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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hamalg May 11. 2016

08. 복 터진 지구인 여자

웃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대학교 새내기 시절, 바야흐로 소녀시대 티파니의 눈웃음이 주변 모든 남자들을 매료시키던 때였다.

위기감에 사로잡힌 나는 파르르 떨리는 광대와 뺨을 견디며  오랜 연습 끝에야 눈웃음 스킬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온 얼굴 근육에 경련이 올만큼 생글거리고 다녔는데 첫인상이 어땠냐는 나의 질문에 지인은 '차가운 듯 하지만 차가운 아이'라는 답변을 주었다. ^^ 어머니와 아버지는 생긴 게 어디 가니, 네가 순한 얼굴은 절대 아니지. 오히려 사나운 쪽이라며 아주 단호하게 지인의 답변에 공감하셨다. ^^ (경련이 온다.*^_^*)


그래도, 웃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예로부터 수(壽:장수)·부(富:부유)·강녕(康寧:건강)·유호덕(攸好德:이웃에 봉사)·고종명(考終命:편안한 죽음)은 인생에 바람직한 다섯 가지 복인 오복(五福)으로 꼽혀왔다. 그런데 정작 이 다섯 가지 복들은 행운(幸運)이라는 운명적 요소에 좌우된다기 보다는 나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좌우된다는 점에서 '복'이라 정의 내리기 애매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너무 사나운(까다로운) 까닭이려나. *^^*


복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복(福) [명사] 재수, 행운: (good) luck, good fortune

1.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 또는 거기서 얻는 행복.
  - 복 많은 사람
  - 복을 타고나다
  - 복이 터지다

2. 배당되는 몫이 많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옷 복
  - 먹을 복을 타고나다.

즉,  '복'은 나의 노력에 비례하여 마땅히 기대하고 얻어낼 수 없기에 복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성과는 복이 아니라 마땅한 보상이다. 오복으로 분류된 복들도 엄밀히 따지고 들자면 의지로 어느 정도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이다. 열심히 건강을 관리하고(장수)·근검절약하며(부유)·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고(건강)·주위를 항상 살피며(봉사)·후회 없이 살기 위해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는다면(편안한 죽음), 오복을 모두 누리고 이번 생 마감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요소를 진정한 '복'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최대의 복은 인복(人福)이 아닐까.

간절히 바라고 노력한다 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므로 훌륭한 인연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의 사전적 의미에 부합한다. 우연과 행운의 절묘한 하모니.


1. 정말 사소하다. 예를 들면 내가 자주 가는 별다방. 다른 지점의 스탭들보다 유독 친절한 언니들은 1년 365일 바닐라 라떼만 줄창 마시는 나를 일명 '바닐라 라떼 언니'로 부르며 반겨주고 무료 음료 쿠폰을 슬며시 챙겨주기도 한다. (*^.^* 언니들한테는 통하는 나의 생글생글)


2. 작년 가을, 무려 10박 11일이라는 기간을 홀로 스페인에서 보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화장실 들어갔다 나오면서도 방향을 헤매는 극강의 방향치인데다 학부시절엔 캠퍼스 내에서 길을 잃어 건물 공사 일을 하시던 아저씨로 하여금 나를 강의실까지 모셔다 주게 만든 치명적 길치다. 마드리드 착륙 첫날, 역에서 500m 거리에 위치한 숙소를 2시간 만에 찾아 간 나의 모험은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어드벤처다. 그렇게 스페인보다는 구글 지도를 더 많이 쳐다보며 겨우 이어나가던 여행 중반에, 기적처럼 모든 일정이 나와 동일한 내 나이 또래의 한국 사람들을 만났다. 다들 성격도 취향도 비슷한 탓에 한국에 돌아와서도 편히 연락하는 좋은 관계가 되었다.


3. 회사 선배 그리고 동기. 지금은 직장을 옮긴 탓에 같은 건물에 근무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이쁨 받고 있다. 중학교 2학년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쭉 부산에서 나고 자란 탓에 서울에 친구 한 명 없어도 전 직장 인턴 동기, 입사 동기, 선배들까지 외로울 틈 없이 챙겨주고 찾아주는 덕에 항상 뒤가 든든하다. 자주는 못 봐도, 힘들 때 힘들다고 툭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 어리숙하고 이기적인 인간에 불과한 나를 성실하고 솔직하다며 좋게만 봐주는 사람들. 또래보다 이른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때로는 허심탄회한 술친구가 되어주고 때로는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 어쩌다 이렇게 멋진 사람들이 가득한 회사로 이렇게 기가 막힌 타이밍에 입사하여 이토록 좋은 인연들만 골라서 엮어주신 건지. 나의 운빨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 신입사원의 생글거림은 지금의 경련보다 훨씬 더 생그러웠으리라.)


4. 부산에도 친구들이 있다. 유학을 떠난 이후 연락이 끊겼는데, 대학에 입학한 해에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 그 기나긴 공백이 만들어낼 어색함에 지레 겁을 잔뜩 먹고 나간 재회의 자리에서 그 누구도 화장실 조차 가지 않고 장장 5시간을 내리 떠들었다. 그리웠던 부산 사투리. 그리웠던 해운대. 그리웠던 너희들. 여전히 연락을 자주 못하는 무정하고 매정한 나를 항상 반가이 맞아주는 고마운 사람들. 어제 본 것 같은 농밀한 친밀도.


5. 나는 이 세상 현존하는 모든 여동생 중, 가장 착하고 배려 깊은 여동생을 얻은 행운아다. 슬플 때면 나보다도 더 진실한 눈물을 흘리고, 기쁠 때면 나만큼이나 행복해하며 웃는 사람인데, 앞으로도 영원히 내편이 되어줄 귀한 사람이다. 사려 깊고 배려심이 충만해서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싶은 그런 사람이 우리 집에 살고 있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자마자 나의 생활 제일 깊숙한 곳에 박혀 모든 기억과 시간을 공유해버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이 이렇게 유쾌하고, 따뜻하며, 나이가 의심될 만큼 넓은 이해심과 여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니. 운명 그리고 행운.


그저 스쳐 지나간 인연들 역시 돌이켜보면, 찰나였을지 언정 그 당시 나에게 없어서는 안될 운명 같은 만남이 아닌 것을 꼽기가 힘들다. 

아등바등 살다 지쳐가던 나에게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돼. 넌 너라는 사실 만으로도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해.'라는 말을 해준 사람. '넌 정말 특별해.'라는 말 한마디로 난 특별하다는 믿도 끝도 없는 자신감을 심어 준 사람. 별 의미 없이 툭 지나간 '넌 추진력이 있어.'라는 말은 앞으로도 그런 평을 듣고 싶다는 욕심을 심어, 떠오르는 생각을 항상 실천에 옮기고자 노력하는 사람으로 나를 바꾸었다.


가볍게 알게 된 사람에서부터 인생의 한부분을 단단히 꿰차는 사람들까지, 나와 형성된 모든 관계는 죄다 나의 경험으로 축적된다.

생각과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인연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따라 나타나고 사라진다.

간절히 바라고 노력해서 즐거운 경험을 선사할 사람들만 만날 수 있다면 사람으로 상처받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로 인해 빛나는 행복한 추억을 쌓고, 배우며 성장하고, 위로받고 영감을 받는 일이야 말로 복(福) 중의 복인 것이다.


내가 마음 쓰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마음을 내어주는 대인배들에 둘러싸인 나의 본격 인복 자랑. 나이가 들수록 상처받을까 무서워 절로 가는 마음도 붙잡는 꽉 막힌 나는 마음을 주는 일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잘 알기에, 마음을 열어주는 이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우연과 운명이 내려준 소중한 인연을 놓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노력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며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뿐. 1초 만에 스쳐 지나가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직원분에게 까지 보내본다.


경련을 동반한 나의 필사적인 눈웃음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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