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이 복잡해 생각할 것이 많은 날엔 김밥을 싼다. 재료는 단출하다. 단무지를 아예 안 먹는 사람이므로, 김밥햄, 계란, 그리고 당근 세 가지만 준비하면 된다.
(단무지를 먹지 않아 슬펐던 학창 시절의 사연 나중에 꼭.)
차갑고 깨끗한 물에 알맞게 씻은 쌀을 밥솥에 안친다. 쿠쿠가 맛있는 백미밥을 요리하는 30분 남짓의 시간 동안 속재료를 준비한다. 아주 어릴 적 엄마는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에 일어나서 김밥을 싸주곤 했는데, 그 모든 것을 압축하여 30분 만에 해결하도록 계획을 짠다.
엄마의 김밥엔 우엉도 있고, 어묵도 있고, 단무지에, 오이, 시금치, 맛살이 있지만 나는 아니므로 30분이 가능하다. 계란 5알을 계량컵에 풀어 넣는다. 맛소금으로 적당히 간을 해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계란 지단의 간을 완성한다. 사실 고수는 소금을 치는 순간부터 눈으로 간을 보지만 나는 그럴 리가 없으므로 새끼손가락을 이용해 간을 본다. 요새는 미뢰가 둔해졌는지 자꾸만 싱거워 소금을 더 친다. (결국 짜게 되는 슬픈....)
당근을 채 써는 게 가장 귀찮은 단계. 채칼을 쓴다고들 하나 쓸데없이 정석대로 배워서(엄마의 요리를 어깨너머로 배웠다.) 칼로 일일이 채 썬다. 당근은 지용성 비타민이 풍부하므로 기름에 볶을 때 가장 영양소 섭취율이 높다는, 가정 선생님의 말씀을 아직도 기억하는 나는(나 때는 기술과 가정을 따로 배웠다. 후후.) 당근은 일부러 많이 많이 채를 썬다. 눈에도 좋다고 하니, 이미 버릴 대로 버려버린 나의 시력을 보호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도 덧붙여 본다.
손이 제일 덜 가는 것은 김밥햄. 종류는 가리지 않고 그저 조금 더 저렴한 것을 구입한다. 어차피 햄 맛이 거기서 거기. 이미 라인이 잡혀있는 김밥햄은 조리하기가 가장 편하다. 죽죽 잘라서 반토막을 낸 후에 기름에 살짝 볶는다. 당근을 볶은 프라이팬에서 볶으면 더욱 좋지만 오늘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뭐. 그래도 상관은 없고.
계란이 얼추 식으면 쫑쫑쫑, 채를 썰어 둔다. 당근도 완벽, 햄도 준비 완료. 마침 쿠쿠는 백미밥을 맛있게 완성했다. 이제 밥솥을 연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연기 덕에 안경은 뿌예진다. 밥주걱으로 휘휘 저어 김을 멀리 내쫓고 미리 준비해 둔 양푼에 밥을 양껏 담는다. 어린 시절 엄마가 꼭 한 번씩 싸주던 흰 주먹밥(밥+참기름+맛소금+깨소금)을 하려면 조금 더 담아 주어야 아쉬움이 없다.
양푼에 담은 밥 위로 참기름 세 바퀴, 통깨 두 스푼, 맛소금 촵촵촵 뿌리고 비닐장갑 끼고 잘 섞어주려고 하면,
오 마이갓. 너무 뜨겁다. 뜨거워도 너무 뜨겁다. 다년간의 아르바이트 경력으로 지문이 닳고 닳아 없어진 나이지만 뜨거움은 견디기 힘들다. 한소끔 식히고 잘 저어주면 마지막 재료, 밥도 준비 끝.
김밥김을 반으로 잘라 꼬마김밥 사이즈로 만들어 두고 이제 본격적으로 김밥을 쌀 준비를 한다.
밥을 깔고 쭉쭉 펴고, 햄, 계란, 당근 순으로 올린다. 돌돌돌 말아 꾹꾹 눌러주고, 참기름 바른 후 꼭 김밥의 끝부분이 밑으로 가게 한다. 그래야 무게에 눌려 잘 붙는다. 그렇게 돌돌돌, 둘둘둘, 말다 보면 어느새 열다섯 줄은 금방이다.
달콤하고 고소하고 짭조름한 냄새가 거실에 방에 퍼지면 그때까지 게임하며 놀고 있던 가족들이
“오늘 아침은 뭐야?”
라며 물어보기 시작한다. 치즈도 넣어 달라는 추가 요청에 발맞춰 냉장고 속 죽어가던 치즈를 넣어 치즈김밥까지 만들어 내고 나면, 얼추 한 시간 반은 흘러있다.
품은 들지만 그 시간이 소중하다. 적어도 (이상하게도) 김밥을 싸는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뭐랄까, 약간은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머리를 비우게 된다. 그 느낌이 좋아 자꾸만 김밥을 싼다. 재료가 간단하니 부담도 없고 여러 줄 싸 두면 하루 종일 심심할 때 썰어 먹기 좋고, 무엇보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고. 만들고 나면 모양도 예쁘고 색도 예쁘고. 만드는 동안 생각도 지워주니 더할 나위 없고.
무엇보다 정성이 들어가 좋다. 한끼를 먹더라도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는 그 시간이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이라 좋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침에도 김밥을 쌌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고 마음도 무거워서, 일어나자마자 더 잡생각 들기 전에 밥솥에 밥 안치고 김밥을 준비했다. 한 끼 잘 먹고 도서관까지 다녀오니 벌써 저녁을 먹을 때가 되었다. 먹다 남은 김밥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나서, 저녁을 준비한다.
덕분에 머릿속은 다시 개운해지고 썩 괜찮은 주말을 보냈다. 김밥 덕분이다.
허나, 내일은 김밥을 싸고 싶지 않아 졌으면 좋겠다.
복잡함은 오늘로 끝내버리고
내일은 조금 더 가벼워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