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랜 친구
회복의 과정을 다루는 글에서 제일 먼저 나와야 할 식재료는 바로 ‘양배추’다. 아주 좋아하는 야채로 어릴 적부터 빼놓지 않고 먹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식감이 무르다, 혹은 너무 단단하다, 혹은 너무 달큼하다는 이유로 싫어하지만 나는 그런 이유로 양배추를 무척 좋아했다.
지금은 다시 먹기 힘든 막내이모표 떡볶이에 들어간 양배추가 좋아서 온갖 아양을 떨며 떡볶이를 만들어 달라 조르기도 했고, 이삭토스트가 다른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그 안에 수북하게 쌓인 양배추 때문이기도 했다. 아삭, 달큰, 그리고 씹는 맛이 무엇보다도 일품인 양배추를, 아마도 위가 아프기 전에- 그러니까 아주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것 같다. 한참을 좋아하고 나서야 양배추가 내게 참 좋은 음식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러다 보니 아프면 자연스럽게 양배추를 찾았다. ”위에 좋은 음식“이라는 키워드로 검색만 하면 바로 나오는 양배추인 데다 몇 년 전 똑같은 위경련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쟁여 두었던 음식이 바로 ‘양배추 즙’이었으니까. (개인적으로 양배추즙도 좋았는데 특유의 그 비릿한 맛이 극대화돼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비타민 U가 상처 난 위벽을 보호하고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는 말에 또다시 혹한 나는, 커피와 떡볶이와 각종 밀가루 음식으로 상처를 입을 대로 입은 위를 달래줘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단, 이번엔 조금 심각하게 위험했으니(걸어가면서 토한 적은- 20대, 30대 통 틀어 단 한 번도 없다.) 생각이 들어 양배추즙이 아닌 진짜 ‘실물 양배추’를 사기로!
동네 마트에서 간편하게 절단되어 나온 양배추는 값도 쌌다. 1/4동에 1,500원대.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가져와 식탁 위에 놓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사 오긴 했는데 뭘 어떻게 해 먹어야 하나. 매일 먹는 양배추 쌈. 아삭한 식감 제대로 살리기 힘든 그 쌈은 내 기준으로 어렵기도 어렵거니와 지겹다. 양배추로 어떤 요리를 하면 좋을까. 궁리를 하다 문득 네이버 지식인 수준으로 요새 모든 것들이 다 있는 유튜브에서 검색해 보기로 했다. “양배추”, “양배추 요리” 따위를 치니, 한 유튜브 채널이 눈에 띄었다. 정갈한 요리솜씨로 담백하고 건강한 음식을 선호하는 그는, 이미 다양한 양배추 레시피를 보유하고 있었다.
맛이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든 건. 사실 양배추를 ‘쌈’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불행히도 나의 엄마는 양배추를 좋아하지 않아 가끔 밥상에 올라오는 양배추의 모습은 모두 푹 익혀서 무르디 물러진 쌈의 형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유튜브 속 그는 양배추를 채 썰어 절이기도 하고, 밥에 얹기도 하고, 기름을 둘러 볶기도 하고, 참치와 섞어 요리를 만들기도 했다.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요리 영상을 보며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맛이 있을까? 정말?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적어도 라면보다는 건강할 테니) 그중 딱 한 개를 먼저 만들어 보았다. 양배추, 양파, 당근을 넣고 볶다가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 먹는 것으로 일종의 양배추볶음인데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밥반찬으로 먹기도 괜찮고, 그저 그것만 내어놓고 옆에 수란을 하나 곁들여도 괜찮은 점심이 되었다. 위궤양에 몸무림 치던 위가 그제야 안심을 하는 것 같은 움직임까지 보여주었으니 정말 만족스러웠다. 맘에 쏙 들어 한 이틀은 그렇게 밥을 먹었다. 양배추볶음과 수란.
한 번의 성공으로 단박에 팬이 되어버린 나는 요새 계속 그 채널 속에 다른 양배추 요리를 찾아 헤맨다. 오늘도 양배추 반 통을 사 와 깨끗이 씻고 깍둑 썰어, 대파, 당근, 달걀과 볶아 간장 + 굴소스를 섞은 양배추 달걀덮밥을 해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데다 먹고 나면 속이 편해지니 정말 너무나 행복하다. 한 번은 두부 한 모를 부치고 양배추와 달걀을 섞어 두부 양배추 달걀덮밥도 해 먹었다. 적절한 고소함과 짭짤함, 그리고 단맛이 어우러지는 것이 식욕을 돋운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아이의 하원을 코 앞에 두고 이마트몰 장바구니에 양배추 반 통을 기꺼이 넣었다. 그전까지 1/4로 컷팅된 것만 샀는데, 이제는 믿음이 생긴 셈. 앞으로 꾸준히 양배추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를 해 먹을 생각에 행복하다. 배송을 기다리며 생각한다. 더 이상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양배추를 먹지 않겠다고. 그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도록, 관리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