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의 탄생>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출근길은 유일한 작업시간이다. 고로, 밤새 잘 다듬은 생각들을 그때 글로 옮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쓰고 싶은 내용도 금세 에버노트에 들어 가 나오질 못하기 십상이다. 여러 번 그런 일을 겪고 나서는 휘발되는 기억력을 믿지 않는다. 하루에 한 개라도 글로 옮겨야 마음이 편한다. 쫓기는 듯 보이지만 실제론 내게 큰 위안이 된다.
너무 이른 시간 탓이었는지 오랜만에 출근해서 그런지 유난히 글이 풀리지 않았다. 좋아하는 노래를 귓가에 흘려 넣어도 글이 손가락에 맺혀 있고 나오질 않는다. 손 끝은 간질간질한데 도통 화면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 몇 번이나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결국 내려놓았다. 지금은 뭔가를 쓰기엔 아직 생각이 여물이 앉은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자 아이패드를 접어 가방에 넣고 눈을 감는다. 그래, 인정하자. 어떻게든 써보려고 했는데 안 되는 것을 받아들이자.
마침 어제 서점에서 바로 대출 서비스로 대여한 <부엌의 탄생>이라는 에세이를 가져온 것이 기억이 났다. '도시락'이란 주제로 잘 쓰고 싶어서 찾아보다 우연히 발견한 책인데 음식에 관한 시리즈 물 중 하나다. 이 책의 앞 뒤로 수많은 음식 에세이가 있는 것을 보니 구미가 더 당겼다. 사이즈도 작고 가벼워 부담이 없어 가방에 넣었는데 다, 쓰임이 있었다.
쓰지 못하겠으면 읽자는 마음으로 책을 펼치니 시골 생활을 하며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삶을 살게 된 저자의 이야기가 촘촘히 적혀 있다. 요리엔 관심이 없던 내가 도시락을 싸게 된 것처럼 저자 역시 시골로 이사를 하면서 요리를 하게 된다. 배달도, 포장도 어려운 곳에서 4년 간 살아오면서 부엌이라는 공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이 꽤나 적나라하면서도 유쾌하게 담아냈다. 특히 하나의 글 말미에 '오늘 배운 것'을 적어 놓았는데 짧은 한 줄의 문장이 글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 준다.
도시락에 대한 글을 쓰는 나는 어쩐지 저자가 부러워진다. 질투, 열등감, 좌절과 같은 감정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부럽다. 비슷한 상황을 어쩜 이렇게 잘 표현할까 생각하며 동시에 내 글도 부지런히 다듬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내가 엮어 나가는 도시락 이야기의 방향이 무엇인지, 어떤 내용을 주로 담고 싶은지를 스스로 꾸준히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따라온다. 역시, 막히는 걸 붙들고 울먹이며 쓰지 않길 잘했다. 어느 방송에서 정세랑 작가가 말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글은 언제나 재밌다.
요리도 잘 못하면서 음식 에세이를 쓰는 게 망설여진 적이 많다. 그런 날이면 요리사도 아니고, 주부 9단도 아니고, 도시락의 역사를 함께 한 사람도 더더욱 아닌데 이런 글을 엮고 싶어 하는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그 분야에 완벽한 존재, 검증된 실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관련된 글을 써야만 한다고 생각해왔던 터라 글을 연재하면서도 불안했다. 내 글은, 누군가에게 어떤 울림을 주기는 할까? 하면서.
<부엌의 탄생>을 보니 그런 마음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매 페이지마다 깨닫는다.
일단은 망치기로 했다. 망치자. 집을 불태우는 것만 빼고. 무엇이든 허용하자. 넣어보고 아닌 것 같으면 다음엔 안 넣으면 된다. 뻔뻔해지면 뭐든 조금씩 좋아질 거야. <부엌의 탄생>, 김자혜, 세미콜론, 2022
맞는 말이다. 까짓 거 망치면 좀 어떤가. 오늘 도시락이 망했으면 내일 맛있게 하면 된다. 오늘 쓴 글이 영 마음에 안 들면 잘 기억했다가 내일의 글은 달라지면 된다. 그렇게 조금조금씩 좋아지면 된다. 어쨌거나 좋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니까. 그러면 된다. 그런데 자꾸 처음부터 잘하려고 욕심을 내다보니 늘 그 끝은 불안이다. 남들과의 비교를 안고 있으니 술술 나올 것 같은 글들이 머릿속에만 맴도는 것이다. 자꾸 나 스스로를 나쁘게 몰아세우니까.
따지고 보면 내가 이 책에 흥미를 느낀 것도 저자가 처음부터 뚝딱뚝딱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같이 부족한 점이 보이고, 그것이 인간적인 매력을 줬기 때문이 아닌가.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은 없을뿐더러 글도 사람이 쓰는 것이라 사람 냄새가 나야 제맛 아니겠나.
쓰지 못할 바엔 읽자.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다시금 용기가 생긴다. 끙끙 앓고 있었다면 조금 더 늦게 알았을 것이다. 덕분에 쓰던 글을 마무리할 마음도 솟구친다. 스스로 가두었던 욕심을 하나 내려놓고 편하게 써보자. 편하게 글밥을 지어보자. 도시락을 처음 쌀 때의 마음처럼 그렇게 편하게, 그리고 재밌게.
** 맛있는 음식을 아껴 먹는 것처럼 나는 이 책을 아껴 보려고 한다. 저자처럼 책을 읽다가 잠시 멈추고 책 표지와 책등,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며 위안을 받으려고 한다. 내게는 이 책이 참 좋은 도시락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