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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줄 몰랐어 우리가 빛이던 시간이 눈에 익어서

by 성준

나는 언제나 스스로 젊다고 믿었다. 아니, 단순히 젊다는 차원을 넘어 늘 세상의 맨 앞에서 달려왔다고 생각했다. 나는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성장했다. 흑백 텔레비전이 미세하게 깜박이던 밤, 모뎀이 숨을 들이쉬듯 내뿜던 삐익거리는 숨소리, 공중전화 부스에서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이어지던 짧은 통화들. 삐삐의 숫자가 남긴 암호를 노트에 옮기고, 친구들의 번호를 별표로 표시하던 손끝의 미세한 떨림까지 나는 기억한다. 변화는 늘 우리를 기다렸고, 우리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낯섦은 두려움이 아니라 호기심이었고, 호기심은 곧 우리의 호흡이 되었다.


우리는 IMF의 빙판을 미끄러지듯 건너면서도 다시 몸을 일으켰고, 민주화의 함성 속에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익혔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스타크래프트 씨디를 사 들고 PC방에 모여들던 밤들, 하이텔과 천리안에 접속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떨리는 손으로 입력하던 그 초록의 화면. 싸이월드 스킨에 맞추어 배경음악을 고르고, 사진의 사이즈를 줄이는 일조차 삶의 연장선이었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배웠고, 곧바로 그것으로 서로를 이해했다. 나는 그 모든 첫 경험에 당연히 앞줄에 앉아 있었고, 그래서 늙지 않을 거라 믿었다. 아니, 늙는다 해도 시대에는 결코 뒤처지지 않으리라 오만하게 확신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중년의 경계에 이르자 처음으로 뒤처짐이라는 냄새를 맡았다. 하루아침에 찾아온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 정식으로 나를 낡은 사람으로 지목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예민한 순간마다, 공기가 아주 조금 무거워지는 느낌이 반복되었다. 내가 말을 건네면 대화가 스르르 미끄러져 나가고, 내가 웃으면 웃음이 어쩐지 벽을 타고 되돌아오는 순간들이. 그 미세한 차이가 매번 내 어깨를 내려앉혔다.


회사에서 신입사원과 마주 앉아 점심을 먹던 날이었다. 나는 소스가 묻은 나무 젓가락을 몇 번 뒤집어 쥐며, 가볍게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마음으로 말했다. “요즘은 회식도 예전 같지 않지?” 내게는 무해한 관찰이자 손쉬운 공감의 문장이었다. 그러나 신입은 미소를 입에 걸고 “그쵸” 하고 짧게 대답한 뒤,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뒤집어 화면을 아래로 놓았다. 그 동작은 예의 바른 존중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차단선 같았다.


접시가 살짝 스치는 소리, 얼음물이 가볍게 흔들리는 소리만이 테이블 위를 메웠다. 나는 더 말을 보태지 못했다. 내 다음 문장이 이 공기를 더 무겁게 만들까 봐. 그때 알았다. 내가 꺼내는 과거의 낱말들이,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추억이 아니라 경고처럼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더 큰 당혹은 집에서 찾아왔다. 저녁 식탁 옆, 아이가 의자에 옆으로 기대 앉아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일인지 묻자 아이는 휴대폰을 내게 보여주었다. 화면의 상단에는 내가 본 적 없는 로고가 떠 있었고, 화면 중앙에는 2초 남짓한 영상들이 연쇄적으로 재생되었다. 자막은 틱틱거리며 화면을 가로질렀고, 알 수 없는 이모티콘들이 흘러넘쳤다. 아이의 엄지손가락은 숨을 고르지 않은 채 위아래로 미끄러졌다. “이거 뭐야?”라 묻자 아이는 말했다. “아빠는 몰라도 돼.” 나를 배려해주는 듯한, 그러나 분명히 선을 긋는 말투였다. 그 말은 공기처럼 가벼웠지만, 내 복부 한가운데로 돌이 들어앉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리하게 웃으며 “아, 재밌네”라고 말했지만, 웃음은 내 입술 앞에서 넘어지듯 멈췄다. 아이의 화면은 내가 아는 세계의 확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언어, 다른 속도, 다른 윤리로 움직이는 별도의 행성이었다. 나는 예전의 나를 떠올렸다. 리모컨을 쥐고 신문을 보던 아버지의 무덤덤한 얼굴, “그게 뭐가 그리 재밌냐”라고 묻던 목소리, 그리고 그 질문이 내 귀에 어떻게 둔탁하게 들렸는지를. 한동안 나는 아버지를 닮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살았다. 그런데 지금, 아이의 손등 위로 흐르는 푸른빛을 보며 나는 알았다. 닮지 않으려 했던 바로 그 자리에, 나는 이미 서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의 앱을 내려받았다. 첫 화면부터 눈이 아팠다. 과장된 속도, 과장된 색, 과장된 웃음들이 휙휙 지나갔다. 추천이라는 이름의 목록은 내 관심과 기호를 오해한 듯 엉뚱했다. 해시태그들은 줄임표처럼 끊겼고, 댓글은 밈과 은어의 압축 파일 같았다. 나는 몇 번이나 재생 버튼을 눌렀다가, 이해하지 못한 웃음을 흉내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끝이 멈추는 지점마다, 나는 나의 낡음을 인정해야 했다. 결국 앱을 삭제하며 나는 화면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검은 배경에 떠 있는 작은 사각형의 흔적이, 방금 전까지 있었던 내 젊음의 마침표처럼 보였다.


사회는 나를 기득권이라 불렀다. 그러나 회사의 보고서에는 숫자로 환산된 비용이라는 다른 이름이 더 크게 박혀 있었다. 구조조정의 바람이 분다고 소문이 돌 때마다, 나는 예전보다 일찍 출근해 모니터의 불을 켜고 의자에 앉아 내 등받이를 한 뼘 더 뒤로 밀었다. 아침 햇살이 창틀 가장자리를 얇게 나누며 바닥으로 떨어지면, 그 빛의 속도만이 시간의 흐름을 증명했다. 그 시간 동안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의자 손잡이뿐이었다. 사회 뉴스의 문장 속에서는 내가 가진 자였고, 회의실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 속에서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 괴리감이 내 어깨의 높이를 불규칙하게 만들었다.


한 후배가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선배님 세대는 진짜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의 눈빛은 따뜻했지만, 그 말 속에는 얇은 투명막이 함께 끼어 있었다. 위로의 언어가 돌봄의 손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경계의 표시였다. 그는 나를 ‘지나간 세대’라는 박스 안에 조심스레 넣어두고, 현재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나는 컵의 뜨거운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반복해 만지작거렸다. 컵의 열이 식을수록, 마음의 온도도 함께 내려갔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언제부터 불편해졌는가. 아마 날짜로 적을 수 있는 사건은 없을 것이다. 다만 여러 날의 가벼운 침묵들이, 여러 밤의 짧은 한숨들이, 같은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였을 뿐이다. 말이 줄어드는 만큼 눈길이 늘어났고, 설명을 포기하는 만큼 침묵의 기술이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투명해졌다. 투명함은 안전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존재의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변화를 미워하지 않는다. 변화는 내 청춘의 언어였고, 내 젊음의 문장이었다. 다만 지금의 변화는 내게 새로운 훈련을 요구한다. 더 빨리 배우는 법이 아니라, 더 느리게 이해하는 법. 먼저 말하는 법이 아니라, 나중에 묻는 법. 앞서 달리는 법이 아니라, 옆에 서 보는 법. 아이의 화면 앞에서, 신입의 침묵 앞에서, 뉴스의 문장 앞에서 나는 자꾸만 질문을 적어본다. 내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 내가 알던 것을 내려놓는 용기,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여백을 버티는 용기.


어쩌면 이 불편함은 낙인이 아니라 언어일지 모른다. 서로의 속도를 번역하기 위한, 새로운 문법의 서툰 초안.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젊다고 믿고 싶다. 젊음이란 생물학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고, 수없이 들은 문장을 나에게도 적용하고 싶다. 그러나 태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간극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도, 이제는 인정한다. 인정은 포기가 아니라 출발이다. 나는 오늘도 아이의 손가락을 따라가 보려 하고, 후배의 말끝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의 기록이 내 나이의 문장이 되리라 믿는다.


나는 다시 묻는다. 우리는 언제부터 불편해졌는가. 아마 우리가 젊음을 완성형으로 오해한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젊음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부단한 번역의 과정이었는데, 우리는 어느 날 그 번역기를 끄고도 여전히 잘 작동하리라 착각했다. 그러니 지금의 당혹은 벌이다. 그러나 벌만은 아니다. 벌은 때로 배움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낯선 앱의 인터페이스를 통해, 나는 아이의 웃음이 얼마나 빠르게 생성되고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지 배웠다. 회사의 침묵을 통해, 나는 말의 무게가 아니라 타이밍의 무게를 배웠다. 사회의 프레임을 통해, 나는 단어가 사람을 얼마나 쉽게 감옥에 가두는지도 알았다.


문득 창밖을 본다. 건물 벽을 타고 내려온 가을빛이 주차장의 보닛 위에서 잠깐 흔들리고, 사라진다. 그 짧은 반짝임이 오늘의 내 몫 같아 조금 우습고, 조금 쓸쓸하다. 그래도 손을 내민다. 세상은 여전히 앞에서 달리고, 나는 예전처럼 그 속도를 흉내 내지 못하겠지만, 속도의 가장자리에서 방향을 더 오래 바라볼 수는 있을 것이다. 방향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에게도 역할은 있다. 이름은 아직 없지만, 언젠가 불릴지 모르는 이름. 그 이름을 위해 나는 오늘의 불편함을 받아 쓴다. 여백을 더듬고, 침묵을 손에 쥐고, 다시 묻는다. 이 불편함을 언어로 만들 수 있을까. 누군가의 하루를 덜 무겁게 하는 문장으로, 나와 너 사이의 거리를 아주 조금 좁히는 문장으로.


나는 여전히 믿는다.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던 세대였고, 그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다른 방식의 용기가 필요하다. 새로움에 먼저 손대는 용기가 아니라, 새로움 앞에서 초조해하지 않는 용기. 알아듣지 못해도 다그치지 않는 용기. 내 젊음의 방식으로 남의 젊음을 평가하지 않는 용기. 그렇게 하루를 지나고 나면, 불편함은 조금 풀리고, 당혹은 조금 뒤로 물러난다. 그만큼의 틈으로 우리는 서로를 본다. 더 천천히, 더 오래. 그리고 그 느림 속에서 나는 알게 된다. 뒤처짐이 끝은 아니라는 것, 때때로 뒤에서 보이는 것들이 앞에서 보이는 것보다 더 정확할 수 있다는 것, 나의 오늘은 아직 완성형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 문장을 쓴다. 나는 불편하지만, 불편 속에서 배우고 있다. 나는 뒤처졌지만, 뒤처짐 속에서 방향을 본다. 나는 당혹스럽지만, 당혹 속에서 나를 다시 번역한다. 그리고 언젠가, 이 고백이 누군가의 밤을 덜 춥게 만들기를 바란다. 우리 세대가 애써 닦아두었던, 그러나 이제는 낯설어진 길 위에서. 낯섦을 사랑했던 우리가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기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믿어본다. 오늘도 나는 조금 느리게, 그러나 끝내 포기하지 않는 속도로, 다시 살아본다. 너의 속도를 배우며, 나의 시간을 지킨다. 오늘도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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