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장미파'가 된 지는 모르겠다.
다만, 너무나 좋아했던 부장님이
다른 학교로 떠나가던 날,
우리끼리라도 계속 모였으면 하는 마음에
'장미파'로 이름을 지었고
4명만 남은 우리를 '유닛'으로 불렀을 뿐이었다.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지치고 힘들고
상처받아 울고 싶을 때
의지했던 사람들이다.
일이 너무 많아 벅찰 때,
복도에서 숨 가쁘게 뛰어야만 할 때,
새벽녘에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만 할 때,
수업 시간에 부적절한 표현을 쓰는 아이들을 상대하고
지친 마음을 뉘이고 싶을 때.
그때마다 찾아가면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던 사람들이다.
때로는 같이 욕을 해주고
때로는 손을 잡아 주며
마음을 도닥여준 사람들.
항상 "선생님은 어쩜 그렇게 열성적이에요?"
"정말 대단하세요!" 하며 힘을 주던. 그런 사람들.
추운 겨울 한파를 뚫고 만난 우리는
내가 꽁꽁 숨겨둔 맛집에 찾아가
일본식 가정식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과 중엔 서로 사는 것이 바빠
풀어놓지 못했던 일상들을 하나씩 꺼내 놓으니
정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부러 찾아간 카페는
2년 전 소중한 부장님과 마지막 커피를 마시던 곳.
어쩐지 그 시절이 좋고,
애잔하여 사진으로 남기니
마음 한편이 찌르르, 하고 울렸다.
아직 속이 편하지 않은 나는
카모마일 한 잔에 몸을 녹이고
나의 애정하는 그들은 각자의 음료를 앞에 두고
우리는 또 한 번의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저마다 삶의 보부상이 되어
각자의 이야기를 실어 나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뜨거운 차가 식어가는 동안,
가득 차 있던 차가 조금씩 줄어가는 동안
나는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해
가만히 그저 가만히
음미하였다.
언제고 내 몸이 나으면
이 사람들과 같이
다시 이곳에 와서
그때는 조금 더 편하게
놀고먹고 이야기를 나누리라 다짐하며.
그리고 2026년에도 변함없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우리 마음을 편히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바람은 아직도 차가운데
카페를 나서는 우리의 마음은
너무나도 따듯하여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 한 편에 온기 한 조각을
담아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