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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Aug 29. 2024

이러려고 내가 그 공부를 했던가?

(feat. 육아의 시작)

우리도 경력이 끊어지기 전에는 사회인이었다. 이른 아침 커피로 혈관을 채워가며 출퇴근 지옥과 같은 대중 교통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회인이었다. 못 이룰 것 같은 프로젝트를 실현해가는 시간들은 어쩌면 청춘 만화같았다. 수많은 역경들이 시시탐탐 쏟아져 나왔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꾸역 꾸역 그 일을 해내어 갔고, 끝내 그 프로젝트를 성공시켰을 때 느꼈던 희열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때때로 금전적인 보상이 뒤따르기도 했다. 사회인의 영역에서는 항상 문제를 직면하고, 방법을 찾기위해 모든 노력을 했다. 내가 가진것, 가져야 할 것, 필요한 것들을 구분하고 찾아내고, 익혀가는 과정을 반복해 가면서 문제를 해결하고는 했다. 나는 나의 지적 능력을 보상으로 바꿔가면서 나의 자존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능력이 곧 경력이 되었고, 경력은 내가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현금으로 바뀌어 돌아왔다. 경력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모두가 다 소용없어 졌다. 



요즘 시기야 대학을 다니지 않은 사람을 찾는게 더 어려울 만큼 대부분 학사 학위쯤 하나는 다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대부분 그렇다. 석사, 박사 학위까지 획득한 사람들도 부지기수일 정도로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매우 많다. 우리 조직원들도 그렇다. 우리 조직도 꽤 높은 지적 수준을 지니고 있는 인재들이 꽤나 많은 편이다. 물론 유학파도 다수 포진하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가 지적 수준이 부족해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문제는 지적 수준이란 비교할만한 대상들과 함께 어우러져 생활을 할 때 빛을 발휘하게 되는 능력이다. 경력이 단절이 되며, 생활 반경이 극도로 작아진 상황에서는 지적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적어진다. 만약 당신의 경력 단절의 이유가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것이라면, 이런 상실감은 더 커질 지 모른다. 


내가 세 아이의 육아를 담당하면서 아이와 나누는 가장 고차원적인 대화는 만화 캐릭터의 스토리와, 10음절 가까이 되는 공룡 이름을 외우는 것이 전부였다. 


이번 아이템의 콘텐츠를 어떤 방향이 되어야 할지, 마케팅 타켓은 누구로 해야 할지, 콘텐츠 제작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의 고민은 전부 딴 세상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고차원적인 고민이라야, 아이가 열이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제보다 횟수가 늘어난 배변에, 아이의 장 건강을 고민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때로는 그런 고민마저 하지 않은 채 시간이 되면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만을 반복하는 때도 많았다. 


영유아의 이 시기에는 이성이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고등 박사 학위를 지닌 사람이라도, 아이의 까무러질 듯한 울음 소리에는 이성적인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육체적인 불편함과 고통이 아닌 경우에 울음이 멈출 때까지 업거나 안아서 두둥두둥 어르는 수밖에 없다. 이때의 커뮤니케이션은 지적 수준을 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감하거나, 인내하거나 그렇지도 않으면 본능적으로 아이의 평안을 바라는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어디에서도 이런 경우의 대응책을 배운 적이 없다. 학교에서도, 비싼 수업료를 내었던 학원과 과외 선생님에게도 이런 일을 대비하라고 조언 받은 적 없다. 


경력 단절인이 가장 체감하는 현실속 괴리감 중 커다란 한가지가 바로 이것이다. 


이러려고 내가 그 공부를 했나?



물론 시각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지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와의 생활을 기록으로 남기며, 성장 과정에 대해서 느낀 점과 소회를 밝히는 한 편의 콘텐츠가 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 느끼는 육아의 장단점들의 기록도 하나의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우리가 회사 생활을 시작할 때는 최소한의 교육을 받거나, 전담으로 나의 처음을 서포트를 해줄 사수가 있곤 한다. 그렇게 우리는 성장해 간다. 하지만 냉정하게 던져진 경력 단절의 세계에서 자신을 스스로 돌보는 법은 쉽게 배우지 못한다. 과거 우리의 부모 세대에는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우선의 목표였으며, 스스로를 돌보는 법은 사치라 생각했던 시대도 있었다. 그렇게 고이 고이 귀하게 자라온 세대들이 지금의 육아를 담당하는 세대 쯤 된 것 같다. 스스로를 귀하게 대할 줄 아는 세대들이, 자신보다 더 귀한 아이들을 키워가며 부모 세대처럼 자신을 놓아가는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나도 중요한 사람인데... 아이를 키워가면서 점점 자신을 잃어 가는 듯한 느낌에 젖어든다. 


이런 기분이 울적해질만한 경험에 대해 누구도 우리에게 조언해 주지 않았다. 대부분 스스로 겪으며 경험하며 받아들이게 된다. 만약 우리 경력 단절인들도 사회생활 시작에 만났던 사수들처럼 이 생활에 대해 어떻게 대비하고 준비해야 할지 조언을 해준다면 어떨까? 우리의 삶도 조금 더 빛날 수 있지 않을까? 


대부분의 처음은 정신없이 지나가게 마련이다. 첫사랑도, 첫 사회 생활도, 그리고 첫 육아의 세계도 어느 순간보다 어색하고 실수 투성이의 현장일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육아에 정신 팔리는 시간은 분명 우리의 가장 지적 능력이 가장 고차원적으로 발휘 될 수 있는 시기다. 충분한 교육을 마쳤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제 응용 단계로 들어서는 때이며, 적절한 실패와 성과로 동기와 사기마저 충천한 시기와 어쩌면 겹치는 것도 같다. 그런 그 순간에 우리는 가장 단순한 노동을 반복하는 과정으로 퇴화 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취직을 하려 했었나? 이런 의심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분명히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어도, 좋은 직장을 다니지 않았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육아의 중요한 점은 지적 능력이 아닌 아이에 대한 애정이다. 모성애, 부성애가 육아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일로 지적인 능력과는 상관관계가 깊지 않다. 


지적 능력이 충만한 시기에 지적 능력이 중요치 않은 일들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힘들다. 더욱이 우리는 사회생활을 경험한 후라, 단점도 알고 있지만, 장점 역시 경험을 했다. 경력 단절인의 시간과 직장인의 시간이 비교가 되는 것은 당연할 수 밖에 없다. 


배움이란 단순한 지식의 적립이 아닌 삶의 방식이다. 


신입 사원을 뽑는 와중에 학벌을 보는 이유는 어쩌면 학벌이란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떻게 생활을 해왔는지 가장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지표라고 했다. 꾸준히 노력하고, 갈고 닦은 결과가 학벌로 표현 된다는 것이다. 100%로 인정 할 수는 없지만, 마냥 아니라 부정하기도 어렵다. 성실한 모든 사람들이 좋은 학벌을 얻는것은 아니지만, 좋은 학벌을 지닌 사람은 성실한 과정을 충분히 견뎌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한 것이 단순히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함으로 완성 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공부를 목적으로 삼기도 하지만, 그 공부가 때로는 우리가 삶은 살아가는 방법이 되어줄 때도 있다. 


앞서 말했듯 공부란 인내와, 꾸준함의 연속이 합쳐졌을 때 완성되는 재미없는 일들의 반복이다. 그 과정들이 우리의 삶에 녹아져 있다. 공부란 지식을 쌓는 것이 전부가 아닌 그런 과정을 인내하고 견디고 다시 반복할 수 있는 경험을 몸 속 깊이 심어놓는 것이다. 


지금의 경력단절이 우리에게는 위기가 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 우리에게 장점으로 다가와 주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는, 우리 삶의 변곡점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우리는 지금의 기회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될테니까.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말자. 우리가 지금껏 헤쳐나오고, 지나왔던 모든 문제들 처럼 우리는 지금의 불안함도 극복해 나갈 것이다. 그 방법이 궁금할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해결책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는 법이니까. 그럼 어디 그 방법이 무엇일까 천천히 파헤쳐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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