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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hamalg Oct 09. 2016

15. 핑계를 대고 싶어 진다.

나라도 나를 토닥토닥 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 험한 세상, '나라도 나를 토닥토닥 해줘야 하는 거 아냐?'라는 자기연민적 질문은 비겁한 겁쟁이가 본인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바등거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Dear.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정신이 해이해진 나에게:


내가 강렬히 원해서 하게 된 일임에도,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니 불타오르던 열정이 어느덧 내 안에서 말끔히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그렇게나 단호했던 나의 목표가 정녕 내 속에서 만들어진 게 맞는지 의심스러워 진다. 열정은 멸종된 지 오래고, 열정을 쫒던 과거의 노력들이 관성으로 남아 피할 수 없는 일들만 영혼 없이 겨우 해치우고 있다.


참, 세상일이 내 맘 같지가 않아 애가 닳는다. 좋은 일 한번 하겠다는데도 한 번을 뜻대로 성사시킬 수가 없고, 끈기라곤 없는 같지도 않은 열정이라는 불씨는 점차 사그라든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부족하던 나의 24시간은 시간이 늘어난 것 마냥 불현듯 널널해졌다. 시간 기한에 맞춰 겨우 일을 한 개씩, 두 개씩 처리하면서 남아도는 시간은 본인을 위로하는데 낭비한다.


그래도 괜찮아. 좋은 게 좋은 거지,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잖아.

애 많이 썼어, 조금 쉬어도 괜찮아. 여지껏 별 보상 없이 잘도 견뎠다.

할 만큼 했어.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내가 미쳤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렇게 금방 사라질 의지 하나 믿고 이 고생을 시작했을까.


죄책감에서 불거진 자기연민을 위한 합리화는 필연적으로 후회와 실망 그리고 자책으로 귀결된다. 그렇게 냉혹한 현실에 내던져진 본인을 따스히 보듬고, 혹여 연약한 내 마음에 티끌만한 상처라도 날까 싶어 내 안에서 빛나던 열정, 목표, 가치관을 하나 둘 떠나보내고 만다. 그렇게 하나, 둘 비우는 건 결국엔 내 인생을 산산조각 내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무섭다.


투지와 의지를 본인의 의지로 잃어버린 나는 오롯이 나라는 인간만으로는 정의 내려질 수 없을 만큼 희미한 정체성을 보유하게 되겠지.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라면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도 가치도 없어질 테고, 나의 존재를 확인받고자 그들에게 집착하고 지독하게 의지하게 될 거야. 지혜로운 어머니, 현명한 아내가 되는 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고, 주관이라곤 없는 나약한 인간이 그렇게 될 수 있을 리 만무하잖아.

남편의 직업이나 지위가 마치 자신의 공인 양 말하는 아내가 있다. 그녀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특징, 키우는 애완견의 영리함, 정원수의 멋스러움, 살고 있는 도시의 아름다움까지 자신의 공인 양 내세운다. 정치가나 관료는 자신들이 시대 전체나 역사를 좌우하고 있는 듯 말한다. 대개의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특별히 가치 있는 것인 양 말하며, 알고 있으면 가지고 있는 것과 진배없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그들은 사물과 지식에 대해 말함으로써 자아와 그 소유욕이 얼마나 비대한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그치지 않고, 과거와 미래까지도 소유하려 든다. -니체 프리드리히

주관이 텅텅 비어 있는 인간의 자아는 남편, 아이, 애완견, 정원수, 살고 있는 도시로 채우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인생 또한 그런대로 분명 행복할 테지만, 남편이나 자식이 아닌 나 자신이 위대해지길 그토록 바라던 내가, 남편이 주인공인 인생에 가끔 등장해 밥을 차리는 아내 역할, 나의 아이가 주인공인 인생에 잠깐 등장해 용기를 북돋아주는 엄마 역할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 리 없잖아. 어디 보통 욕심이냔 말이다.


모든 건 의지의 문제다. 이제나 저제나 열정이라는 불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빌어먹을 이놈의 세상이 조금이라도 수월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속의 의지가 강인 해지는 것뿐일 것이다. 강인한 의지에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 눈앞에 떨어질 보상이 아니라 진정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 거머쥘 수 없는 반짝이는 꿈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꿈은 확실하다.

시간이 흘러, 나의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나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나에게 부끄러운 삶을 살지 말자.


나의 열정이 나태해질 수밖에 없던 그럴싸한 논리는 쉽사리 만들 수 있고, 누구라도 납득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딱 한 명, 절대 납득시킬 수 없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저 모든 이유가 실은 핑계며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 고 있는 나 자신일 것이다. 나조차 납득할 수 없는 갖가지 핑계를 떠들어대며 남들에게 중간에 포기하고만 나의 상황을 이해받으려는 시도는 거짓되기에, 설사 이해를 받는다 치더라도 부질없다. 그들이 나를 이해해준 이유가 실은 다 거짓이기 때문이다. 거짓말쟁이는 본인이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지 않고는,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없는 법이다.


인류의 존경을 받는 그 모든 위대한 위인들 역시 일말의 내적 갈등 없이 불굴의 의지를 굳건히 지킨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인 이상 그 누구도 항상 강인할 수는 없다. 풀이 죽어버린 의지가 나약함을 부추기고는 있지만 거짓부렁으로 거짓 인정을 구걸할 만큼 추악해지진 않았다.


내가 빛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의지를 꺽지 않는 것임을 실은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갈등하고 나약해지는 때가 찾아오더라도 마음을 다잡고 의지의 불씨를 되살리면 나 역시 위대해질 수 있다.


매일 밤, 가슴 먹먹해질 만큼 간절히 꿈을 바라고 또 바라야지.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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