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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hamalg Jun 29. 2016

11. 거부할 수 없기에, 운명.

거부할 수 밖에 없는, 숙명.

"뭐, 엄마 아빠보단 잘 살겠네. 그냥저냥 살겠다."

나의 운명을 미리 슥(SSG) 살펴보신 스님의 허탈한 한 줄 감상평에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실제로도 그저 그런 평범한 아이들보다 약간 부족한 축에 속하긴 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아이는 비범하고, 하나를 가르쳐서 하나를 깨우치는 아이가 평범하다면, 나는 하나를 배우면 하나 보다 조금 부족하게 이해하는 아이 중 하나였으니. 밥벌이하고 사는 현재의 내 모습은 기적에 가까운 성장일지도 모른다.


스님 가라사대 "그냥저냥 살다 죽을" 운명의 나는 그냥저냥으로 부족한 머리를 타고났으나 비범하고픈 욕망만은 누구보다 대단하여 운명을 순순히 납득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모순적 생명체다. 그러나 물론, 운명론이라는 것을 믿음으로써 세이 조금 더 로맨틱해질 수 있다는 점은 나 역시 동의하는 바다. 어쩌면 미련 없이 초연하게 물 흘러가는 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불행히도 나는 인생을 로맨틱하거나 초연하게 살기 위해 운명을 믿고자 한다면, "그냥저냥 살다 죽을" 운명까지 납득해야만 했기에, 이번 생은 발버둥 치며 거스르는 수 밖에는 별도리가 없다.

운명론이란, '이 세상만사가 미리 정해진 필연적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고 하는 사상'으로 '운명이 어떤 전능의 힘을 가지고 인사(人事)의 일체를 지배한다는' 믿음이다.


이러니 저리니 해도, 나 역시 살면서 운명이라 믿고 싶었던 사건들이 전혀 없진 않았다.


1.

직장을 떠났을 때도 꼭 운명 같았다. 물론 지금 하는 일이 절실하기도 했으나 때마침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았더라면 그렇게나 미련 없이 사직서를 쓰진 못했을 거다. 하필 그 타이밍에 필연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된 건, 내가 회사를 옮길 운명이었기 때문이라 우기며 가볍게 걸어나올 수 있었다. 정말 부당한 대우라는 사건은 나로 하여금 이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 겪을 수밖에 없도록  애초에 계획되어 있었던 걸까?


2.

인간이라면 누구나 염원하는 운명의 사건은 역시나 운명적인 만남이다. 드라마 속에선 황정음이 토를 하고, 온갖 추태를 부리지만 류준열은 그녀를 사랑하게 될 운명에서 비켜갈 수 없었다. 그러나 현실 속 우리네들의 사정은 그렇게나 관대하지 않고, 몇 번의 뼈아픈 경험을 통해 운명적 만남이라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만큼이나 꿈같은 환상이란 사실을 모를 수 없게 되었다.


과거, 어거지를 부리면서까지 그와 나의 관계를 어찌나 운명으로 포장하고 싶었던지, 평범하기 짝이 던 사내연애는 우상화를 거쳐 단군신화에 버금가는 전설적인 이야기로 거듭났다. 갑자기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 사람이 일하는 회사에 지원하게 되어, 하필 그 사람의 부서로 배치받아 인턴생활을 마치고, 정직원으로 입사하게 된 모든 일들이 나를 나의 운명인 그 사람과 만나게 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한 것이라 믿었다. 다 운명 같았다. 영원히 그와 함께 있고 싶었던 나는 혹여 나와 같은 미래를 꿈꾸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가 두려워 운명이라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그를 옆에 묶어두려 부던히도 애를 썼다.


물론 그는 내가 만들어낸 운명의 굴레를 그리 오래 견디지 못하고 떠났지만.


그는 아니었지만, '하나를 배우면 하나보다 조금 부족하게 배우는' 나라는 인간과 만날 불우한 운명의 사나이가 어딘가에는 존재하는 걸까? 정말 전지전능한 어떠한 힘이 나의 삶과, 우리네들의 고달픈 인생을, 지구라는 행성의 운명을 관장하는 걸까?


우리가 우리의 인생에 무엇 하나 직접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하고, 기여할 수 없다는 믿음은 내 인생을 내가 직접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를 부여함과 동시에 무력한 좌절감까지 세트로 제공한다. 내가 어떤 난리를 피우던지 간에, 내가 어떠한 노력과 열정을 쏟아붓던지 간에,

태어남과 동시에 이미 죽는 그날까지 나의 인생은 얄구진 운명의 장난에 의해 이미 다 결정되어져 있다면, 그냥 가만히 있어도 그만이지 않은가.


슬퍼할 필요도, 기뻐할 필요도, 행복을 찾기 위해 애를 쓸 필요도,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아등바등 거릴 필요도 없다. 아등바등 살아봤자 슬퍼질 운명이라면 슬퍼질 것이다. 기쁠 운명이라면 기쁠 것이다. 행복해질 운명이라면 애쓰지 않아도 행복할 것이고, 불행할 운명이라면 애를 써도 불행할 것이다. 후회할 운명이라면 결단코 후회하게 될 것이며, 후회하지 않을 운명이라면 어떻게 되어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그 방금 말씀하신, 사주팔자의 경우의 수는, 오십일만팔천사백 가지로 남녀를 구분해서 보편적으로 백삼만육천팔백 명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즉, 저와 같은 사주팔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오십한명있는거 맞습니까?
 - 드라마 운빨 로맨스 中


열을 배워야 하나를 깨우치는 빌어먹을 운명의 나는, 비범한 이들이 하나를 배워 열을 깨우치는 동안, 이 악물고 백을 공부하여 열을 깨쳤다. 단순한 시스템의 두뇌를 타고난 덕에 생각이 떠오르면 주저 않고 행동할 수 있었다.

이루고자 한다면 못 이룰 일 따윈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의지의 문제라고. 내가 이번 생에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운명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단언컨대, 어쩔 수 없었다고, 이리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팔자를 탓하는 자들 중에 행복을 성취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패를 초연히 받아들이는 것까지는 좋으나, 무엇을 해도 안될 운명이라며 주저앉아버리면 나의 꿈은 영원히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만큼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서 공허히 떠다닐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릴 때는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없고,
나이 들면 나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으며,
늙고 나면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이 없다.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

칭찬에 익숙하면 비난에 마음이 흔들리고, 대접에 익숙하면 푸대접에 마음이 상한다.
문제는 익숙해져서 길들여진 내 마음이다.

집은 좁아도 같이 살 수 있지만,
사람 속이 좁으면 같이 못 산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를 수 없다.
사실 나를 넘어서야 이곳을 떠나고, 나를 이겨내야 그곳에 이른다.
갈 만큼 갔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갈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참을 수 있는지 누구도 모른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모든 것이 다 가까이에서 시작된다.
상처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한다. 또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도 내가 결정한다.
그 사람 행동은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은 언제나 내 몫이다.

산고를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고,
꽃샘추위를 겪어야 봄이 오며,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

거칠게 말할수록 거칠어지고,
음란하게 말할수록 음란해지며,
사납게 말할수록 사나워진다.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다스려야 뜻을 이룬다.

모든 것은 내 자신에 달려 있다.
-백범 김구


개떡 같은 운명을 납득할 수 없어 개척론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 역시 나의 운명이었다 치부해버리면 그만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애쓰면서 살아갈 운명을 타고난 거라고 말하신다면 할 말은 없다. 세상만사 설명하기 이처럼 간단한 논리가 또 있을까?


그러나 무엇이든 좋다.


그럼 나는, 개척하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 되길 선택하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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