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30초, 계란 두 알, 맛소금 톡톡, 참기름 쪼르륵
아프면 아플수록, 덜 아플 방법을 찾게 됐다. 예를 들어 까스활명수 한 상자는 늘 구비해 놓는다든가, 소화에 도움이 되는 '메부라틴'을 꼭 근처에 둔다든가 하는 방법 말이다. 위경련과 함께 딸려오는 두통을 위한 타이레놀은 늘 상시 대기 중이고. 그러나, 매번 약의 힘을 빌릴 수 없는 노릇이고 아프면 꼼짝하기 싫은 게 사람 마음이라 가능하면 평소에도 날 치유해줄 무언가가 시급히 필요했다. 무언가 부드럽고, 따뜻한, 그래서 먹으면 마음도 몸도 편안해지는 그런 것.
한창 죽을 먹으면서 다닐 때의 일이다. 죽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되는 통에 일찍 배가 고프다. 그러면 집에 가서 꼭 라면이나 김밥, 떡볶이 같은 분식이 먹고 싶다. 그것도 아주 매콤한. 이성이 감성을 누르지 못하고 퇴근길에 김밥을 사 오고 라면 물을 올리면 남편은 옆에서 어김없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데 그것조차 무시하고 내 맘대로 먹고 싶은 날이었다. 아프다 나은지 얼마 안 됐으면서 이토록 자극적인 음식을 원하는 스스로가 한심스러운 찰나, 갑자기 계란찜이 생각났다.
계란찜. 달걀찜. 얼마나 밍밍하고 심심한 이름인가. 어쩐지 애들을 위한 음식 같은 데다, 술집에 가면 서비스로 주기도 하는 그런 음식 아니던가. 게다가 우리 딸이 너무 좋아해서 거의 3년 동안 수백 개의 계란찜을 만들다 보니, 정작 내가 나를 위해서 만들어먹기엔 뭔가 냄새부터 질리기도 하고 별로여서 우리 밥상엔 제대로 올린 적 없다. 그런데 그날은 왠지 모르게 계란찜이 끌렸다. 흔하디 흔한 당근과 다진 파도 넣지 않고 만드는 계란찜이.
만드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했다. 계란 두 알, 그리고 물 적당량 (대략 40~60ml를 넣는다), 그리고 맛소금 톡톡, 참기름 쪼록 넣고 휘휘휘 저어 준다. 락앤락에서 파는 계란찜 전용 그릇을 쿠팡에서 사 둔 게 요긴했다. 유리 용기에 실리콘 뚜껑으로 되어있어 증기 배출 뚜껑만 쏙, 열어주면 된다. 무튼, 흰자와 노른자가 잘 섞여 예쁜 색이 나오게끔 한 후 전자레인지에 넣어 3분 30초만 돌리면 된다.
띠-띠-띠이-
전자레인지 알림이 울리면 냉큼 가서 계란찜을 꺼내온다.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계란찜은 특히 따뜻할 때 먹어야 제맛이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계란찜이 밍밍할 것 같지만 막상 먹으면 계란과 참기름의 고소함이 온전히 느껴져 더 맛있을 때가 많다. 김밥과 라면을 한 입 후루룩 먹고, 계란찜 한 술 떠서 먹으면 입 안부터 뱃속까지 온기가 쫙 퍼지며 편안해지고, 따뜻해진다. 그래서일까. 분식을 먹고 나면 종일 속이 더부룩한 나인데 계란찜과 같이 먹은 날엔 이상하게 속이 편했다.
그때부터였다. 모든 음식에 계란찜을 곁들여 먹기 시작한 것이.
닭볶음탕을 먹을 때도, 김치찌개를 먹을 때도, 불고기와 쌈을 먹을 때에도, 비빔밥을 먹을 때에도 언제나 계란찜을 준비했다. 아무리 맵고 자극적이어서 위에 안 좋은 음식을 먹더라도 계란찜과 함께라면 마음이 편했다. 매운 닭고기 살이 입을 얼얼하게 만들면 계란찜 한 술 떠 꿀꺽 삼켰는데, 그러면 계란찜이 내 위를 살살 달래주는 것만 같았다.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어떤 음식을 먹고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느낀 것 말이다. 게다가 계란찜과 함께 하면서부터는 부쩍 체하는 일도 줄었다!
그래서 요즘같이 추운 날에 밖에서 오들오들 떨다가 집에 들어오면 난 항상 저녁 상에 계란찜을 꼭 만들어 먹는다. 꽁꽁 얼어붙은 내 몸을 녹이는 데에는 뜨뜻한 국물보다도 부드러운 계란찜이 딱이니까. 그러면 굳었던 내 몸도 스르르 녹으면서 따뜻해지니까. 매일 같이 난 계란 두 알을 톡톡 까서 휘휘 젓는다.
인생살이에 먹는 일이 절반인데 생각해보면 이런 음식은 없었던 것 같다. 직장생활에 육아에 힘들다는 이유로 찾는 것들은 매일 같이 피자, 햄버거, 스파게티 같은 밀가루 음식이나 감자탕, 짜글이, 닭볶음탕, 찌개, 족발 같이 맵거나 짜고 자극적인 것들 뿐. 게다가 잠을 쫓는다며 커피를 하루에 4잔씩 들이켜니 이런 음식은 당장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긴 하지만 먹고 나면 과식, 폭식, 그리고 더부룩함을 남겼다. 나는 위가 약하면서도 빨리 허겁지겁 먹는 편이라 더 고생하게 되고. 30,000원에서 50,000원씩 하는 음식을 시켜 먹고 얻는 것들은 체중 혹은 위염이었던 셈인데 당장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결국 돈을 주고 병을 산 느낌이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더욱 소중해진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은데 예민해서 늘 힘든 나를 위로해주는 음식이 필요한 지금이다. 마침 아주 간단하게 나를 치유해주는 계란찜이 있으니 요새는 매일 같이 계란찜을 밥상에 올린다. 그러면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걱정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음식을 꼭꼭 씹어 잘 먹게 된다. 그러면 속이 편안해서 하루가 즐겁다. 어쩌면 '제대로 먹는 건 이런 거야!!'라는 나의 고정관념에 갇혀 진짜 '먹는 재미'를 모르고 살았지 싶다.
계란찜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느끼며 밥 한 술 뜨며 생각한다. 이토록 쉽고도 간단한 나를 위한 음식을 모르고 살았구나, 하고. 이게 바로 내 영혼을 위한 계란찜이구나,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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