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주는 치유를 오래도록 느끼고 싶어서
그날은 정말 만사가 다 귀찮은 날이었다. 병가라도 써서 하루만이라도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어디 마음처럼 살기 쉬운가. 밥벌이를 위해서라도 출근은 꼭 해야 했다. 당장 아픈 것보다도 일이 밀린 후에 벌어질 상황이 먼저 떠오르자,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가야지. 쓰러지더라도 가서 쓰러져야지, 하며 끙차, 하고 일어났다.
"먹어야 한다, 뭐라도 먹어야 기운을 차린다."
대충 준비를 끝내고 바닥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불현듯 엄마가 늘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는 어릴 적 자주 아팠던 내가 병든 닭처럼 누워있으면 꼭 저렇게 말하곤 했다. 힘들어도 뭐라도 먹어야 한다고, 그래야 약을 먹고 얼른 낫는다고. 걱정하는 말인 걸 알면서도 듣기가 싫었다. 알았어, 알겠다고. 알아서 한다고. 퉁명스럽게 뱉어내고 잠들어 있으면 엄마는 어느새 본죽에서 내가 좋아하는 쇠고기 야채죽을 한 그릇 사 왔다. 따뜻한 방바닥에 온 몸을 지지고 있다가도 그 죽을 먹고 나면 어쩐지 아까보다는 훨씬 나아진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전날 저녁에 난 본능적으로 쿠팡에서 본죽 한 상자를 시켰더랬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는 간편 죽이었는데 맛도 가격도 따지지 않고 그냥 일단 구매했다. 지난날에 먹었던 양반죽, 비비고 죽이 다 별로여서 다시는 죽을 사지 않겠다 결심했으면서도 고민 없이 질러버렸다. 6개에 대략 17,000원. 싸지 않은 가격이었다. 엄마가 사다 주던 죽을 먹고 싶어서였을까.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싫어서였을까. 도통 알다가도 모를 마음으로 시킨 죽은, 친절하게도 다음날 새벽, 우리 집 앞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큰 기대 없이 먹은 본죽은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가격 대비 고기도 실했으며, 꽤 양이 많았다. 게다가 간도 맛도 적절해서 어제 토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입맛이 돌았다. 무엇보다도 속이 편안해지면서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분명 뭔가를 먹어서 든든한 기분인데도 속이 불편하지 않은 느낌이 너무 좋았다. 위가 아파 2~3일 정도를 포카리스웨트만 먹고 버티다가 먹은 죽 덕분에 마음까지 편해진 것이다. 마치 어떤 것을 먹어도, 다시는 체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기분까지 들었다.
아! 죽을 도시락으로 싸면 되겠네!
아주 즉흥적이지만 탁월한 생각이었다. 위가 약한 나에게 죽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음식이었다. 위가 약해서 잘 체하는 편이면서도 정신 못 차리고 매끼를 급하게 먹는 나였다. 잘 씹지 않고 삼키키 일쑤고 밥을 10분, 아니 5분 만에도 다 먹어버리는 나쁜 습관도 있었다. 게다가 도시락을 싸면서 새로운, 그리고 자극적인 메뉴를 찾기까지 했으니 여러모로 내 '위'에는 하나도 도움되지 않는 것들로만 가득했다.
죽은 여태껏 내가 싸 왔던 것과 정 반대였다. 자극적이지 않았고, 먹고 나면 속이 편했으며, 무엇보다도 간단했다. 용기 하나를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그만한 죽은 세상 그 어떤 도시락보다도 간편했고, 따뜻했다. 도시락 권태기를 앓고 있는, 위경련에 고통받는, 지금의 내게는 정말 '찰떡'같이 들어맞는 메뉴였던 것이다.
그 이후 며칠을 죽을 도시락으로 싸갔다. 익숙하면서도 좋아하는 맛이라 이틀 연속으로 먹어도 쉬이 물리지 않았다. 게다가 스트레스를 받아 쪼그라든 위에 죽 한 숟갈을 넣어주면 마치 후시딘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 준 것 같이 치료가 된 기분이었다. 한 그릇에 3~4,0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 녀석이 처방전 속에 담긴 알약보다도 나를 잘 치유해 주었다.
그동안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보통 자극적인 것들이었다. 라면, 떡볶이, 짜장면, 탕수육, 족발, 피자, 치킨, 햄버거처럼 하나 같이 강렬한 것들 천지였다. 사회생활을 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말로 풀어내지 못하는 성격이라 늘 마음 한편이 묵직했다. 울퉁불퉁 찌그러진 기분을 달래기엔 자극적인 것들이 꼭 필요했다. 한 입 먹자마자 스트레스 세포를 없애 버리는 것 같은, 위와 뇌를 마비시키는 것 같은 그런 음식들만 골라서 먹었다.
그런데 죽을 먹으니 세상 편할 수가 없었다. 마치 죽이 많이 힘들었지, 잠시 쉬어도 돼, 괜찮아, 잘하고 있어, 라며 나를 달래주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을, 기분을, 감정을 마비시키는 게 아니라 고생했다고 토닥이는 느낌. 그 느낌이 참 좋았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힐링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남짓 죽으로 속을 달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도시락으로 죽을 싸가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죽 한 그릇에 간간한 반찬 하나 넣으면 그것으로도 훌륭한 한 끼가 되었으니까. 소화가 금방 되어 금세 배고프다는 것은 약간의 단점이지만.
너무 좋았던 순간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이 따뜻함, 부드러움을 매일 맛볼 수는 없을까. 새벽 배송을 이용해야만 먹을 수 있는 대기업의 맛 대신, 좀 더 내 입맛에 맞게 할 순 없을까, 하는 고민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문득 몇 달 전에 당근 마켓에 팔려고 내놓았다가 아직 팔지 못한 이유식 밥솥이 떠올랐다.
그리고 난, 그날 저녁 창고 안에 깊숙이 넣어 두었던 이유식 밥솥을 꺼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