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나를 위한 처방전
죽은 너무나도 좋았지만 매번 사 먹자니 가벼운 주머니 사정에 그럴 순 없었다. 살림하는 주부로서 조금 더 알뜰하게 '죽을 즐길 방법'을 궁리했다. '죽 레시피, 죽 만들기'... 검색을 해보면 모두 '냄비'로 만드는 죽 레시피만 가득했다. 냄비... 냄비라... 말이 쉽지 냄비로 만드는 죽은 정말 많은 노력과 관심을 요하는 일이다. 아주 아주 약한 불로 최소 30분은 천천히 눌어붙지 않게 저어주어야 하는, 그런.
몇 개의 레시피를 훑어보다 말았다. 냄비 죽은 아닌 것으로 결정! 간단하게 먹고 싶어 시작한 일이 또다시 번거로운 일이 되면 의미가 없기도 했고. 그러다 문득, 떠오른 녀석이 있었다. 바야흐로 19년도 고민 고민 끝에 샀던 9만 원짜리 이유식 밥솥이었다.
이유식 밥솥. 아, 너무도 오랜만에 불러보는 단어다. 우리 딸 돌 전후로 후기 이유식과 유아식을 책임져 준 한줄기 빛과 같던 녀석. 열심히 일하다가 아이가 크면서 부엌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녀석. 지난 7월엔 당근 마켓 중고거래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남은 녀석.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씻은 쌀, 원하는 배율의 육수, 그리고 다진 야채와 고기를 넣고 단계를 눌러주면 끝. 55분 후에 알맞게 익은 죽이 완성되니 이보다 더 효율적일 수 없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래, 딸 만들어주던 실력으로 내 것을 만들자!
당장 냉동실로 달려간다. 소고기 다짐육 같은 게 있으면 참 좋으련만. 텅텅 비어있다. 어쩔 수 없지. 야채 칸에서 썩어 가는 중인 당근과 양파와 애호박을 꺼낸다. 다기지고, 다지고, 다진다. 2년 전엔 다지기가 귀찮아 다지기 도구로 한방에 다졌는데 그 사이 칼질이 늘었다. 150그람의 쌀을 살짝 불려 놓는다. 물은 쌀의 3~4배가 좋은데 대충 500미리 정도 넣으면 딱 좋다. 간은 어떻게 할까 하다가 산들애 멸치 육수를 조금 넣었다. 나중에 소금을 쳐서 먹을 요량으로. 그리고 3단계 취사 버튼을 꾸욱.
오랜만에 죽을 만드니 재미있었다. 모든 재료를 한 방에 다 때려 넣고 취사 버튼만 누르면 그럴싸한 죽이 완성되는 게 너무 좋아 아주 자주 죽을 해 먹었다. 위가 지속적으로 아프기도 했지만 '오늘은 왠지 아플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수시로 만들었다. 옆에서 궁금해하는 딸에게 "이거 네가 예전에 아주 좋아하던 죽이야"라고 약간의 과장도 섞어 가면서.
시금치랑 두부, 그리고 된장을 살짝 푼 죽은 어떨까 싶어 시금치 된장 두부 죽, 기본 야채만을 가득 넣은 야채죽, 새송이 버섯을 잘게 다져 애호박과 함께 넣은 버섯죽, 계란찜과 밥을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계란죽, 미역과 야채를 넣어 건강하게 미역죽까지. 물론 모든 죽이 맛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자꾸만 당겼다. 오늘은 죽을 먹고 싶은 날이야, 하면서. 속이 불편할 때마다 혹은 속이 불편해질 것 같을 때마다 한 두 끼씩 먹었다.
며칠을 그렇게 조절하니 속이 편해졌다. 뭘 먹어도 소화가 잘 되었고, 입맛이 돌았다. 특히 난 아침에 죽을 즐겨 먹곤 했는데 이른 아침이라 입 안이 까끌거려도 죽만큼은 쉬이 넘어갔다. 그렇게 먹고 가면 출근 후 커피를 마셔도 부담이 없었다. (그래서 아주 자주, 많이 마셨지만..)
꼭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위경련을 앓았던 나는 안다. 사람이 아프면 세상 누구보다 서글퍼진다는 것. 그것도 나처럼 뭔가를 먹지 못하는 아픔이 찾아오면 그 서글픔은 더욱 배가 된다는 것. 꼼짝도 하기 싫은 상태에서 먹는 것까지 부실하니 아픔은 깊어지고 마음까지 병들어간다. 어린아이가 있다면 제대로 쉬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일주일을 고생하다가 겨우 회복해도 세상은 그런 나를 봐주지 않았다. 5시간 넘는 통근거리를 이겨야 했고, 정신없이 몰아치는 일을 해야 했으며, 하원 길엔 아이를 픽업해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다 재워야 했다. 1분도 허투루 보내면 안 되는 꽉 짜인 일상은 긴장을 유발했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나는 늘 그 긴장 속에서 꼭 한 번은 아팠다. 자주, 길게, 오래.
죽을 만들어 먹으니 아파도 부담이 적었다. 만드는 방법도 어렵지 않은데다 적당히 만들어서 쟁여 놓으면 몇끼는 먹을 수 있으니 좋았다. 당장 배달의 민족이나 요기요에서 배달비를 3,000원 가까이 내며 죽을 살 필요가 없으니 마음도 편했다. 재료를 몽땅 때려 넣고 기다리는 그 55분 동안 나는 지난 나를 탓하다가 내 옆에 온 아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다 깜빡 잠이 들기도 하며 조금 쉬었다. 평소에 없을 쉼을 마치면 완성된 죽을 한 입 떠 먹었는데 그 따뜻하고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맴돌 때만큼은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잠시 편안할 수 있었다. 다 먹고 나면 속이 차분해지는 게 꼭 대답해주는 것만 같았다. 고맙다고. 나를 위해줘서 고맙다고.
그러면 나는 평온해진 마음으로 다시 뭐든 할 수 있었다. 뭐든 부딪힐 수 있었고, 뭐든 그렇게 힘을 낼 수 있게 됐다.
죽이, 그리고 내가 만든 죽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처방전이었다.
그래서 우리집 부엌 에어 프라이기 옆엔 이유식 밥솥이 제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다. 냉장고엔 당근, 애호박, 양파는 언제고 쟁여두고 다듬어 놓았다.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아픔에 대비해, 아플 때 즈음 놀라지 않기 위해 나를 위한 처방전을 만들 준비를 철저히 해둔 것이다.
이유식 밥솥, 팔지 않아 다행이었다.
3만원도 안되는 가격에 내놓았던 날, 거래를 원하는 사람이 딱 한 명 있던 날,
팔았다면 난 어쩌면 지금도 많이 아팠을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