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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는 사람을 말한다

by 성준

한동안 잊고 있던 서랍 속에서 오래된 엽서를 발견했다.

몇 해 전 누군가가 보내온 짧은 인사.

“잘 지내고 있나요?”


딱 다섯 글자였지만, 그 안에는 묘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한 획 한 획 신중하게 눌러 쓴 글씨에서 상대의 성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차분하고 단정한 마음이, 그 필체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요즘은 손글씨를 쓸 일이 거의 없다.

스마트폰이 메모장을 대신하고, 이메일이 편지를 대신하는 시대다. 그래서인지 손글씨를 마주할 때마다, 그 흔적이 더 깊이 다가온다. 귀티 나는 사람은 자신이 남기는 작은 흔적 하나도 허투루 두지 않는다.

손글씨 역시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말투와 태도가 글씨에 묻어난다면, 정돈된 글씨는 곧 그 사람의 품격이 된다.



글씨에서 풍기는 첫인상


누군가에게 메모 한 장을 건넬 때,
상대는 그 내용보다 먼저 글씨를 본다.

흘려 쓴 듯한 글씨는 읽는 이를 불편하게 만들고, 너무 작거나 불균형한 글씨는 급한 성격을 드러낸다.
반면, 차분하고 정돈된 글씨는 그 자체만으로도 신뢰를 준다.

한 기업의 CEO는 신입사원을 면접할 때 그들이 직접 쓴 자기소개서를 유심히 본다고 했다.
글씨에는 그 사람의 성향과 습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글자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어떤 이는 무심히 흩뿌려 놓는다.


종이에 적힌 글씨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속도로 살아가는지, 얼마나 섬세한 태도를 지녔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귀티 나는 사람의 글씨는 대체로 일정하다. 크기가 고르고, 획이 단정하며, 불필요한 꾸밈없이 깔끔하다.


그 단정함이 차분한 인상을 만들고, 그 정갈함이 곧 품격이 된다.



귀티 있는 사람의 글씨는 왜 단정해야 할까


고급 레스토랑에서 받는 손글씨 영수증, 호텔에서 체크인할 때 건네는 작은 환영 카드, 오래된 서점에서 발견한 주인의 메모. 우리는 뜻하지 않은 순간, 손글씨를 마주한다.

그리고 그 글씨에서 공간이 가진 분위기를 함께 느낀다.

고급스러운 곳에서는 손글씨조차 대충 쓰지 않는다.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고, 흐트러짐이 없으며, 절제된 여백 속에 담겨 있다.

글씨를 신경 써서 쓴다는 것은 단순히 예쁜 필체를 갖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정성을 담아 표현하는 방식이다.

급하게 휘갈긴 글씨보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신중하게 적힌 글씨에서 더 따뜻한 감정을 느끼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귀티 있는 사람들의 손글씨는 대개 차분하다.
서두르지 않고, 한 글자씩 신중하게. 불필요한 장식 없이, 본질에 집중한 글씨.
그들은 글자를 통해 스스로를 정리하고, 타인을 배려한다.



디지털 시대에도 손글씨가 남기는 감동


요즘은 손글씨를 볼 일이 드물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손으로 쓴 글씨는 더 특별해졌다.

한 호텔에서는 투숙객에게 직접 손글씨로 쓴 감사 카드를 남겨둔다고 한다.
손으로 한 자 한 자 눌러쓴 짧은 인사가 그 어떤 화려한 서비스보다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귀티 나는 사람들은 중요한 메시지를 전할 때, 손글씨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 축하 인사, 혹은 짧은 메모 한 장이라도 손으로 직접 적었을 때 그 의미가 달라진다.

글씨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그 속에는 쓰는 사람의 마음과 태도가 함께 스며든다.



글씨는 그 사람의 흔적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목소리는 흐려지고, 얼굴조차 기억에서 희미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손글씨는 오래도록 남는다. 책 속 한 귀퉁이에 적힌 이름, 수첩에 적어 둔 다짐, 편지 한 장에 눌러쓴 한 마디. 그 속에서 우리는 다시 그 사람을 기억한다.

손글씨는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의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담아낼 수 있는 수단이다.

귀티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남기는 작은 흔적까지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정갈한 글씨는 단순히 ‘예쁜 필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정리하는 태도이자,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귀티는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귀티는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은 행동 하나에서 드러나고, 작은 습관이 모여 태도가 된다.
손글씨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앞서 독서를 통해 내면을 정리했고, 스타일을 통해 외면을 다듬었다.

그리고 이제, 그 정돈된 태도를 글씨로 표현할 차례다.

글씨는 결국 그 사람을 닮는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적는 법을 배우는 것은, 삶을 조급하게 살지 않는 태도를 배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언제 마지막으로 손글씨를 써봤는가.
가끔은 속도를 늦추고,
손으로 한 글자씩 눌러써보는 것도 좋겠다.

그 한 획, 한 획 속에서
스스로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귀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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