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제 그만. 아프지마요.

by 안녕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든 건 아이를 하원하러 걸어가던 중 밀려오는 구역감 때문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미친 듯이 올라오는 구역질. 위산으로 추정되는 씁쓸한 맛이 목 안에서 울컥, 울컥 넘어오려고 했다. 마스크 속에서 몇 번의 헛구역질을 하고 급하게 남편에게 전화를 한 후,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와 화장실 변기에서 온몸이 뒤 흔들리는 구역질을 몇 번이나 더 한 끝에 간신히 누워있는데, 아이가 남편과 함께 도착했다. 엄마가 또 아픈 모습을 보며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한 아이의 표정을 읽던 그날, 마음속으로 수차례 다짐했다. 다시는,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타고난 체력은 없으면서 식습관이 무척 안 좋았다. 분식을 좋아해 떡볶이, 김밥, 순대, 튀김, 어묵은 늘 달고 살았고, 매운 것도 좋아해 김치찌개, 김치볶음밥과 같은 자극적인 음식을 늘 곁에 두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라면이었는데, 일주일에도 네 번 이상을 먹을 정도. 하지만 이번에 나를 아프게 했던 것은 건강검진 직후, 10시간 넘게 공복 상태였던 내 위에 때려 부은 이삭토스트와 떡볶이 었다. 지금 생각하면 반쯤 미쳤던 것 같다. 그러니까 1월 10일 화요일, 건강검진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너무 배가 고파 뭐라도 꼭 먹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더랬다. 원래는 좋아하는 이삭토스트 하나만 사 먹으면 그만이었는데 (사실 그것도 위에는 좋지 않은 것이지만) 순간적으로 폭식의 욕구가 밀려왔다. 토스트 하나로는 아쉬우니까 떡볶이를 해 먹자고 다짐한 것. 굳이, 마트에 들러 어묵을 사서 집으로 달려갔다.


그 후 결과는 뭐.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이삭토스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번 먹은 후, 적당히 부른 배를 가만 두지 못하고 떡국떡을 이용해서 거의 3인분 되는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양파, 양배추, 떡, 그리고 어묵에 대파 계란까지. 아주 대놓고 제대로 차려먹은 덕에 모든 식사가 끝난 두 시경부터 미친 듯이 속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닥칠 미래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 와중에 가습기를 청소하고, 설거지를 하고, 집안을 치우기도 했다. 아이와 남편이 좋아하는 붕어빵을 사고, 아이의 손을 잡고 하원까지 했으니 그때까지는 썩- 괜찮았던 것도 같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날 저녁부터였다. 속이 불편하니 두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의 괴로움이 시작된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괴로움.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꼬박 3일이 걸렸다. 아이가 등원하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수액을 맞았다. 한 시간 동안 수액을 맞아도 진정되지 않던 두통과 위경련은 3일째 되는 날, 오후 4시가 되어서야 겨우- 회복하기 시작했다. 72시간의 괴로움은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수준. 미련 곰탱이 같은 나의 ‘식탐’으로 말미암아 4년 만에 처음 보기로 했던 친구와의 약속도 깨져버렸다. 이게 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순간적으로 폭식하는 습관과 세상에 널린 수많은 좋은 음식 가운데 굳이 위에 부담이 되는 밀가루 음식에 환장한 것 때문이었다.


참 웃기고도 슬픈 게 꼭 1년 전에도 같은 이유로 아팠었다. 위내시경을 하고 잘못 먹어서 동일한 병원에 가서 동일한 이유로 수액을 맞은 기록이 있었다. (실비 보험 청구를 하려다 보니 알게 됐다.....) 그리고 비슷한, 1년 전에- 브런치에도 ‘라면’과 ‘커피’를 줄이겠다고, 아니 아예 먹지 않겠다고 쓴 글이 있었다. 호기롭게 갖가지 조언을 담아 쓴 글의 조회수가 꽤 높았는데, 결과적으로 1년 후에 똑같이 이지경 이 꼴이 되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겨우 정신을 부여잡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흔 가까이 살아오면서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은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한우와 회가 좋다고 할 때 나는 라면 한 개만 먹으면 행복했다. 떡볶이 한 접시에 김밥 한 줄. 내가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었다. 마트에 가면 꼭 컵라면을 두 개 정도는 담았고, 웰빙스러운 서브웨이보다는 달큼한 맛이 당기는 이삭토스트가 훨씬 좋았다. 또 커피는 어떻고. 일리 캡슐을 몇 만 원치씩 꾸준히 사 쟁여 두며, 하루에 커피를 최소 두 잔은 마셨다. 아이스커피였다가 따뜻한 커피였다가 하루에 4잔까지도 마신 적, 많다. 오죽하면 딸과 소꿉놀이를 할 때 엄마가 좋아하는 건 커피,라고 할까.


자극적인 것, 아니 솔직히 몸에 그렇게 좋지 않은 것들만 먹은 삶. 그 끝에 결국 또 이렇게 아프니 문득 두려워졌다. 아직은 젊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위가 많이 망가졌으면 어떡하지, 아기 낳고 지금까지 거의 4년 동안 한 달에 한두 번씩은 꼭 위가 아팠는데, 그러다가 정말 위가 심각한 상태가 되면 어떡하지, 나는 아이도 아직 어리고 가족도 있는데 내가 아프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자,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확신이 생겼다. 적어도 지금 같은 삶을 계속 살다가는 무슨 일이 생겨도 생길 것 같은 기분. 아니 그런 확신.


그리하여, 그날 이후로 나는, 커피를 끊기로 했다. (작년과 거의 동일한 다짐이지만 이번엔 진짜다. 지금 거의 2주 가까이 먹지 않고 있다.) 그리고 라면과 같은 밀가루도 마찬가지. 봉지 라면, 컵라면을 비롯한 각종 인스턴트 면 요리도 먹지 않기로, 결심했다. (라면은 한 달 가까이 끓여 먹지 않았다.) 대신 조금 더 건강한 맛을 찾아 그동안 나 스스로 괴롭힌 위를, 내 몸을 달래주기로 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이유로 욱여넣듯 먹었는 습관까지도 고치는 중이다. 나는 밥을 무척 빨리 먹는데 제대로 씹지 않고 넘겨 위가 더욱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이젠 최소 10번 이상은 씹고 넘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가 말겠지,라는 말이 들릴까 무섭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순간순간의 유혹에 흔들릴 내가 두렵다. 때문에 내 몸을 달래주는 건강한 음식을 찾고, 만드는 과정을 기록하며 나를 조절해 보기로 한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쓸 이야기는 40년 가까이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내 몸(정확히 말하면 내 위)을 위한 레시피를 갈구하는 요리 여정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다. 무수히 많은 유혹에 흔들리기도 할 것이다. 실패한 날이 성공한 날보다도 더 많을 수 있고, 나를 스스로 합리화하며 자극적인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적어도 2024년 1월에는 다시 위경련이 왔고, 라면을 끊기로 했고, 커피를 안 먹겠다는 결심 대신에, 내가 1년 간 찾은 수많은 레시피를 보며 흐뭇하다는 마음을 전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 글은 분명,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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