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중심의 이동점
"형 결혼하면 좋아요"
30대 중반이 넘으면서 종종 들었던 질문에 나는 모범 답안을 만들어 놓았다.
"남자로서? 아님 인간으로서?
인간으로서의 삶이 질은 분명이 올라가지. 가정이 생기고 아이가 생기고, 나름 생활이 안정되고 목표가 작지만 분명해지니까. 인간으로서의 삶의 질은 높아지지... 근데 남자로서? 넌 분명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야만 할꺼야 남자로서의 삶은."
이 말을 듣는 후배들은 받아들이지는 못하겠지만 나름 앞에서는 이해하는 듯 끄덕였다. 하지만 내가 경험해본 바로는 하지말라는 이야기처럼 들렸을 것이다.
40대 중반이 다가오면서 이 질문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이젠 빼도박도 못하게 중년의 나이가 되면서 주변이 많이 변해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젊은 혈기에 부어라 마셔라 내일은 오지 않을 것 같던 술자리도 내일을 위해 자제하거나 매일 마시던 소주에서 조금은 다양하거나 고급스런 술을 찾기도 한다. 노는 것만 그런것도 아니다. 실력을 인정받고, 세상에 내 모습을 각인시키기 위해 일에 목숨걸던 모습도 개인의 추억이나 가정의 행복으로 그 관심사와 중요도가 조금씩 무게 중심을 이동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 삶의 무게 중심의 이동-
한 때는 분명 젊었던 적이 있는 사람들의 행동이 변하는 것은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찾아서 인걸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선택지로 떠밀려 간 것일까?
우리가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았기 때문에 행동이 변한 것이라면 우리는 내 자녀나 후배들을 위해 마땅히 그 지혜를 나눌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에 등 떠밀려 할 수 밖에 없는 선택을 한 것이라면 우리는 젊은이에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늙으면 다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나이가 들면서 지혜가 생겨 삶의 더 나은 방향을 찾은 것이라면 나는 과거의 젊은 나의 행동을 반성할 수 밖에 없다. 그 때의 선택은 신중하지 못했으며, 철 없거나 원초적인 욕구만을 취한 선택일 수 밖에 없다. 경험을 통해 그 선택이 잘못된 일임을 깨닫았기에 이제는 현명하게 더 나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내 삶의 방식이 변한 것이다 라는 결론을 내야 한다. 어른이 되면서 더 발전하는 모습이라는 긍정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지만 동시에 젊었을 때의 내 삶을 바르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었기에 어쩔 수 없이 할 수 밖에 없는 선택지를 택한 것일까? 등 떠밀려 선택을 강요받은 느낌이 마냥 유쾌하지는 않다. 인생에 있어 수동적이며 비겁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대로 가장 능동적인 삶이기도 하다. 젊었을 때 지금 40대와 같은 판단으로 인생을 살았다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조금은 무모하고,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수많은 경험들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계산없이 여행을 떠나지도 않을 것이고, 클럽에서 밤을 세우지도 않을 것이다. 낯선 사람과 쉽게 대화를 나누지 않을 것이고 생산적이지 않은 일들에 몰두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 일들에 집중하는 모습은 40대의 판단으로는 잘 못된 일 일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20대라는 시간 속에서는 옳은 판단일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당시의 최선의 삶을 살았고, 지금은 지금으로서의 최선의 선택을 하고 살고 있다고.
나는 과거에도 현재도 잘못된 삶을 살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 시기에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해 왔던 것이다.
20대에게 40대의 삶을 가치관을 강요할 수 없고, 40대가 20대의 가치관을 고수 할 수 없다. 우리는 같은 현재속에서도 다른 시간대를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2023년에도 젊은이와 중년이 모두 존재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무게 중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제는 그 후배들도 모두 가정을 꾸렸기에 내게 그런 질문을 할 사람이 없다. 그래도 만약 그런 질문을 다시 받는 다면 나는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아마 그때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더 길게 설명해야 겠지만 분명한 건 그들의 시간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