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감기

by 안녕

늦은 감기에 걸렸다.



가족들 다 독감에 걸려

픽픽 쓰러지던 11월도 잘 넘기고



애들마저 독감에 걸려

출석인정결석 쭉쭉 그어지던

12월도 애써 넘겼는데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내게로 왔다.



12월 26일, 어쩐지 칼칼하더라니.

목이 베일듯한 아픔 버티고

토론회를 마쳤더랬다.



동네 병원 가서

급히 약 지어먹고

한숨 쉬니 나아

방심했다.



한껏 기세 오른 추위에

마스크도 안 쓰고

돌아다녔더니

콧물은 주르륵,

기침은 콜록콜록이다.



숨 넘어갈 듯 기침을 하다 보면

온몸이 들썩인다.

목소리는 변해가고

목 넘김은 불편하다.

열이 없어 다행이다만

내 몸, 내가 모르겠다.



우스갯소리로

졸업식에 아프면 난 못 나갈 수도 있다고

했는데, 말이 씨가 되겠다.



지난한 짝사랑의 끝을 봐야 되는데

지금 이 시기에 아플 건 뭐냐.

23년부터 지금까지

마음 한편 가득 채운 아이들

떠나는 모습을 내가 봐야지 누가 보나.



계획서 쓰다가

급히 유자차 한 잔 타 마신다.

비타민씨가 많다는 유자차가 부디

9일까지만 나를 버티게 해 주길.



그리하여 9일,

모두가 떠난 자리에

모든 것이 끝난 순간에

편히 아플 수 있기를.



아직 나는, 할 것도 많고

볼 것도 많고

해줄 것도 많으니.



다 하지 못했으니.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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