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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ul 18. 2024

제12화_사라진 안개

성준의 일과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할 일이 마구 생겨났다. 며칠 전 안개가 도난당한 이후로 사람들은 모두 안개 이야기만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아무 의미 없던 안개가 갑자기 하루아침에 화제의 중심에 서버렸다. 


"그 안개 어디에 쓰는 거야?"

"그거? 몰랐어? 우리 다칠 때 바르면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어!"

"근데 여기서는 원래 금방 낫잖아 몸은..."

"그렇지. 맞아 그렇지. 뭐 급하지 않으면 다 괜찮아지긴 하지."

사람들은 저마다 안개의 효용성을 찾으려 그간 있었던 경험들을 공유했다. 성준은 삼삼오오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의 무리에 슬며시 끼어 소식을 훔쳐 들었다. 아직까지 특별한 이야기가 나온 것은 없었다. 


"왜 그거 있잖아! 왜 그 저 새로 온 청년이 마을까지 내려갔다 온 거."

"그렇지. 근데 그게 왜?"

"그게.. 그 안개를 마시며 다녀온 거라 그랬어."

"어? 원래 산 아래 내려가면 못 사는 거 아냐? 다들 그래서 못 내려가는 거잖아. 몸이 원래대로 아파오니까."

"그렇지. 맞아 그러니 못 내려가고 여기서 이렇게 갇혀있는 거지 근데. 안개를 마시면 산에 있는 것처럼 살 수 있다는 거야"

"뭐?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고? 정말로?"


성준이 안개를 마시며 산 아래로 내려갔다 온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아니 산 아래 다녀온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안개를 마셨다는 사실은 교묘하게도 감추어져 있었다. 성준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이거나, 아니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감추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찌 되었던 이제야 사람들이 성준이 안개를 마시며 산아래로 다녀온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앞으로 좀 귀찮아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준은 안개 이야기라면 어디든 쫓아다니며 귀를 열었지만, 성준이 산 아래로 내려간 내용으로 주제가 바뀌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성준을 쫓아 귀찮게 질문을 해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성준의 무대응에 곧 흥미를 잃고 다시 무리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끝까지 성준에 대한 의심의 눈빛은 거두지 않았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안개의 가치에 대해 저마다 추측을 하고 나자 그다음의 관심사는 어떻게 안개를 모으는지로 옮겨갔다. 이제 사람들은 성준에게 보다 황씨네 집안에 설치될 깔때기에 더 관심을 두었다. 


"그니까 이게 안개 모으는 장치라는 거지?"

"그래. 왜 이거 담당해 본 사람도 있을걸. 자네도 잠깐 하지 않았나?"

"하긴 했지만, 그때는 뭐 이게 관심이나 있었나. 그냥 잘 안 모이면 안테나만 90도 회전시키고 또 시간 보내고, 안되면 또 회전시키고, 이게 전부였지."

"하긴 안개 그거 어디 쓸데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한 순간에 탈출구가 될 줄 누가 알았어?"

"근데 그게 효과가 있긴 한 거야? 정말로?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는 아직 아무도 산 아래로 내려갈 시도 해본 적도 없잖아. 다들. "

"흠. 흠... 뭐 다들 그렇다고 하니까. 괜히 모험을 할 필요는 없었던 거고. 우리 처지에서야 그냥 몸 건강히 살아만 있다는 게 더 중요했으니 딱히 검증할 필요도 없었지 뭘..."

"하긴 그래... 그래도 이제 나갈 길이 생길 수도 있다는데.. 여기 나가면 무얼 할 거야?"

"나? 뭐... 가족들이랑 친구들 만나고, 그냥 그 속에서 사는 거지 뭐. 살 수만 있으면 뭐 큰 바람이 있나?"

"에이 그게 뭐야.. 나는 이 안개로 돈 벌 궁리 좀 해보려 하는데.. 이거 왠지 대박 날 것 같지 않아? 만병통치약! 이거 제대로만 꽂으면 수십억은 그냥 땡길 것 같은데..."

"에끼 이 사람아 욕심부리지 마. 그 욕심에 화가 붙는 거야."


인간은 다들 다르다. 똑같이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자들도, 그로 인해서 얻는 것은 다르다. 삶에 대한 평가도, 기대도, 의지마저도 다 제각각 같지 않다. 안개를 가지고 어떤 이는 가족들과 함께 살아갈 꿈을 꾼다면, 누군가는 남은 여생을 멋들어지게 살아갈 밑천으로 바라본다. 어느 하나 같은 꿈을 꾸지 않는다. 인간은. 


"이야~ 스타가 다 되셨어~"

"앗 깜짝이야. 놀랐잖아"


오랜만에 정희가 성준을 불러 세운다. 며칠 집안에서만 지내오다, 며칠 전의 페인트 종소리에 놀라 나왔다. 안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성준은 이 마을의 가장 핫한 인물이 되었고, 누구도 직접 말을 걸어오지 않지만 성준에게서 궁금한 것들이 참 많았다. 그중에는 얼마 전 성준이 외부에 다녀오면, 정희에게 무언가를 전해주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마을 사람들이 정희를 귀찮게 했다. 


정희는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성준이 자신이 만들던 배넷저고리를 전해주고 편지를 받아온 것까지. 단! 성준이 텀블러에 안개를 모았던 때 함께 있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정희가 말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도 자신에게 성준의 안개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기에... 정희는 딱히 누군를 속이거나, 감추지 않았다고 스스로 되뇌었다. 그저 아무도 묻지 않은 것뿐이라고


"나.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뭐.. 뭐를?"

"성준 씨 안개 모은 거!"


그랬다. 정희는 그 모습을 직접 본 당사자다. 순간 성준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동지로 삼을 것인가.. 적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 원래의 성준이라면 크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시절 이후 다른 사람들을 믿지 않았다. 그저 혼자가 편했다. 최소한 상처받을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앞에서 친하게 지내자 말하고는 뒤에서 수군거리며, 욕을 하던 중고등 동창들. 가족처럼 생각했지만, 결국 총알받이로 자신을 버린 조직까지. 성준이 믿었던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믿지 말자.. 그저 가까이만 두자.'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정희를 자신의 주변에 두지 않으면 성준이 피곤해질 일이 많아질 것 같았다. 적당히 구슬리고, 단속을 해 두어야 쓸데없는 말이 새나가지 않을 것 같았다. 


"흠.... 이왕이면 계속 그렇게 주욱~ 입을 닫아줬으면 하는데"

"뭐.. 나도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저번 일도 있고 하니까.... 내가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정희는 아직 성준에게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못했다. 이렇게 얼렁뚱땅 인사를 건네었다. 


"저고리 전해 준 것 고마우니까. 편지도 받아다 주었고.. 암튼 말 안 할게요"

"뭐... 그래주면 나야 좋고. 이왕이면 오래도록~"


성준은 궁금해졌다. 갑자기 이렇게 안개에 사람들이 집착하게 된 이유가 무얼까? 과연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집요한 계획아래 진행된 일일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남쩡! 여기 3년 인가 있었다 그랬지?"

"남쩡 아니고 남정희.! 정확한 날짜는 기억도 안 나는데 가을 겨울을 두 번 이상은 보냈으니까. 3년 정도 될 거예요."

"그럼 그 사이에 지금처럼 안개가 귀해진 적이 있었어?"

"에이.. 무슨 소리. 안개를 모으는 일은 나도 여기 오기 전부터 계속해오던 일이라고, 사람들이 돌아가면 당번 서듯 모으긴 했지만, 모은 안개가 어떻게 되는지도 잘 모르고, 관심이 있던 적도 없었어요.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

"그럼 그동안 모았던 안개는 어떻게 쓴 거야?"

남정희가 온 3년만 계산해도. 한 달에 600ml 정도 일 년이면 7.2L 3년이면 20리터가 족히 넘는 양이다. 

보통 성준이 안개 한 모금으로 두 시간을 견딘다. 안개 한 모금은 20ml 정도 된다. 우유팩 200밀리 한팩이면 대략 스무 시간쯤을 견딘다. 


"우린 안개를 따로 쓸 일은 없어요. 여기 사람들은 안개를 모으면, 저쪽에 있는 동굴 안 수납장 같은 곳에 모아놔요. 그냥 예전부터 그랬어요. 저도 그렇게 두고 왔구요. "


"한 번 가볼까? "

"뭐...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가요!"


동굴은 마을 북서쪽으로 15분 정도만 걸으면 나왔다. 사람이 자주 다니는 길이 아닌 듯했다.  둘은 숲을 헤치며 걸었다. 


"여기야?"

"네. 이 안에 들어가면. 벽에 선반에 그동안 모아두었던 안개가 있을 거예요 기억으로는 꽤나 많이 모았었어요. "


성준은 정희의 말을 더 듣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동굴로 걸어 들어갔다. 


첨벙! 


"뭐... 야 이거"

"아... 입구 쪽에 물이 항상 흐르니까. 조심하라고 말하려 했는데 성격 하고는..."

"남쩡~ 남쩡~! 여기가 맞아?"

"그럼요 저기 선반에 일.... 어... 어라?"


정희가 알고 있는 선반은 그대로 있었다. 꽤나 많은 선반이 있는 걸로 봐서 남정희의 말처럼 꽤나 남은 안개 병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선반 위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빈 선반이 있을 뿐. 안개를 담은 병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여기 언제 마지막으로 왔었어? "

"저요? 음... 성준 씨 오기 직전에 내가 담당을 했었으니까. 이제 세 달쯤 되었을까요?"

"내가 온 게 그래 벌써 세 달이나 되었나.. 암튼 그쯤 된 것 같은데... 그때까지는 이게 다 빈 채워져 있었다고?"

"저기 보이죠? 저 선반부터 이쪽의 여기 선반까지 안개를 담은 병으로 가득 찼었다고요. 분명 내가 봤어요."

"그 안개를 누가 치웠다? 그리고 내가 여기 온 이후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 "

"성준 씨 오기 전까지는 이런 일 한 번도 없었어요. 정말로."


그때 동굴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마을 사람들 한 무리가 동굴로 찾아왔다. 그들도 성준과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누가 여기 있는데? 저기 발자국 좀 봐!"

"거기 누구요? 어서 들어가 보자고"

"어라? 거기 정희니? 옆에는 산 아래 총각? 여기엔 무슨 일로.... 앗! 벽이 비었어!!"

"뭐야? 다 어디 갔어? 안개가 다 사라졌어? "

"정희야 네가 그런 거야? 저 놈이랑? "


누가 봐도 의심스러울만한 시기에 마을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졸지에 성준과 정희는 안개 도둑으로 몰렸다. 아무리 설명을 하려 해도, 흥분한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기는 어려웠다.  


"어딨어? 어디다 빼 돌렸어?"

"아저씨 아니라니까요. 저는 그냥 성준 씨랑 여기에 있다는 걸 보여주려 데려온 것뿐이라니까요?"

"거짓말하지 마. 마을 사람들 다 함께 있었고, 너희 둘만 안 보였어. 그래서 확인하러 다 같이 올라온 거야. 그런데 안개가 없다? 그럼 마을 사람이 범인 일 수는 없잖아! 니들이 아니면.."


"이봐... 여기 안개가 오늘 없어졌다고 누가 그래? "

"오늘이 아니더라도. 니들 둘이서 여기 있던 것은 사실이잖아.!!"

"오늘 없어진 게 아닐 수도 있는데 그럼 누구라도 범인이 될 수 있는 거 아냐? "

"억지 부리지 마.. 그래봐야 너희들이 수상한 건 사실이니까.! 조용히 따라와 묶어서 데리고 끌고 가기 전에"


마을 사람들이 앞뒤로 걸으며 성준과 정희를 데리고 마을로 돌아왔다. 그리고 최근에 집주인을 잃은 김호열의 집에 성준과 준희를 밀어 넣었다. 


"일단 여기에 있어. 순순히 어디다 두었는지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아저씨 글쎄 우린 아니라니까요..."


철커덕.. 자물쇠 소리가 들렸다. 정희와 성준은 함정에 빠졌다. 그리고 더 확신하게 되었다. 누군가 안개로 무엇을 하려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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