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부터였다.
주영이는 부쩍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당시 국어를 가르치던 선생님이었을 뿐이었는데도, 교무실과 교실의 층이 달랐는데도 불구하고 마주치는 일이 잦았다.
"선생님! 체스 언제 해요?"
"쌤! 연습하셨어요?"
따위의 말들이 들릴 때면 내심 반가우면서도, 묘한 승부욕이 솟았다. 이 녀석아, 내가 왕년에 체스 좀 두던 사람이야,라고 말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주영이와 체스를 겨루면 매번 진 쪽은 역시나 나였다. 체스를 좋아하여 매일 같이 컴퓨터와 체스 게임을 하는 주영이를, 아이를 키우며 왕복 5시간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내가 이기기엔 역부족이었으니까. 어른이어서 져 준 게 아니라 진짜 매번 처참히 패배했다. 처음엔 그럴 수 있다 생각하다가도 매번 지니까 속도 상하고 부끄러워서 통근버스에서 연습도 많이 했다.
동아리가 있는 날이 되면 주영이는 평소보다 부지런히 나를 찾았다.
"쌤, 오늘 뭐해요?"
"쌤, 오늘 체스하면 안 돼요?"
졸졸졸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히는, 들들 볶는 질문을 하던 주영이가 밉지 않았던 것은 서글서글한 성격, 그리고 성실한 녀석의 태도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항상 밝게 웃어주면서 장난을 걸어주었던 녀석 덕분에 학교에 적응 못하고 힘들어하던 내가 그 학교에, 그 학년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붙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당시 너무 힘들었던 육아의 틈바구니 속에서 '체스'라는 아주 좋은 취미를 다시금 할 수 있게 해 준 계기가 녀석이기도 하고.
놀 궁리만 하는 녀석은 아니었다. 안경 너머의 눈빛이 반짝이는 아이, 욕심이 가득해서 뭐든지 잘 해내고 싶은 주영이는 수업 시간에 정말 열심히였다. 솔직히 그런 남학생은 처음이기도 했다.
첫 학교에서 내가 본 남학생의 필통엔 컴싸(컴퓨터용 수성사인펜인데 끝이 뭉그러져 있음), 지우개 달린 연필(그나마 지우개는 빠져있고 고정하는 쇠 부분은 찌그러져 있음), 그리고 검은색 볼펜(심이 없거나, 스프링이 고장 났거나, 눌리지가 않거나...)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주영이는 달랐다. 빨강, 파랑, 검은색 볼펜은 기본이고 형광펜까지 종류별로 있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필통만큼 수업 태도도 바른 아이였다. 녀석과 친해질 즈음에 가르쳤던 단원이 음운의 변동이었는데 (모음, 자음 등을 배우는데 정말 힘들다) 그 부분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국어를 포기하는데도, 주영이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졸려도 참고, 힘들어도 버텼다. 수행평가를 본다 치면 꼼꼼히 준비해서 꼭 나에게 확인을 받았다.
"선생님! 이렇게 준비하면 돼요?"
내 한 마디가 점수로 직결되는 사이기에, 수행평가의 방향을 잡아주는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사실
"그런 거 물어보는 거 아냐! 얼른 가서 공부하 하지?"
라며 툴툴 거리며 보냈지만, 그런 주영이의 모습은 국어 교사로서 무척 고맙고 감동적인 일이었다. 열심히 공부하던 주영이는 학기 초보다 국어 성적이 많이 올랐더랬다. 70점대였던 성적이 90점을 넘어 100점까지 치솟는 것을 보며 스스로도 무척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국어 시험이 끝나면 꼭 교무실로 찾아와서 "선생님! 저 국어 97점 받았어요!!"라며 자랑하는 녀석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런 주영이를 비롯한, 2007년생 아이들이 너무나 예뻐서 힘들더라도 녀석들을 데리고 올라가 3학년 국어를 가르치고 싶었다. 2년 정도 비담임을 받았기에 어쩔 수 없다면 담임을 할 생각까지도 했다.
2022년 2월, 갑작스레 발령이 나면서 학교를 옮기게 된 날.
개인적으로는 너무 좋았지만 아쉬움도 컸다. 언제 그런 아이들을 만나게 될까. 싹싹하고 씩씩하고 열성적이면서 나를 좋아해 주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나 때문에 국어가 좋아졌다고, 선생님 수업은 온라인 수업에서도 정말 열심히 참여해 주는 거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이제 다시 못 보는 게 너무 속상했다.
당시 운영하던 구글 클래스룸에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서 학교를 떠나 오는 길에 속으로 많이 울었다.
그렇게 2022년 3월의 어느 날.
그 아이들이 너무 그리워 하루하루 앓고 있던 내게 주영이의 카톡이 한 통 도착했다.
"쌤. 이제 김영란법 아니죠? 해피 화이트 데이! 쌤 아들분(?)과 드세요!!"
화이트 데이라며 초콜릿 쿠폰을 보낸 것이 아닌가. 그것도 엄청 좋은 초콜릿을!
주영이는 이런 면이 있었다. 툴툴 대듯 장난치지만 때가 되면 이상하게 나를 챙겨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그러나!
아무리 학교를 떠났어도 받을 순 없는 일.
"녀석아. 나는 딸을 키우고 있어. ㅋㅋ 그리고 사탕 좋아해. 초콜릿 싫어해! 아주 싫어해."
라고 너스레를 떨며 다시 돌려보내면서 마음이 이상했다.
멀리서도 나를 기억해 주는 제자가 있구나.
나, 꽤 괜찮고 좋은 선생님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2021년. 가장 힘든 시기를 통과하던 나에게
당시 중 2였던, 그러니까 2007년에 태어난 그 아이들과의 시간들이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중에서도 체스라는 연결고리로 나에게 자주 다가와주고 말을 걸어주고 살갑게 대해주고, 심지어 열심히 공부까지 해주던 주영이는,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후로도, 주영이는 때마다 연락하여 안부를 전하고 있다.
이제는 고2의 중반을 달리고 있는 주영이는
힘들다고 공부가 어렵다고 하면서도
중2 시절, 나와 함께 배운 국어 수업이 종종 기억난다면서
또 나에게 소소한 감동을 안겨 주고 있다.
함께 있을 때에는 잘 모르는 것들이 있다.
부대끼고 있을 때에는 사소한 것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떠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그 아이들을, 주영이를, 많이도 아끼고 사랑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