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마음

비 오는 여름날의 추억

by 안녕

"선생님, 생각이 나서 골랐어요. 뵙고 드리고 싶은데 언제 시간이 되세요?"



이번 여름엔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 다짐한 마음을 움직인 한 통의 메시지였다.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칩거하려는 나를 꺼내어 스타벅스까지 이끈 녀석의 따뜻한 마음이 좋았다.



딴은 그랬다. 6월에 있던 서울국제도서전을 갔는데

문득 부스를 돌며 책을 보다 내가 생각이 났단다.

내게 선물하면 좋을 책 두 권을 골라 오면서

언제고 만나서 꼭 드리고 싶었단다.

시간 될 때, 만나자고 마무리하던 메시지를 잊지 않고 있다가



드디어 오늘, 내리는 비를 뚫고 우리는 만났다.



지하철 역과 가까이 붙어있는 스타벅스 2층에는 이미 들어선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지하철을 놓쳐 조금 늦는다는 성희를 기다리며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 사람을 그리며 마음을 담는 일을 해 왔다.

한 없이 준 적은 많지만

이유 없이 받은 적은 손에 꼽았다.



1년이고 3년이고 시간을 보내다

어느 시점에 사라져 버리는 아이들은 기억 저편에 머물다

마음속 서랍장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헌데 성희는 다르다.

꾸준히 염려하고 돌보는 느낌.

나를 소중하게 다루어 주는 경우는 처음이라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성희가 건넨 책을 보니 지르르르- 마음이 울린다.



<우리, 학교에서 만납시다>

<평가받으며 산다는 것의 의미>



라는 두책을 보니 녀석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내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갔으면 좋은지가 느껴진다.

고마워, 정말, 감동이야,라는 다소 식상한 말만 잔뜩 늘어놓고

약간의 수다를 곁들이다 우리는 헤어졌다.



쏟아지던 비는 그쳤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며 소소한 일상을 카톡으로 나누었다.

그렇게 녀석과의 짧은 만남은 끝이 났지만

녀석이 내게 준 마음은 아직 내 곁에 남아있다.



마침, <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라는 책을 다 읽고 나니

다른 어떤 책보다도 오늘 선물 받은 두 책이 눈에 띈다.

당장에 책갈피 하나를 집어 들고 첫 장을 펼친다.

책 페이지에 제자 성희가 마음을 담아 준 책, 이라는 글귀와 오늘을 적는다.

잊지 못할, 잊지 않을 추억을 새긴다.



분명 가을이 오면 나는 바빠질 테고

취업 준비를 할 성희 역시 여유가 없어질 테지.



"우리 겨울에 만나요. 선생님." 하며 사라진 성희를 위해서

나는, 올 겨울까지 잘 버티고 이겨내겠다.

그래서 그때에는 스타벅스가 아닌

아주 작고 소중한 카페에 앉아

길고도 길게 이야기를 나눌 테다.



분명히, 그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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