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뚤어진 마음이 도시락을 향하다
단단히 체했던 모양이었다. 몸보신을 위해 싸온 닭곰탕에, 쌀밥, 그리고 파까지 얹어서 제대로 한상 차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너무 열심히 꾸역꾸역, 추운 곳에서 먹어서 체하고 만 것이다.
위가 약한 체질인 데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지속하면서 위경련을 자주 겪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위가 자주 아팠는데 그럴 때마다 꼭 동반하는 증상이 바로 '두통'이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아니 누군가가 머리를 사방에서 조이는 것 같은 두통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엄마, 엄마, 하고 부르는 딸을 뒤로하고 그만 뻗어버렸다. 녹다운. KO패. 완벽한 패배였다.
그동안 버텨온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오래, 길게, 꾸준히 아팠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 무력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간의 경험 상 최소 일주일이 걸릴 예정이었다. 일주일은 지나야 일상적인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었다.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그저 누워만 있고 싶었지만 삶이란 게 그럴 수가 없었다. 출근과 퇴근, 육아는 지겹도록 반복됐고, 마스크로 가린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하루를 버텨냈다.
새벽 5시에 눈을 떠 울렁이는 속을 겨우 달래고 출근하고, 다시 퇴근하는 일상은 꽤 벅찼다. 겨우 잡아탄 지하철 안에서 눈을 감으며 수없이 생각했다. 왜 이렇게 아플까, 왜 이렇게 약할까, 왜 이놈의 두통은 타이레놀을 먹어도 듣지를 않을까, 하는 등의.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찾다 찾다 보니 결국 화살을 '도시락', 그것도 '보온 도시락'에 돌리고 말았다.
사실, 2021년은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기에 바쁜 한 해였다. 왕복 5시간이나 걸리는 통근 시간, 자차가 아닌 오로지 대중교통을 이용한 이동, 그리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자 시간을 쪼개고 쪼개던 나날들.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 통근 버스에서 희미한 불빛에 의지하며 글을 쓰고, 그것도 안 되면 휴대폰으로 급하게 뭐라도 쓰던 나날들. 그러다 보니 본업에 소홀해져 새벽 두 세시에도 일어나 보고서를 써야 했던 순간들. 거기에 도시락을 싸겠다고 시간과 품을 두배로 들였으니, 힘이 들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분명, 아픈 것은 도시락 탓이 아니었다. 그런데 괜히 마음이 비뚤어졌다. 열심히 살아서 아픈 것보다는 차라리 도시락, 보온 도시락 자체가 내게 맞지 않아 아픈 것이 나았다. 이상한 논리였지만 그때는 그게 맞게 느껴졌다. 거봐, 일반 도시락 쌀 때는 별일 없고 안 아팠지? 보온 도시락은 무리였다니까? 그러게 애초에 사지 않았어야 해, 라면서 스스로 합리화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수개월 간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했던 내 삶이 무의미해질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한 순간도 소홀히 시간을 보낸 적 없었다. 최선을 다해 살아야 의미 있다고 여겨 매 순간 무언가를 하려고 애썼다. 내가 시작한 '도시락 싸기'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하지만 과유불급. 지나쳤다. 지나쳐서 모자란 것만 못했다.
어느 정도 컨디션을 회복하고 나니, 마음이 고요해지며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권태기를 극복하고자 샀던 보온 도시락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생각했다. 세 칸을 가득 채우려고 새벽 4시 30분부터 일어나서 고생한 나날들이 떠오르며 피식, 웃음이 났다. 아무리 그래도 열심히 살아서 아픈 건 역시나 속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살다 간 죽겠다 싶은 순간이 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결단을 할 때가 왔다.
야심 차게 산 도시락을, 잠시 저 깊은 수납장 속으로 밀어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단순해지자, 편해지자, 그리고 애쓰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