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준 Jul 10. 2024

제5화_김호열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하나가 큰 위로가 된다. 지금까지 이런 기분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게 조금 아니 많이 아쉬울 만큼 요즘은 기분이 좋다. 퇴근 후 그저 집으로 돌아가 티브이와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생활하던 때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요즘은 곧잘 청소도 하고, 운동도 한다. 옷은 예전보다 더 자주 빨고, 심지어 다림질도 시작했다. 퇴근 후에 옷을 세탁하고, 낮동안 마른빨래를 탁탁 개어가며, 다림질을 하는 것이 재미가 있다. 아니 다림질과 세탁이 재미있지는 않은데. 그 옷을 입고 만날 사람을 생각하니 재미가 있다. 


김호열은 이제 막 50을 넘겼다. 시골출신에 밑으로 남동생 여동생이 하나씩 있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집안에서 무얼 먹고 자랐는지 기골이 장대한 김호열은 어려서부터 가장 노릇을 했다. 그렇다고 집안에서 장사 밑천을 대어주는 것도 아니고, 오래도록 학업 뒷바라지 해줄 형편도 아니었으니, 그 몸 하나가 전부였다. 그래도 성격이 올곧고 뚝심이 있던지라 공사장에서 욕을 먹어가면서도 꾸역꾸역 버텼고, 눈대중으로 어깨너머로 기술도 훔쳐 배웠다. 금방 제 한몫을 다했고, 그를 대견하게 보던 타일 오야지에게 사업밑천도 전수받았다. 그렇게 동생들을 가르치고, 시집 장가보내고, 늙은 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고 살았다. 그렇게 쉰을 넘겼다. 


작년에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는 홀로 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동생들을 자식처럼 키우고, 부모님 병원비에 정신없이 살았는데..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자 갑자기 삶에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더 이상 동생들은 뒷바라지도 필요 없어질 정도로 자리 잡았다. 동생들은 사내 덕분에 세상 어려운 줄 모르게 살아왔고, 다행히 인성도 바르게 커 큰형의 고마움을 잘 알고, 명절이면 부모님을 찾듯 형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 


호열 씨의 삶이 평안해졌지만 호열 씨는 요즘 문득 더 외로움을 느낀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 부모님을 모시고, 동생들을 돌볼 수 있다 생각했기에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너무 많다. 사업체도 직접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작지만 제법 돈이 되는 사업체가 잘 굴러간다. 스스로 돌아보아도 이 정도면 나름 성공한 삶이라 생각이 든다. 돈도 여유도 있는데. 요즘 자꾸만 마음이 허하다. 너무 시간이 많은가 싶어 현장일을 복귀해 볼까도 했는데 몸이 예전 같지는 않다. 괜히 현장 직원들 발목만 잡을 까 사무실에서 전화만 받는다. 


"어서 오세요~ 김사장님~ 오늘은 퇴근이 빠르시네요?"

"아 예~ 저야 뭐 현장일이 없으니 늦게까지 있을 일도 없네요 요즘엔.."

"오늘은 무얼로 드릴까요?"

"백반 주세요.."


동네 입구에 자주 다니는 식당이 있다. 크지 않은 백반집으로 요즘 새로 생기는 식당들에 비해 인테리어도 올드하고, 메뉴도 몇 개 없다. 백반, 청국장, 제육, 순두부 계절메뉴 한두 가지가 전부다. 호열이 생각해도 나 같은 중늙은이나 되어야 이런 식당에 올까 젊은이들은 잘 오지 않을 것 같다. 식당을 둘러봐도 나 같은 중년들 뿐이다. 이래서 장사가 될까 싶지만, 또 음식맛은 나름 괜찮다. 괜히 메뉴가 몇 개뿐인가 싶기도 하다. 무얼 먹어도 조미료도 과하지 않고, 담백하니 입맛에 맞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부터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이곳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간다. 집에 가서 스스로를 위해 밥을 차린다는 게 영 번거롭다. 


삶에 후회되는 것 없이 살아왔지만, 결혼하지 못하고, 가정을 꾸리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이제 나이가 되니 집에 가족이 없다는 데 새삼 외로움을 느낀다. 강아지라도 한 마리 키워볼까 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아~예 말씀하세요.."

"혹시 식당 쉬시는 날 제게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첫 고백이었다. 아니 호열이 누군가에게 데이트를 신청한 게 처음이었다. 20대 초반에 사랑이야 해봤지만, 젊은 혈기에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인연을 제외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감정이 오랜만이었다. 호열은 용기를 내어 정중하게 가볍지 않게 물었다. 


"아이고 김사장님도. 참... 무신 말씀을 아닙니다.. 이러지 마세요. 그럼 제가 불편해집니다. 아니면 제가 식당 한다고 막 대해도 되는 그런 사람 같으신가요? "

"아... 아니 그럴의도는 아닙니다. 사장님.. 그게 아닙니다.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잊으세요. "


밥을 어찌 먹고 나왔는지도 모르게 식당을 나왔고, 한동안 식당을 찾아가지 못했다. 부끄럽고, 창피해 어찌 그녀를 봐야 하나 싶었다. 괜히 멀찍이서 얼굴 한번 보고 숨고, 지나간 길 또 지나가며 슬쩍 얼굴을 보며 다니기가 전부였다. 모질게 한소리를 들었기에 방문해도 되나 싶기도 했지만 늦바람이 무섭다고 채 이주가 지나지 못해 호열은 다시 식당을 찾았다. 


"이사 가실 줄 알았죠.."

".. 아... 그.. 그죠... 아.. 아닙니다. 지난날은 실례가 많았습니다. "

"뭐 실례랄게 있나요.. 오다가다 봤어요. 식당 쳐다보고 가시는 것도 뵈었고요."

"아... 미안합니다.. 안되는데.. 얼굴이 보고 싶어서요.."

"아고 남사스럽게.. 무슨 말씀을.. 다 늙어서 그런 이야기도 들어보고... 아고 부끄러라.."

"아닙니다. 정말이에요. 정말 보고 싶어서 그랬어요.."

"그만하셔요 내가 챙피해서 일을 못하겠네요. 오늘 청국장 드셔요 그게 맛있어요"

"네.. 그럼 청국장 주세요"

기분 탓일까 평소보다 반찬도 조금 더 수북한 것 도 같고, 모양도 더 정갈하게 담아진 것 같다. 확실한건, 평소 나오지 않던 계란 후라이도 나오고, 직접 물도 한 잔 떠다 주었다는 것이다. 호열은 콧노래를 부르며 식사를 마쳤다. 


"잘 먹었어요. 오늘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

"네.. 이제 숨어서 다니시지 마시고 그냥 오세요.. 그냥 해프닝이라 여길 테니까. 참.. 다음 주 월요일날 쉬니까 시간 비워두시구요"

"..... 네.... 넵??!.. 네!! 다음 주 월요일이요.."

"네... 월요일... 그럼 그때 늦지 말고 오세요~"




"그니까.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니까요? 그게 다예요? 아저씨 첫사랑이?"

"뭐.. 그렇지.. 그렇게 데이트 약속 잡아 놓고.. 건강검진 나온 거 재검받으러 오라 해서 병원 들렀는데.. 췌장이 이상해 보인다고 정밀 검사한다고. 그래서 검사받았지.. 췌장암이라네? 알지? 췌장암은 증상도 없고, 발견하면 거의 손도 못쓰는 거. 그렇게 검진받으러 갔다가 바로 입원을 했지. 그 식당 여사장은 전화번호를 알기를 하나 그렇다고 아는 사람이 있어 소식을 전할 수가 있나. 아니 소식을 전하는 것도 부담이 되는 것 같아서 그냥 두었지.. 그렇게 호스피스 병원까지 갔어. 여기 아랫동네에 있는. 경산시 터미널 근처에 있더라고,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는 나도 잘 기억이 안 나. 그때만 해도 진통제로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오늘내일하던 때니까. 


하루를 꿈을 꾸었는데 그 식당 여주인이랑 데이트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바닷가 산책도 하는 꿈이었어. 너무 생생한 거야. 바닷가 짠내 나는 바람도 그대로 다 느껴질 만큼. 그런데 그 순간 너무 억울한 거지. 내 가정하나 못 꾸려보고, 가족도 없이 이렇게 생을 마감한다는 게 너무 하다고 생각되더라고, 물론 부모님 모시고 동생들 돌본거 후회 1도 안 해 그건 다시 태어나도 똑같이 할 거야. 


그냥 좀 더 용기를 낼걸. 이렇게 시간이 없을 줄 알았으면, 좀 더 용기 내서 정말 데이트도 해보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나 닮은 아이도 안아볼걸. 아쉽더라고. 


살아가면서 내가 했던 일들 중에 왜 했을까 후회하는 일은 별로 없어. 내가 법은 또 잘 지키며 살았거든. 그런데 하지 않은 일들은 너무 아쉬운 거야. 해보지 않은 일들이 너무도 많아. 그런데 난 시간이 없고. 


하루는 장 씨가 왔어. 처음 봤거든. 그 택시기사 장 씨 말이야. 나한테 오더니 잠의 숲에 가지 않겠냐고 하더라고. 기회를 줄 수 있다고. 기회가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는데 어쩌겠냐 하더라고. 그냥 그 당시에 바람은 하나밖에 없었어. 그 식당 여주인과 산책한 번 하는 거. 손잡고. 하염없이 걸어보는 게 소원이었어. 그렇게 이곳으로 따라왔지. 그리고는 지금처럼 지내고 있는 거고."


"그니까. 아저씨는 지금 나한테 그 식당 여주인을 만나고 오라는 거예요? 가서 데이트 한번 하고 오라고?"

"뭐? 이 시키야?. 아니 그게 아니고... 잘 들어봐 내가 원하는 거는...."

이전 04화 제4화_거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