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기가 앞선 20대에는 흰 셔츠를 입는 직업을 갖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현실에 잘 순응하는 편이라 스스로 생각했건만 나는 돌이켜보면 Yes맨이 아닌 반골기질로 똘똘 뭉친 싸움꾼에 가까웠다. 사회에 끌려가기보다 끌고 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 되면 제일 먼저 자유로운 복장으로 출근하라 명하리라 다짐을 했다.
꿈대로 화이트 셔츠를 입지 않아도 되는 직업을 가졌다. 청바지도 괜찮았고, 카고 바지도 입었다. 연차 있는 선배들은 반바지를 입고 일하기도 했다. 이 바닥에서는 옷차림보다, 일하기 편한 옷이 최고였다. 하루 12시간 가까이를 편집실에서, 조정실에서 보내야 하다 보니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 셈이다.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하다. 입을 필요 없다 하니 입고 싶어 진다. 외부 미팅이 있거나 미팅이 없어도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싶을 때는 슈트를 입었다. 슈트를 입으면 똑바로 펴지는 허리 자세가 좋았고, 반짝반짝 광이 잡힌 구두의 또각또각 발걸음 소리가 좋았다.
간부, 임원 급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슈트를 입고 오지 않는 회사에서 슈트를 입은 나는 유난히 눈에 띄었고 곧바로 별명이 생겼다. 박 이사님이라고.. 슈트를 입고서 별명으로나마 승진을 했다.
입어야 하는 슈트라면 하나의 룰에 불과하지만 입고 싶은 슈트라면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입어야 한다는 것과 입고 싶은 것은 다르다.
남자에게 슈트는 하나의 상징이다
커리어가 있고 프로페셔널하며 어디서건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은연중에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수단이다. 애석할지 몰라도 아직 우리 사회에서 슈트 입은 남자의 이미지다. 중요한 자리에 옷차림을 고민하는 것이 이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킹스맨에서 감탄했던 콜린 퍼스의 완벽한 슈트 핏을 조금은 더 흉내 내려 노력했다. 체격을 탄탄하게 하기위해 어깨 운동을 하고, 도넛 같은 뱃살을 줄이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카라의 모양에 신경을 쓰고 소매 끝단의 길이에 민감해졌다. 기성품에서는 찾지 못할 감성과 핏을 위해 테일러 샵을 찾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은 누구도 입으라고 강요하지 않음에도 더 나은 핏을 위해 스스로를 가꾸고, 슈트를 입을 기회를 찾는다.
입으랄 땐 싫다더니....
그놈의 반골기질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