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겨울잠을 잔답니다
이렇게 잠이 많은 줄은 몰랐다.
그동안 꾸역, 꾸역 참고 살았나 싶은 정도로
누우면 눈이 감겼고,
스르르 잠에 빠졌다.
남들 다하는 입시에 짓눌려
매일 같이 악몽을 꾸던 시절,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이었다.
예민한 성격은 쉬이 상처를 받았고
깊이 침잠하는 탓에
속내을 털어놓지 못했다.
가끔은 말을 꺼내어 놓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날들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고 깊이 잠에 드는 것이었다.
제일 중요하다던 고2 겨울방학,
매일을 채운 것은 잠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잊을 곳도,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감정을 지울 곳도
모두 현실은 아니었으니.
잠에 드는 그 순간은,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빠져든 동안은
잊을 수 있었으니.
깨고 나면 다시 성큼 다가온 현실이
매서웠지만, 그래도 꿈속에선
편히 쉬었다.
그게 유일한 해방구였다.
요새의 나는 그때의 나를 많이 닮았다.
애써 노력하지 않으며 하루를 보낸다.
유니와 놀다가 피곤하면
침대로 곧장 달려가고
티브이를 보다가도 소파에서 잠이 든다.
그런 나를 보며 유니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려는
심술을 부리기도 하지만
(유니는 힘이 세다. 힘이 아주 세다. 아플 정도.)
엄마는 평소에 잠도 잘 못 자고
고생한 것을 알기에
더는 나아가지 않고 잠시 나를 그대로 둔다.
그러면 나는 아주 잠시
졸았다가 깨고,
그러다가 다시 자기를 반복한다.
그야말로 겨울잠.
밤에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씻긴 후
늦은 저녁이 되면, 나는
그냥 같이 누워버린다.
일어나서 노트북을 켜고
글감을 찾던 예전 같은 에너지는
지금 잠시 멈춘 상태.
애쓰지 않아도
괜찮을까, 고민만 했다.
쉬어도 되는 걸까,
생각만 했다.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
일기에는 매일
"내일은 진짜 열심히 살자."라고 다짐했던 세월이 길다.
헌데, 아무것도 안 해도
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말끔히 비워진 머릿속엔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차곡차곡 차오른다.
5권짜리 로맨스 소설을 벌써
2권의 중반까지 읽어 가니
사랑 이야기를 써보고 싶고,
유니와 방문한 서점에서
제자가 추천한 <룩 백>이라는 만화를 보며
문득 녀석을 떠올리며 가을을 회상하기도 하며,
꽤나 괜찮은 시집을 발견해
나도 그런 시를 써보고 싶다,
마음을 품기도 한다.
그런 마음이 차고 넘칠 것 같으면
그제야 오래된 다이어리를 꺼내
하루를 옮겨 본다.
꼭 하고 싶은 일들,
미루어 두었던 일들은
어느새 손끝에서 피어올라
한 페이지에 가득 담긴다.
품고,
담고,
새기는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한
겨울잠을,
지금 자고 있다.
결코 깨기 싫은,
겨울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