타고 내린다. 지금 상태로는 골드바를 다 모아도, 이곳을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속에서는 그 금붙이를 쓸 곳이 없다.


"먼저 이곳을 알아야 한다.


이곳은 경림시에 있는 산 중 하나다. 한자로  경림(境林) 시. 한자 경자가 경계나 환경. 상황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지만, 꿈속의 세계나 상태를 나타낼 때 쓰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럼 경림이라는 말 자체가 꿈의 숲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 불리는 잠의 숲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지금 이곳에는 나를 제외하고는 총 9명의 사람들이 있다. 얼마 전까지 10명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김호열 씨가 사라지고 이제 9명이 되었다. 지금 이곳에 13채의 집이 있고 그중에 4채의 집이 지붕이 검게 변했다. 아마도 나머지 한 집은 내가 잡혀온 곳 근처에 있다는 그 집인 듯 싶다. 내가 본 여성이 셋이었고 그중에는 십 대 소녀도 한 명 있었다. 장 씨로부터 받아온 곰인형의 주인인 듯한 학생이었다. 장 씨와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묘하게 얼굴 형이 닮아 보인다. 친인척일까? "


연령대는 다양하고, 지역도 쓰는 말투를 봐서는 공통점 있어 보이지 않는다. 어떤 연유로 모여 살게 되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공통점은 있다.


모두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 이곳을 벗어나게 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곳의 특징은 일반 숲과 비슷하지만, 아주 옅은 안개가 항시 끼어 있다. 아주 맑은 날에도 집중해서 보면 안개가 낀 구역과 아닌 구역이 구분이 된다. 그리고 그 안개가 이들을 아프지 않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안개가 낀 구역 안에서는 일반인보다 더 건강한 상태로 지낼 수 있다. 고통도 없고, 크게 지치지도 않는다. 웬만한 상처는 금세 아무는데 그 속도가 가히 믿기지 않을 정도다. 안갯속에서는 쉽게 죽을 수 없다. 일부러 죽이려 해도 죽지 않는다.


안개가 낀 곳은 거주지를 중심으로 약 5킬로 쯤되는 원을 그리면 된다. 내가 발견된 곳이 그 경계쯤 되는 것 같다. 그곳에서부터 두 시간 정도를 더 내려가야 철제 대문이 보이고, 원래 살던 세계와 이어진다. 어쩐지 이곳은 현실 속의 공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세상 이런 곳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 안개라는 것이 특이하다. 치유의 힘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 특별한 경우에 보관도 가능하다. 그런데 말 그대로 가능은 하다. 그 방법이 쉽지 않을 뿐이다. 성준이 처음 발견되었던 곳 근처에 황 씨라는 사람이 거주했던 집이 하나 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멀게 떨어져 있는 집이다.


그 집은 특이하게 위성 안테나처럼 생긴 장치가 지붕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장치는 집안에 더치커피처럼 생긴 깔때기에 연결되어 있다. 한 시간에 1ml 정도씩 안개가 모인다. 200ml 우유만큼 모으기 위해서는 아흐레가 걸린다. 열흘을 꼬박 모아야 200밀리 우유 한 팩이 채워지는 것이다.


그런 안개를 성준은 그날 단 한 번의 손놀림으로 채웠다. 마치 샘에서 물을 퍼내듯 텀블러에 가득 안개를 채운 것이다. 주민들이 성준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다. 자신들은 꼬박 열흘을 채워도 못할 일은 고작 한 두 번의 손길로 채운 성준에 대해 다들 알 수 없는 기대감을 갖기 시작했다.


어쩌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문제들을 이 사람이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성준도 궁금해 죽을 것 같은 숲의 비밀을 성준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는 사실을 성준만 모르고 있었다.

이전 06화 제6화_김호열 님이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