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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hamalg Sep 05. 2017

28. 영원할 수 있을까.

변하는 것, 그리고 또 변치 않는 것.

영원하다는 것의 가치는 실로 무한한데, 이는 대부분의 것들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반지에 박힌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반짝이지만, 그 다이아몬드를 걸고 굳게 맹세한 영원한 사랑은 곧 소멸되기 일쑤다. 물론, 드물게 영원한 사랑이란 전인류의 소망을 이루는 커플도 있으나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노인이 되어서도 손을 맡잡고 걷는 커플의 사진은 지구인들의 엄청난 '좋아요' 세례를 받는다.

나 조차도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은 쉽게-그리고 너무나 자주-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늙어서도 여전히 사랑하고, 사랑받는 내 모습은 쉽사리 그리지 못한다. 어쩌면 그저 노인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하기 싫은 걸 지도.


문득 예전 남자 친구가 사줬던 묵직한 금덩어리 반지의 행방이 궁금하다. 요즘 금값이 괜찮은가?


1.

그렇지만.

그래도 확실히, 사랑은 영원했으면 좋겠다. 그 편이 훨씬 더 로맨틱하고, 숭고하고, 있어 보이기도 하니까. 변치 않는 사랑이야 말로 만인이 공유하는 공통의 염원이지 않을까. 나만 이런 건 아니라 믿을래.

그러니까 주저리주저리 서론이 길어졌지만, 어느덧 300일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한 이 사람과 나의 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라면서도 또, 그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는 고민이 본론이다.


전 직장 동기들과 간만에 저녁 모임을 가졌다. 아직 그 사람과 너무 잘 만난다는 이야기를 하자 놀란 듯이 말한다. "오면서 네가 헤어져있거나, 이미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거나 두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했는데, 아직 만나고 있을 거란 생각은 못했어서 굉장히 놀랍네." 으레 하는 짓궂은 농담이었으나, 돌이켜보니 참 그렇게나 많은 사람을 만났나 싶었다. 어쩜 매번 그렇게나 진정으로, 그렇게나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었을까. 당시에는 영원하길 절절히도 바랬지만 지금에서는 헤어져서 다행이라는 안도만이 남았는데, 그랬어야만 지금의 이 사랑이 시작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사랑이란 감정에 대한 믿음은 약해지고 만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거쳐오면서 그 열렬했던 감정은 곧 맥없이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우쳤다. 머리는 아둔하여 또다시 새로운 사람을 향해 사랑의 호르몬을 분비하는 실수를 저지르지만, 몸은 과거의 짙은 혼돈과 두려움을 기억하고 있는지 점점 가드를 있는 힘껏 올리며 사랑의 시작과 함께, 사랑이 끝날 때 까지는 끝나지 않을 탐색전을 개시한다.


또 사람을 '알면 알수록', 예의 그 관계의 지속성에 관한 의구심은 짙어지기 마련인 듯하다.

(23. 알면 알수록, https://brunch.co.kr/@teanakim/28)


정말이지 안타깝고, 사무치는 사실은, 사랑이 변치 않을 수 없는 까닭이 우리가 쉽사리 변치 않는 동물이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300일에서 365일 사이에 어김없이 찾아왔던 이별의 순간은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즈음, 아마 남녀 모두 서서히 변하게 되고, 변해가는 모습에 사랑도 변치 않을 수 없던 걸지도 모른다.

변했다기 보단 본인의 속성을 쉽사리 바꾸지 못하는-내가, 혹은-우리가, 300일의 노력 끝에 결국에는 서서히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일 테고, 그리하여 300일 동안 탐색하고, 사랑해왔던 그-혹은, 그녀-의 모습이 본모습이 아님을 깨닫게 되면 사랑이 변한다는 설명이 더 적절하겠다.


그러니까 또 말이 길어져버리고 말았지만, 300일이 넘어가면서 모든 일에 쿨한 척 ok를 외치고 서운한 일이 생겨도 사소하니까 그냥저냥 모른 척 웃어넘기던 나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집착 dna가 꿈틀거리면서 어느덧 신경이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또 나는 요즘 들어 그 사람이 엄청나게 자존심이 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본인의 자존심을 지키는 과정에서 나를 전혀 배려하지 못한다는 점에 당혹을 금치 못하고 만다.

(지극히 편파적이게 완벽히 자기중심적으로 쓰인 글이지만, 내가 쓰는 글이니 내 위주로 쓰일 밖에.)


많이 싸워보는 것도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이전 연애까지 매번 죽도록 싸우면서 엄청나게 많은 감정과 눈물을 소모했던 나로서는 싸우지 않고 만나는 우리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그래서일까? 티끌만 한 불화에도 감정이 크게 상하고 만다. 대부분의 시간, 마냥 좋기만 한 우리 둘이지만, 좋을 때야 누구든 좋기 마련 아닌가. 그렇게 피 터지게 싸웠던 과거에도 좋을 땐 그렇게 좋았다. 좋았던 시간과 좋지 않았던 시간이 비등해서 문제긴 했지만.


지금의 우리 둘은 서로 꽤나 잘 맞는 편이기 때문에 애초에 갈등이 적은 걸 테지만, 한번 갈등이 생기면, 서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확연히 달라 해결하는 와중에 되려 기분은 더 나빠지고, 더 큰 불화로 이어지고 만다.


어쨌든, 나의 사랑은 현재 진행형이니 만큼 탐색전도 계속되고 있다. 사랑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늘어나고, 그마만큼 가드도 올라간다. 앞뒤 안 가리고 사랑만 하기엔, 내가 겪었던 지난 사랑의 힘들이 너무나 미약했다.


2.

안정을 추구하는 것과, 변화를 도모하는 것. 둘 중 어느 것을 추구하는 삶이 더 로맨틱하고, 숭고하고, 있어 보이는지 사랑처럼 명쾌하다면 좋을 걸. 오리무중이다. 사랑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전통을 소중히 하고, 관습과 관례를 보존하려 애쓰는 사람이 멋있어 보여 두근거릴 때도 있는 반면 전통, 관습, 관례에 얽매이지 않고 파격을 거듭해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발전시키며, 상상도 못했던 미래를 우리의 현실로 만들어버리는 사람의 명석함에 마음이 빼앗길 때도 있다.

 

백수가 되어버린 나는 갑자기 휘몰이 장단처럼 몰아치는 결정과 선택의 소용돌이에 정신머리도, 몸뚱아리도 제대로 챙기질 못하겠고, 그래서 조금 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해진 것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기준, 가치관, 신념, 목적 등이 마련되어야 하기에 급격한 환경변화로 우왕좌왕하는 이 시점에 나의 인격을 구성하는 이러한 기본 요소들을 재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할 듯하다.


나에게 주어진 이 감사한 시간들을 살아내는 동안, 변화를 추구하는 것과 안정적인 삶을 우선시하는 것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선택의 순간들을 지나올 것인지에 대한 고찰이다.


기준, 가치관, 신념, 목적이 부재한 사람들 중 일부는 본인 행동의 명확한 근거를 마련하지 못하고, 그럴듯한 이유를 찾다 특정한 인물, 혹은 신념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게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논리적 타당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얻게 될 이익에 해를 입힐 수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어떤 것은 맹렬하게 배제하고, 또 어떤 것은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본인의 인생을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 능력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인데, 개인적으로 이런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이런 행태가 만연 하단 사실을 우리 모두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얼핏 그 구분이 명확해 보이는 목적과, 수단이라는 개념은 장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발등에 떨어진 수많은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이렇게 수단이 슬며시 목적으로 탈바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로운 일을 하기 위해 더 많은 영향력을 추구하던 사람이 애초에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권력'을 얻고자 세상에 해로운 일을 서슴지 않게 되는 스토리는 너무나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다. 요즘 자주 듣는 노랫말에서도 이런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나 너를 만나 참 많이 변했어. 꿈이 생기고, 네가 가진 꿈도 이뤄주고 싶었어. 나 그러려면 더 높은 곳에 올라가야만 했어. 더 많은 것들을 가져야 가능했어.

다 가질 때쯤 사랑보다 꿈이 더 커졌어.'

- ♬ 박원, all of my life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미치는 영향에 따라 선 또는 악이 된다.
(호모 사피엔스: 인간)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p142」

일개 평범한 호모 사피엔스에 불과한 나의 목적은, 그저 우리네 인간에게 악한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애쓰고, 선한 영향을 최대한 누릴 수 있게끔 지원하는 것에 불과하다. 인본주의 시대에 마련된 제도 아래 교육받고 살아온 평균적인 인간이 꿈꿀 수 있는 목표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실제로, 지구 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보다 호모 사피엔스가 우월하다 믿고 있음이 분명한데, 그리하여 나의 목표는 동물 애호가들에게는 자칫 잔인하게 비추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 나란 인간은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교육받은 문화시민으로서 동물의 안위도 존중할 테지만,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 최후의 순간이 도래한다면 망설임 없이 그 어떤 생명체보다도 인간의 안위를 우선할 테니.


우리는 인간의 아이들이 새끼돼지보다 특별하다는 생각이 생태적 세력균형보다 더 본질적인 뭔가를 반영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인간의 생명이 어떤 근본적인 차원에서 실제로 우월하다고 믿으려 한다. 우리 사피엔스들은 우리가 마법 같은 자질을 가졌다고 스스로 세뇌한다.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p146」
역사는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사람들은 의미의 그물망을 짜고 그것을 진심으로 믿는다. 하지만 그 그물은 곧 풀리고, 되돌아보는 우리는 그런 헛소리를 어떻게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천국에 가기를 바라며 십자군 원정에 나선다는 것은 완전히 미친 짓처럼 들린다.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p212」

그리하여, 인본주의자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현시대에서는 완벽히 멀쩡해 보이는 나의 목적-인간에게 이로운 세상-이 후세에는 '완전히 미친 짓'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그때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므로, 한 평생 부끄럼 없이 살았다고 자위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다만 기술의 발전이 너무나 빨라 호모 사피엔스인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인위 선택을 통해 바람직한 변이를 가진 개체를 선택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변이를 가진 사람을 도태시키는' (유시민, 청춘의 독서)일이 정당하다는 믿음이 만연해진다면 행복하게 자위하며 한평생을 마무리하게 될 가능성은 소원해지고 말 테지.


또 어쩌면 인간이 돼지를 죽이고 착취해왔듯 '뛰어난 지능과 성능을 가진 컴퓨터'가 '스스로의 필요와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인간을 착취하고 심지어 죽여도 괜찮'아지는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세상이 온다면 내가 편안히 눈을 감게 될 가능성은 더더욱 소원해지고 말 테지.


그리하여, 변화와 안정 중 한길을 택하기 위해 시작된 이번 고찰은 심히 삼천포로 빠지게 되었으나 목적을 다시 한번 확고히 다진만큼,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할지언정 목적에 반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동떨어진 결론에 도달하였다.


법이라는 규칙으로 구체화된 정의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국가라는 시스템 안에 서식하는 우리네 국민들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추구'하기 위해 더 자세히 법을 알 필요가 있겠다는 판단으로부터 시작된 법을 공부하겠단 열망은 이내 로스쿨 합격이라는 단기 목적에 매몰되어 버리고 말았다. 학원 상담 이후 이러한 행태는 급격히 심각해졌는데 이는 내가 해외대 졸업생(심지어 중학교, 고등학교마저!)인 동시에, 높은 연령, 한국 학생들 대비 낮은 학점 및 한국의 경쟁적인 입시체계 아래 진행되는 법학적성시험에서 고득점을 받을 가능성이 저조하다는 불길하고도 암울한 앞길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로스쿨 입학이라는 단기 목표를 이룰 가능성이 이토록 희박한 만큼 그에 대한 열망은 커져가고, 애초에 로스쿨에 입학하고자 했던 이유를 이리도 금세 망각하고 만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지 말 것.

이번의-무모한-도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님을, 애초에 훨씬 더 크고, 보다 더 정의로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유용하게 사용될 하나의 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여정이었음을 잊지 말자. 최선을 다하되, 어떠한 결과에도 크게 좌절하지 않길. 그러나 역시 나 자신이 정말로 최선을 다하길 바라고 있다. 그래야만이 떳떳할 테고, 자존감은 훼손되지 않고 보존될 테고, 또 고개 꼿꼿이 세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


새 시대는 새로운 사람을 부른다. 구시대의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새 시대의 도전에 제대로 응전하지 못하면 어떤 식으로든 도태되고 만다.
-「사마천, 사기」

그리하여, 새 시대에 발맞추고 변화를 거듭하여 도태되지 않을 수단을 끊임없이 강구하여야겠으나 나의 목적이 '미친 짓'이 되는 시대가 조금은 천천히 오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목적을 송두리째 잃는 일이 오지 않기를.


인간으로 태어난 만큼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네 인간들이, 행복한 일생을 살아가길 바라는 목표를 쉽사리 포기할 순 없는 노릇이므로.

 

3.

그도, 나도, 흘러버린 시간 동안 먹어버린 나이만큼 본성과 천성으로 이루어진 인격이 매우 견고해진 터라 내가 그를 변화시킬 수 있을 거란, 혹은, 그가 나를 바꿀 수 있을 거란 마냥 밝고, 희망찬 미래를 기대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가 나의 맞춤형 인간으로는 변모할 수 없듯, 그 어떤 남자도 나에게 꼭 들어맞진 못할 것이다. 물론 마찬가지로 그 어떤 여자도 그에게 탁 들어맞진 않을 거야. (사실 이 경우엔, 유추해보건대 과거 그가 만나온 여자들이 적어도 나보다는 꽤나 그에게 더 지극정성으로 맞춰준 것 같았으므로 완벽히 자신할 순 없다.)


그 누구도 내 반쪽마냥 나와 일심동체일 순 없단 사실을 유념하며, 계속해서 사랑하고, 계속해서 탐색하여, 변해가는(본모습을 찾아가는) 너의 모습을 지켜보는 수밖에. 지난 만남들에선 이런 명백한 사실을 유념해본 적 없던 만큼, 이번 우리의 고비는 이별로 마무리되지 않으리란 꽤나 '밝고, 희망찬 미래'를 조심스레 기대해보련다.


그와의 사랑은 영원히 지켜나갈 수 있길 바라는 한편, 인격적으로는 목적을 변함없이 지키고, 이를 위한 수단은 계속해서 진화시킬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길.


또, 시작도 하기 전 잔뜩 주눅부터 들어버린 상태지만 목적은 확고하니,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 그뿐이다.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지 말 것.

역시나, 언제나,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지 말 것.

그리하여 일생 부끄럼 없이 살아, 행복해질 것.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나를 다스려야 뜻을 이룬다.
모든 것은 내 자신에 달려 있다.
- 백범 김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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