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 메이트

by 안녕

어쩌다 보드게임 동아리 비슷한 것을 운영하게 됐다.


사실 추리 동아리였는데 코로나 중엔 방탈출 카페도, 학교 추리 게임도 하기 힘들어 조금씩 보드게임 동아리로 변질되던 참이었다. 졸업한 선배들처럼 잘 따라와 줄 친구들이 있겠거니 싶어 개설한 '추리 동아리'였지만 생각보다 잘 이끌어지지 않아 힘들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21년의 나는, 코로나라는 거대한 장벽 때문에 아이들을 2주, 혹은 3주 만에 만났기 때문이다. 동아리 시간이 온라인 주간에 겹치기라도 하면, 나는 구글 미트에 접속한 아이들의 출석을 겨우겨우 부른 후 <크라임씬>이나, <여고추리반>, <대탈출> 같은 예능을 틀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분명 그랬다.


"혹시 체스 좋아하세요?"


그 한 마디가 무료한 동아리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것을 그 녀석은 알까. 매일 같이 본 영상을 또 보여주며 자괴감을 느끼고 있던 내게, 오프라인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도 딱히 개성 있는 활동은 하지 못해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웠던 내게 선뜻 '제안'을 해준 그 녀석, 주영이 때문에 나의 동아리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체스라. 말이 필요 있을까?

어린 시절부터 정말 좋아하는 보드게임이었다. 초등학교 때 부르마불이 전부였다면 중학교 때에는 체스가 전부였다. 다섯 살 어린 사촌 동생과 대국을 하며 (물론 대부분 내가 이겼지만) 얼마나 짜릿했는지 모른다. 말을 이리저리 옮기다가 종국에 상대방의 '킹'을 가둘 때 외치는 '체크 메이트'라는 그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쾌감을 주었는지! 그 순간을 모으고 모아 기록해 두고 싶을 만큼 벅찬 순간들이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게임을 시작하고 싶었다. 마침, 아이들은 제각각 게임을 시작하고, 나는 끼워주지 않아 심심한 차에 녀석의 제안은 꽤나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럼. 나 완전 잘 두는데?"


호기롭게 말을 뱉고 즉시 게임을 시작했다.


쌤, 잘 두시면 저는 금방 지겠네요, 라며 너스레를 떨던 녀석은 생각보다 굉장한 고수였다. 아주 오랜만에 체스를 두어 머리가 굳은 나와 다르게 녀석은 매일 같이 체스만을 생각하는 '퀸스 갬빗'의 여주인공처럼 능수능란했고 신중했다. 퀸과 킹, 폰과 나이트, 그리고 비숍과 룩을 자유롭게 움직이면서도 허수가 없었다. 당연히 금세 귓가에 울리는 한 마디.


'체크 메이트'


이럴수가. 무엇보다 학생에게 졌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어떻게! 내가? 왕년에 체스 좀 둔다는 나였는데? 하는 생각에 마음껏 축하해주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어른스러운 녀석은, 날 다독이기까지 했다.


"쌤, 그래도 잘 두시는데요?"

"저는 매일 컴퓨터로 체스 게임 했어요."


축하한다며, 너무 잘한다며, 멋지다며, 황급히 칭찬의 말을 쏟아내고 돌아서는 내게 녀석은 또다시 체스 게임을 제안했다. 멈출 줄을 모르는 나는, 반드시 이겨 보이겠다는 일념으로 녀석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체스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사진: UnsplashFelix Mitterme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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