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너를 위한 나의 성찰 일지
어디까지 솔직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에세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오는 글은 어디까지 나를 드러내야 할까, 한참을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나를 드러내는 모든 것은 사실 스스로의 '검열' 끝에 나오는 것이니 그 안에 드러나는 나는 보여주고 싶은 것임에 틀림없으니 말이다. (SNS 속 수많은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실상 행복만 있지 않으니.)
무튼, 이곳에 올린 글의 상당수는 사실 나의 엄청난 내적 검열을 거쳐 나온 것이다. 교사로서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만을 골라 담았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모습, 진심을 다해 상담하는 모습,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는 모습,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만을 담고 싶었다.
언제고 늘어지는 게으른 모습, 머리로는 이해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모습, 편견에 사로잡혀 소통하지 않으려고 했던 모습, 상황에 따라 기준을 바꿔 애매모호하게 대했던 모습은 감추고만 싶었다.
특히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그릇된 평가를 내렸던 경험은 교사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 글로 옮기기가 두려웠다. 나중에라도 이 글을 읽은 그 아이가 받을지 모르는 상처가 두렵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나의 편견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모든 것을 다 앞서서 쓰려고 하는 이유는, 이 글은 나의 부족함에 대한 성찰이기 때문이다.
내향적인 내가 교사가 되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소란스러움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산만함과 소란스러움은 퇴근 후 집에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게 했고,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게 했다. 자취방에 티브이 대신 라디오를 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8시간 넘게 아이들과 씨름하고 돌아오면 집에서는 어떤 소음도 차단하고 싶어졌다.
정글이었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매 시간 욕설이 난무했고 서로 질투하고 경쟁했다. 특히 눈에 자주 띄었던 것은 목소리 큰 아이들이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들을 마구 휘두르는 것 같은 모습들이었다. 반장이라는 이유로, 혹은 부반장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제 멋대로 좌지우지하려고 하는 모습을 볼 때면 불같이 화가 났다.
이끌려 다니던 학창 시절을 보냈다. 제 의견 하나 표현하는 게 어려워 '모든 게 다 좋다.', '너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웃던 학생이었다. 싫다는 말 하면 날 떠날까 봐, 불편하다고 말하면 그 다음날 따돌림의 대상은 내가 될까 봐 걱정돼 참고 살았다. 목소리 큰 아이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게 두려웠다. 또래인데도 그렇게 무서웠다. 어른들은 친구끼리 뭐가 무서우냐고 그랬지만, 모르는 소리다. 원래 또래가 제일 무섭다. 순식간에 돌아서는 그 눈초리를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선생님이 되고 나니 나와 비슷한 성향의 아이들은 유독 눈에 띄었다. 조용하고, 얌전하고, 소극적이고, 소심한. 그런 아이들은 말을 하지 않아도 찾아가 마음을 물어봐 주었다. 지금 괜찮니? 불편한 건 없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짓기도 했다. 나 교사로서 잘하고 있네, 라며 스스로 칭찬도 했다. 이렇게 다정하고 살뜰하다니.
하지만 성향이 다른 아이들은 어쩐지 불편했다. 특히 목소리가 크고, 항상 주도적이며, 다른 친구들을 리드하는 아이들에게는 항상 경계의 마음을 보였다. 혹시 제 뜻대로 학급을 주무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소외된 아이들을 무시하고 괴롭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반장이 그런 행동을 하는 듯하면 마음속에서 빨간불이 쨍-하고 빛났다.
현우는 우리 반 부반장이었다. 당시 중1이던 녀석은 입학 첫날부터 눈에 들어왔다. 이미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학급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늘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운동을 좋아하면서도 공부를 잘했다. 고리타분하지 않고 유쾌한 농담을 즐겨하는 모습이 또래 아이들에게는 호감을 샀다. 단박에 반 아이들과 친해졌다. 아슬아슬하게 반장이 되진 못했지만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기 좋은 부반장으로선 제격이었다.
반장과 호흡도 잘 맞았다. 성실하고 착한 반장과 유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부반장. 교과 선생님들은 들어올 때마다 "그 반은 수업도 참 잘된다.", "애들이 똑똑하다."며 칭찬해 주었다. 나를 따르는 아이들, 적당히 말썽 부리는 아이들이 고루고루 섞여 있는, 너무나도 이상적인 학급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어쩐지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것처럼 불편했다. 썩 괜찮은 하루하루들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학교 옮긴 첫 해에 이 정도면 선방을 하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보통 학교를 옮긴 첫 해에는 다이내믹한 고통이 따른다. 일이 힘들든, 아이들이 힘들든, 그 두 가지가 같이 오든. 그 해에 많이들 아프다. 나는 매번 그랬다.) 마음 한편이 자꾸 저릿저릿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학생 자치부에서 학급 회의를 하라고 안건을 정해준 날이었다. 아직 너무나도 앳된 열네 살의 아이들은 모두 앉아 앞에 나와있는 반장과 부반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칠판에 안건을 적어 두고, 교실 뒤에 가서 앉았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내가 느낀 그 불편한 마음이 어디에서 온 것이었는지를.
조금 무거운(?) 이야기라 여러 편에 내용을 담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