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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ul 19. 2024

제13화_균열

"하하.. 이거 어이가 없네. 내가 이런 일 피하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내 팔자 한 번 드럽게도 재수가 없는가 보다. 안 그래 정희 씨?"

"왜.... 왜.... 이러는 거죠 우리한테?"


성준은 어느 정도 담담하지만, 정희 씨는 이런 일 자체가 너무 낯설고 두렵게만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해본 적 없고, 아.. 주하에게 빼고. 법대로 착하게만 살아왔는데 자신이 누군가에게 끌려다니고, 갇힐 거라는 걸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정희는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자꾸만 눈물이 나오고, 주저앉아 울고만 싶은데 옆에 껄렁껄렁한 반건달은 방을 이리저리 다니며 창문 밖을 살피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혼잣말로 궁시렁 거리다 욕지거리를 하다 정신이 없다. 그 모양새가 갑자기 웃겨 보였다. 정희 씨는 가만히 성준을 바라보고 그가 하는 행동에 집중했다. 서서히 기분이 가라앉으며, 지금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했다. 


"지금 우리 갇힌 거죠? 안개를 빼돌렸다고 오해를 받아서?"

"그렇지?"

"이곳은 외부인이 드나들기 어렵구요?"

"그렇지. 그것도?"

"그러면 우리를 가둔 사람들 중에서 안개를 빼돌린 사람이 있다는 거구요."

"올 이제 머리가 돌아가나 봐?"

"농담 아니고... 그러면 저 사람들 모두가 한 패 같지는 않아 보이고.. 저들 중에 누군가 안개를 먼저 빼돌리고, 우리에게 그걸 뒤집어 씌우고 우리를 범인으로 몰았다?"

"정답! 우리는 함정에 빠진 거고?"

"우리를 가둬서 무슨 이익을 얻겠다는 거죠? 아니면 우리가 방해가 된 건가요?"


아까부터 성준이 궁금해했던 점이다. 자신과 정희를 가두어 얻고자 하는 것이 방해자를 제거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이익을 얻으려 하는 것인지, 아니면 시간을 벌고자 하는 일인지 통 감이 오지 않는다. 지금의 정보만으로는 결론을 짓기가 어렵다. 


"나도 아까부터 생각 중인데. 지금 우리가 가진 정보만으로는 어떤 쪽인지 판단하기 어려워. 그런데 그건 그 누군가도 마찬가지일 거야. 우리가 어떤 패를 가지고 있는지. 아니 패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 조차 저들은 모를 거 같거든? 그러면 우리를 가둔 이유는 무언가 이익을 얻거나, 방해가 된다기보다 어쩌면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 데 시간을 벌고자 하는 건지도 몰라.  사람들의 관심을 우리에게 돌리고, 일을 꾸밀 시간을 갖는 게 아닐까 싶어... 문제는 무슨 일을 꾸미냐 하는 건데..."


"안개 꽤 많은 양이었어요. 200밀리 병으로 100개도 넘었어요. "

"그래봐야 20리터 밖에 안되니까. 큰 데다 옮겨 담으면 한 번에 옮겨도 크게 무리 없는 양이야. 성인 남성이면 충분히 옮기는데 어렵지 않아. 쓰읍.... 도대체가 안개를 어디가 쓰려하는가가 궁금한데... 그걸 알아야 무슨 짓을 벌일지도 상상이라도 해보지 이거야 원..."

"우리 여기서 나갈 수 있겠죠? "

"일단 여기는 음식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소파도 있으니 못 나간다고 크게 문제 될 건 없는데.. 누군가 나를 가두었다는 고 사실이 아주 기분 드럽다는 거지. 썅"



" 오늘 안개 동굴이 비게 된 걸 주민들에게 들켜버렸습니다. 마침 그 젊은이랑 남정희가 현장에서 목격되어 잡아 두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가지고 갔는지 아닌지 아직 모릅니다. 현장에서 발견되었지만, 안개를 옮긴 흔적은 없어. 모두들 긴가 민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뭐.. 그래도 의심스럽다고 대충 둘러대어 잡아 두었으니 며칠은 시간을 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정을 조금 당겨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 아닙니다. 전달하신 대로 움직이겠습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는 소리 죽여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림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는 마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 사람들은 안개의 끝이라 말하는 곳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은 넘어가려 하지 않는다. 예전에 차 씨가 이곳을 벗어났다가 몸이 예전 상태로 돌아가 무척 고통받은 이후로 이곳에 빨간 말뚝을 하나 박아 두고는 마을의 경계처럼 여겼던 곳이다. 


그림자는 품에서 작은 유리병을 하나 꺼내어 한 모금 들이켰다. 순간 눈에서 파란 안광이 반짝 빛났다. 


"후~!" 깊은 한숨을 토하고는 그림자는 빨간 말뚝 너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곧 어둠에 묻혔고, 어둠 속으로 그림자는 사라졌다. 



성준과 정희가 갇힌 이후로 집 현관 앞에는 조잡한 자물쇠가 채워졌고, 집 앞에는 보초가 생겼다. 보초라 봐야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 문 앞을 지키는 정돈데. 다들 하는 둥 마는 둥 시간만 보내곤 한다. 


"오늘은 마 씨가 당번이야?"

"예.. 근데 이거 심심해 죽겠어요. 뭘 하는 것도 아니고, 굳이 여길 지켜야 싶기도 하고, 왜 그날 우리가 동굴에서 저 두 사람을 발견하긴 했는데. 어디를 뒤져도 안개도 없고, 가져간 흔적도 없고, 아무래도 저 사람들 말처럼 그들도 확인하러 온 거 같은데 굳이 이렇게 가두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하긴 나도 좀 그렇긴 해. 아니 막말로 안개를 챙겼으면, 벌써 어디를 떠나거나 하겠지 바보 같이 여기 이대로 머물러 있을 필요가 있겠어? 그리고 나 같으면 안개가 아니라 안개를 모으는 깔때기를 훔치겠고만. 그래야 앞으로 주욱 안개를 모을 거 아냐. 동굴에 아무리 많이 모아 놨어도 수량은 정해져 있는 건데.. 그거 얼마나 가겠어? 안 그래?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근데 이거 저 두 사람 가둬두자고 누가 그랬데요?"

"그.. 글쎄 누구더라? 누가 말을 꺼내고 어쩌다 보니 분위기가 그렇게 되긴 했는데.. 누가 먼저 말을 했었지?"

"저도 통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분위기가 그러다 보니 동조하긴 했는데... 사람들 감시하려니 영 찜찜하기도 하고, 저치들이 뭘 그리 잘못했나 싶기도 하고 그래요. "


"뭐... 암튼 일단 하는 일은 잘해야지 뭘... 오늘 밤에 사람들이랑 이야기 좀 하자고 이렇게 계속 둘지 말지를"


며칠 만에 성준과 정희는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어스름해진 마을에는 마을 사람 모두가 모여 있었다. 성준을 포함한 총 10명의 사람들. 


"왜 벌써 꺼냈데요? 간만에 푹 쉬나 했는데?"

성준은 사람들 들으라는 듯 비아냥 거리며, 집 밖으로 나왔다. 정희도 성준 뒤에 바짝 붙어 마을 사람들과 만났다. 며칠 사이에 사람들이 다르게 보였다. 지금까지는 그저 마을 주민에 불과했는데. 자신을 가둔 후부터 마을 사람들 중 섞여 있을 범인이 두려워졌고, 누가 범인인지 신경 쓰였다. 다들 착하기만 하고 친절하기만 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이 섞여 있다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지금은 오히려 외부에서 온 성준이 가장 믿음직한 사람이 되었다. 


"오늘 다들 결정을 할 거야. 자네들을 계속 가둬둬야 할지 아니면 풀어줘도 될지 말이야."

도 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저는 풀어 주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정희 동생이 안개를 훔쳐갈 사람은 아닌 거 같아요. 저 남자라면 모를까. 그런데 정희가 함께 있었다면, 나는 저 남자도 훔치진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라씨 여인이 성준의 편을 들어준다. 

"의심스럽긴 한데. 무슨 꿍꿍이인 줄 알려면 차라리 풀어주고 지켜보는 게 맞을 것 같기도 해요. 어차피 나갈 길도 없는데. 가둬 놓고 고문을 할 것도 아니면"

섬뜩한 소리를 하는 사람은 이름처럼 체격도 좋은 마 씨다. 그 외에 박 씨, 사 씨, 이 씨, 장 씨 저마다 한 마디씩 의견을 나눴다. 모두들 가둬두는 게 큰 효용이 없을 거라는 의견에 가까웠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다 듣고 있던 차 씨가 정리를 했다. 


"다들 들어보니 풀어 주는 게 낫다고 하시네요. 그럼 그렇게 합시다. 그런데 그전에 저 둘이 그곳에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이야기는 좀 듣고 싶네요. 그리고 이왕이면 저 남자가 마을에 다녀온 이야기도 좀 자세히 듣고 싶긴 하네요."


차 씨의 발언을 끝으로 성준과 정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왜 동굴을 갔는지 동굴에서 무엇을 보았는지에 대해 자세히 말해야 했다. 정희가 나서서 동굴에 다녀온 경위와 안개가 사라진 내용들을 이야기했고,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럼 마을에 다녀온 이야기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차 씨가 물었다. 


"뭐.. 처음에야 김 씨 아저씨가 시켰잖아 장 기사한테 무얼 받아 오라고. 그래서 내려가서 인형인가 받아서 저기 희수라 그랬나? 저 아이한테 주었고. 다음에는 김 씨 아저씨가 그 첫사랑인가 누군가한테 말 좀 전해 달라고 해서 갔다 왔고, 다음에는 여기 정희 친구한테 아기 옷 하나 전해주고 온 게 단데 그게 왜?"


"그럼. 산 아래로 내려갈 때 힘들거나 고통스럽지 않았나요?"

"왜 아니야 처음에 산 아래로 내려갈 때는 그때 누가 찔렀어? 암튼 찔렀던 배에 상처가 벌어져 내장이 쏟아져 나올 뻔했는데.. 그때 큰일 날 뻔했지.. 아휴 지금 생각해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아.. 으잇"


"그럼 그런데 어떻게 저 산아래를 갔다 온 거죠?"

"... 뭐... 말했잖아. 안개를 마셨다고. 안개를 마시니까. 안 아프더라고, 힘들지도 않고, 그래서 산 아래 내려갈 때는 안개를 마셔. 한 모금 정도면 두 시간은 버텨."

"그럼 내려갈 때마다 안개를 마신 건가요? 어디서 났길래? 동굴 속에 안개 당신이 쓴 거 맞는 거 같네요"

"아니야.. 난 거기엔 손도 안 댔어. 난 내가 먹을 건 내가 챙겨. 에잇.. 내가 담았어. 그거."


성준이 안개를 담았다는 발표에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왜 그때 이야기 했잖아 처음에 장 씨 택시기사 만나고 온 날.."

그날 사람들은 성준이 다시 올라온 날 그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다시 올라왔다는 사실에서 놀라고, 안개를 마셨다는 부분에서 놀랐기에 안개를 담았다는 부분을 간과하고 지나갔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날 성준은 안개를 담았다고 분명 이야기했다. 


"그럼 그 뒤로 계속 안개를 담아 왔던 건가요? 

"뭐. 처음엔 운이었고, 김 씨 아저씨 심부름 갈 때는 아저씨가 챙겨준 거고, 세 번째 정희 씨 심부름 갈 때는 또 우연으로 다시 담았고. 내가 그건 저기 정희 씨가 봐서 알아."

"정희야? 정말 저치가 안개를 담았니? 네 눈으로 봤어?"

"네. 그때 며칠 동안 안개 담는다고 저 불러내고 끌고 다녀서 알아요. 며칠을 못 담다가 갑자기 안개가 싱크대 물 빠질 때처럼 회오리 치면서 텀블러에 담겼어요. 한 순간에."

"뭐라고 한 순간? 한 순간에 텀블러 하나를 가득 담았다고?"

"뭐.... 그랬죠? 근데 왜요?"


보통 하루를 꼬박 모아도 20미리 정도를 모으는 데 저 젊은이는 한 번에 500 밀리는 되어 보이는 텀블러를 가득 담았단다. 


"어이 자네 그거 어떻게 한 거야? 한 번에 담았어? 정말?"

"아이! 뭘 알려고 그래요. 그랬다고 알고 있으면 되지."

"잠깐 아까 김 씨가 안개를 줬다 그랬어? 심부름 갈 때? "

"뭐... 그때는 김 씨가 줬죠. 챙겨가라고."


"이봐 김 씨가 왜 안개를 가지고 있었지? 설마 김 씨가 동굴 안개를 빼돌린 거야? 그동안? "


안개의 행방이 성준에게서 사라진 김 씨에게로 옮겨갔다. 하지만 이미 김 씨는 이곳에서 사라진 지 한참이 되었고, 또다시 안개의 행방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성준과 정희에 대한 의심은 어느 정도 풀렸지만, 성준이 안개를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 마을 사람들은 또다시 자신들만의 시나리오를 그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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