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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하다 죽은 귀신이 붙었나

by 안녕

3시 30분 즈음인가.

교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은 채 잠이 들고야 말았다. 이럴 줄 알았다. 무리하더니 드디어 체력이 바닥이 난 게다.


시험 직전까지 긴장을 하다가 모든 게 끝나니 탁, 하고 풀어지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마치 톡톡 두드려 깬 계란이 노른자와 흰자 경계가 사라진 채 힘 없이 퍼지는, 그런 모습인 셈이다.


J와의 글도 브런치북으로 엮었고, 굵직한 프로젝트도 마무리했다. 오늘 마무리할 '수기'만 끝내면 이제 정말 미친 듯이 달려온 여정도 마무리된다. 마침 3학년 아이들의 수업 시간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어 더욱 여유롭다.


워커홀릭인 나는, 이런 비움이 어쩐지 불안하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고 채워야 할 것 같다. 비어있는 시간을 두면 안 될 것 같아 자꾸만 이리저리 기웃거린다. 병이다.


키보드에 손을 얹고 잠들고,

의자에 잠시 기대어 잠드는 것은

분명 피로가 누적되어 있다는 건데

정신은 못 차리고 일을 벌이다니. 그러다 아플까 걱정된다는 옆자리 부장님 말씀을 새겨들어야 할 때다. (그런데 나는 새겨듣지 않고 또 일을 하겠지.)


가끔은 무엇을 위해 일하나 싶을 때가 있다. 아무리 열심히 수업해 봤자 아이들이 정수리만 보인 채 잠들 때, 밤을 새워 만든 학습지에 실내화 자국이 찍혀 교실바닥에 뒹굴 때, 수업 시간엔 하나도 안 들은 녀석이 시험에선 높은 점수를 받아 괘씸죄에 걸릴 때...


작은 일에 감동을 받는 만큼

작은 일에 상처도 받는다.


대체로 괜찮지만 가끔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도대체, 무얼 바라고? 큰 프로젝트가 끝이 났을 때에는 더욱 심해진다.


사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지금 내가 이 일기를 마치고 쓰려고 하는 것은 교육실습생 지도 수기 공모전 작품이다. 올해, 교육실습생을 지도한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을 살려 에세이를 써 제출하면, 수상 시에 상금을 받는다.


틈틈이 쓴 글이 거의 마무리단계다.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이다. 그런데 일단은 해 본다. 이유는? 첫째는 상금 때문이지만(최우수 50만 원, 우수 30만 원) 그에 앞서는 것은 나의 일중독 때문이다. (그것을 나는 나의 만족감 높이기, 성취감 등으로 잘 포장한다.) 가만히 있는 꼴을 못 보는 나는, 그렇게 나를 괴롭힌다. 의미를 담아 일을 시작하면서, 의미중독자가 일을 시작하니 끝이 없다.


이러한 불안의 시작은 아무래도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학을 휴학하고 동네 허름한 영화관에서 팝콘을 튀기며 등록금을 벌던 나는 지하 2층에 있던 매점이, 끔찍이도 싫었다. 남들 보기에 부끄러웠고, 친구들보다 1년 뒤처지는 게 속상했다. 시간을 땅에 버리는 것 같았고, 열등감이 마음 깊이 자리 잡았다. 많이 울기도 했고, 어둡기도 했다.


'복학하면 보란 듯이 열심히 살 거야. 다른 애들 두 배로. 내일 죽을 것처럼.'


그때부터 각종 외부활동을 시작했다. 학생리포터, 봉사단, 도서관 장학생, 과외, 각종 아르바이트. 한 순간도 쉬지 않도록 시간을 채우며 뿌듯해했다. 당시 쓰던 다이어리엔 더 이상 쓸 곳이 없을 정도로 빼곡히 약속이 들어찼다. 쉬는 법을 몰랐다.


그렇게 열심히 살고 얻은 것은 결국,

수차례 겪은 위경련과 짙은 허무주의. 이렇게 해도 삶이 바뀌진 않아. 나는 우울해. 하는 마음들이었다. 한 때 너무 아파서 다시는 이렇게 일중독자처럼 살지 않겠노라 다짐했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일상을 촘촘히 채워야 마음이 편하다. 하나, 옳지 않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일을 해야 편하다는 것은, 사실 무척 불안한 내면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걸 하지 않으면 남보다 뒤처질까 봐, 그러다 영원히 뒤로 밀릴까 봐. 그 걱정이 나를 다그치고 분단위로 일을 채우게 만드는 것이다.


조직에서의 인정은 분명 한계가 있다. 내가 없으면 일이 안될 것 같지만 내가 없어도 누군가가 나를 대체한다. 부속품처럼 느껴지는 것이 씁쓸하지만 일견 맞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일'로 받는 인정은 사실, 언제고 무너지고 흩어질 수 있는 모래성 같은 것이다.


그러니 일대신 다른 것으로 나의 내면을 채워야 한다.


해야 하는 '일' 말고,

하고 싶은 '것'으로.


깊이 고민해 봐야 할 때다.


앞으로도 매일 이렇게 (새벽 2시까지 일하는) 살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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