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교환(trade-off)의 문제.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는 잃는 법.
무슨 일이든 그런 것 같다.
유학시절 내내 함께 했던 친구가 돌연 결혼을 했다. 식도 없이, 서류에 사인 한번 하고는 사진 몇 장 찍더니 그렇게 뚝딱, 금세, 유부녀가 되어버렸다.
우리 셋은 시간이 흘러도 언제까지나 함께일 줄 알았다. 꿈 많고 함께라면 무서울 게 없던 그때, 그 나이 또래의 여느 애들과 별반 다를 것 없던 우리도 사랑이니, 남자니, 결혼이니 같은 이야기를 참 많이도 했었다. 어찌 된 게 지금도 하는 이야기는 대부분 사랑이니, 남자니, 결혼이니 하는 것들 뿐이네.
20대 초반에 펼친 상상 속에서 내 친구가 나는 전혀 모르는 남자와 백년가약을 맺는 일은 없었다. 서로가 옆에 없는 결혼은 꿈에서도 본 적 없다.(당시에 그런 꿈을 꿨다면 꿈이라도 서운한 마음이 들었을게 분명하다. 악몽.) 어쨌든 그 기절초풍할만한 두 가지를 내 친구가 한 번에 해치운다.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게 전혀 없었던 친군데, 나는 이름도 모르는 남자와 영원히 살 거란다. 믿을 수 없어.
잘 가~(가지 마)
행복해~(떠나지 마)
학교 마치고 종종 갔던 쇼핑센터에서 퍼먹던 아이스크림, 생일 때마다 가던 소피텔 number 37, 항상 찍던 화장실 셀카, 거나하게 와인을 마시고 미친 듯이 떠들고 웃으며 뛰어 내려오던 collins street, 종종 가던 souvlaki 집에서의 대화, 엠트랙, 주막, fm, 채플린에서 비싼 돈 주고 불렀던 노래와, 너무 비싸 한 방울 흘리는 것도 용납할 수 없었던 소주.
친구의 결혼이 믿기지 않는 건, 그녀와의 시간이 너무 생생해서다.
학교 매점에서 함께 치킨 너겟을 10개씩 해치우던 때가 얼마 전인데, 결혼이라니.
결혼은 어른들이나 하는 거잖아.
우리가 결혼할 나이를 먹어버리다니.
시간을 목놓아 불러본다. 언제 요로코롬 흘러버려 나와 친구 사이에 쌓여버린 것이냐.
나와 다른 친구는 한국에 들어온 지 벌써 7년이 되어가고, 결혼한 친구는 아직 호주에 있다. 그녀의 7년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이렇게 서로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어질 줄이야.
진정한 흑역사는 그녀들만 안다.(그래야만 하고.) 그녀들의 과거도 마찬가지지만.
아직도 우리의 만남은 나의 흑역사로 시작된다. 패션 테러리스트였던 것이다. ㅎㅎ 그녀들의 기억력도 상당해서, 첫 만남에 내가 입은 의상을 또렷이 기억한다. 아니, 기억력이 상당하다기 보단 그만큼 충격적인 건가. (캐릭터 티셔츠에, 코르덴 치마, 무테안경........... 신발과 화장이 더 가관이지만 차마 거기까진 이야기 안 할래.)
예전에 우린 서로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함께였던 그 시간 동안은 정말 자신만만했다. 좋게 말하면 자존감이 어마어마했고. 실은 한마디로 그냥 좀 재수 없었다. 자신만만할만한 이유도 없이 그냥 그랬다.
호주를 떠나 한국에 자리를 잡은 나와 친구는 웃으며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말했다. '네가 결혼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옆에 없어서야.'
아닌 게 아니라, 한국에 있는 친구는 실제로 지난 남자 친구들에게 너는 친구(나) 만나고 오면 좀 이상해진다는 핀잔을 듣곤 했다. 아직도 과거의 재수 털림이 약간은 남았는지 내 친구가 누구랑 만나도 아깝다.
결혼한 친구는 눈물도, 정도 많다.
학교 화장실에서, 벤치에서, 카페에서, 노래방에서 우린 종종 같이 울었다.
그냥 같이 보내는 시간들이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찔끔 날 때도 있었고, 서로에게 속상해서 펑펑 울 때도 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별일 아니지만 그땐 나름 심각했던 고민들을 터놓으며 울 때도 있었다.
내가 함께하지 못한 그녀의 지난 시간들을, 갓 이름을 외운 그녀의 남편이 채웠다.
그 시간 동안 그녀의 눈물과, 웃음에도 그 사람이 함께였겠구나 싶은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내 친구 옆에 있어준 그분에게 감사한 마음도 이제야 생긴다.
친구가 연애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가족의 반대가 심했어서 내심 그녀가 결혼까지 못할 거라 여겼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도 지금에야 외우게 된 거리라. 용감하게 사랑하는 사람과의 미래를 거머쥔 친구가 자랑스럽다. 그 어떤 풍파가 닥쳐도 이 사람과 함께하지 못할 미래보다는 나을 거라는 확신.
그래, 사랑은 그런 거다.
이것저것 따지고 드는 욕심쟁이 나랑은 차원이 다르다. 멋있는 사람이다.
친구도 앞으로의 시간을 그분과 함께 하기 위해 많은 걸 내어주었을 것이다.
그래, 사랑은 그런 거다.
기왕 자신만만했던 시절 이야기를 한 김에 자신감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려 한다.
나는 (아마) 꽤나 자신 있어 보일 거다.
(요즘의 나는 백수인 데다, 도넛 방석을 팔에 차고, 민낯으로 학원을 오 다니는 통에 100% 확신할 순 없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 진 몰라도
나 자신은 여전히 내 자존감만큼은 높게 평가하고 있는데, 그에 비하면 자신감은 크게 없는 편이다.
일견 모순 같아 보이지만 사람이라는 게 원래 이런 면도 있고, 저런 면도 있고 그런 거니까.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뭐든지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이룰 거라 쉽게 믿지 못하니까 용을 쓴다.
다행히 용을 쓰며 지나온 시간에는 자신이 있다. 앞으로도 용을 쓴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나갈 거란 점만큼은 믿는다. 그래서 그런가 미래의 성취보다는 오히려 과거로 남게 될 현재를 위해 더 열심히인 셈이다.
부끄럽지 않은 과거의 시간으로 자존감을 높이 높이 쌓아 올리지 않으면 영 믿음이 안 가는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기 힘이 드는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나는 오늘도 부끄럽지 않은 하루를 보내려 용을 썼다.
어제도, 그제도.
내일도 그럴 거고.
지나온 시간들 중 부끄러운 시간은 없다. 아쉬운 점은 많지만.
전에는 분명 누구보다 빨리, 누구보다 많이 가지고 싶었던 것 같다.
많은걸 욕심냈고, 이룬 것 같을 때도 분명 있었지만, 잠깐뿐이었다. 결국 욕심부린 것 중 어떤 것도 영원히 가질 순 없었다.
대신 배우긴 했다.
욕심부리는 대로 인생이 쉬이 살아지진 않는다는 점.
계획은 세우지 않아도 괜찮다는 점.
부끄럽지 않은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살아야지.
하나를 내어주면, 하나를 돌려받기도 하면서.
때로는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하기도 하면서.
욕심은 점점 줄여나가면서.
어디서 내가 참 까다롭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것, 저것 많이 따진다는 것이다.
다들 그렇게 따진다고 생각했던 건 나의 착각이었다.
하나를 내어줘야, 하나를 얻는다.
까다로움을 내려놓아야, 사랑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줄일 욕심이 한참이나 남았다.
갈길이 먼데, 살날도 (너무) 많으니 다행이다.
100세 시대 만세! 만세! 만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