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이 너무해 (완)

(축구를 좋아하는 현우를 위하여)

by 안녕

“선생님! 안녕하세요!”


밝게 인사를 건네던 현우는 들입다 내 옆에 가까이 서더니


“저 키 많이 컸죠?”라며 친밀하게 말을 건넨다. 웬만한 아이들보다 큰 편인 나는


“현우야!? 어딨어? 안 보이는데?” 하고 장난을 쳤지만 실제로 중1 때보다도 많이 큰 현우를 보면 놀리곤 했다. 처음 만났을 당시엔 쪼꼬만 어린아이 같았는데, 복도에서 얼핏 얼핏 만나는 녀석을 보면 이제 제법 어른스러운 모습이 보이곤 했기 때문이었다.


현우는, 늘 한결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현우는 언제고 만나면 알은체를 했다. 사춘기를 지나는 녀석들은 아무리 제 담임이었어도 학년이 바뀌어 가르치지 않으면 먼저 나서서 인사하는 법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현우는 언제나 먼저 인사를 했다. 내가 지나가면 나를 찾아와서 인사를 했다. 가끔은 놀라게 하는 장난을 하기도 하고, 무거운 짐을 들고 지나가는 나를 도와주는 척하면서 달아나 버려 순간적으로 ‘욱’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녀석의 반이 있는 복도를 지나갈 때면 외롭지 않았다. 언제고 달려와 인사하고 장난치다 사라지는 현우를 보며 내심 고마웠던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말하면 잔소리만 했던 담임이었다. 칭찬 한 번 제대로 해준 적 없었다. 뭔가를 잘하면 단점을 먼저 찾아 지적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다, 너를 위해서, 네가 더 멋진 리더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하는 말이라고 포장하고 엄하게, 깐깐하게 굴었다. 당시엔 당연히 그게 잘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학년이 바뀌고 담임 선생님도 바뀌자, 현우는 한결 편해 보였다. 극도의 꼼꼼함으로 무장한 나보다 조금은 여유롭고 자애로운 선생님을 만나 날개를 단 듯 행복한 2학년 생활을 하는 듯 보였다. 현우에 대한 선생님들의 평도 전체적으로 더 긍정적으로 변했다.


“현우가 없으면 그 반 수업이 안 돼.”

“현우가 반응을 해주니까 힘이 나.”

“현우는 수다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현우가 있어야 분위기가 살지.”


급식실에서 밥을 먹으면 아이를 향한 긍정적인 이야기들을 오갔다. 승부욕이 여전하여 가끔 그 때문에 ‘일’이 있는 것 같이 보였으나, 적어도 1학년 때보다는 훨씬 여유롭게, 편안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아 한시름 놨다.


그러던 현우의 진짜 매력을 발견한 것은 24년 2월, 학기가 시작하기 일주일 남았던, 그즈음이다.


어쩌다 보니 함께 올 초 한 번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 학생회장과 함께 ‘신입생 나들이‘를 준비하면서 기획단의 한 명으로 현우를 섭외했던 것인데 현우는 생각보다 능숙하게 행사를 진행했다.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신입생들에게 각각의 장소를 소개하고 적절한 퀴즈를 내며 1시간을 꾸려 나가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라며 엄살을 피워댔지만 현우는 현장에서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1학년 후배들에게 존댓말을 깍듯하게 쓰며 장소마다 애정을 담아 소개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새삼 기특했다. 2년 전만 해도 아직은 초등학생 같았는데 2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은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성장한 것을 보니 뭉클하기도 했다.



어쩌면, 나를 만나지 않아서

나의 편견에서 벗어나

제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선생님들을 만나서 더 날개를 활짝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니 조금 많이, 미안해지기도 했다.





편견을 가지지 않는 교사라고 굳게 믿었으나, 돌이켜보면 나는 ‘내가 맞다’고 하는 이상적인 학생의 모습을 그려 놓고 그 기준에 아이들을 맞추며 지내온 것 같다. 특히 조금만 더 지도하면 충분히 모범적으로 바뀔 것 같은 아이들에게는 더 나만의 잣대를 들이대며 아이들에게 은근한 강요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같은 모습이라도 내가 살아온 경험치를 근거로 판단하기 일쑤였다. 교육학 서적에선 언제나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라고 했다. 나 역시 늘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수십 년 간 인이 박힌 가치관을 쉽게 바꿀 수는 없었다. 난, 언제나 색안경을 낀 선생님이 아니었을까 싶다.


시끄러운 것을 싫어해서 시끄러운 아이들을 보면 늘 조용히 하라고, 말하지 말라고 말하기에 급급했다.

조용하고 차분한 것을 좋아해서 그런 아이들을 보면 마음 한편에 괜스레 뿌듯함이 들어 칭찬을 자주 했다. 넌, 참 차분하다고.

목소리가 크며 제 주장이 분명한 아이들을 보면 ’ 네 생각만 옳은 것은 아니니 주변을 둘러보라’고 가르쳤고,

친구들을 이끌며 제 리더십을 펼치는 아이들을 보면 칭찬하기 전에 늘 ‘주변 친구들도 네 생각이랑 같대? 정말 그렇게 하고 싶대?’라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공부 안 하고 딴짓하는 아이들을 보면 “앞으로 어떻게 지내려고 그러니? “라며 잔소리를 했다.


그 모든 기준은 ‘나‘ 였다. 옳다고 생각했던 일엔 지독히 꼼꼼하게 기준을 적용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완벽한가? 그럴 리가. 늘 번민과 고통의 108배를 하는 나다. 나라는 인간이 완벽할 리 없기에 아이들을 지도했던 내 기준도 사실은 언제고 뒤집힐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많이 힘들었다. 왜?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기본 아니야?라고 말하며 방어했다. 요즘 애들은 철이 없고, 개념이 없고, 예의가 없다며 선을 긋기도 했다. 편애를 한 적 없다고 자부하며 살았지만, 내 생각일 뿐 아이들이 느끼는 것은 달랐을 수 있다.


현우의 경우도 그렇다.

내가 담임이었을 때에는 아이의 장점 100가지를 칭찬하기에 앞서 단점 한 가지를 더 부각해서 바라봤다. 사실 나름 생각도 깊어 내가 힘들어할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적도 많았는데 난 아이의 겉만 보고 속을 헤아리지 못했다.


지금은 모든 선생님들에게 인정을 받는 현우를 보며 생각한다.

아이는 변하지 않았다. 그저, 그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변한 것이라고.





정년 퇴임을 목표로 하는 나는 앞으로 적어도 20년 넘게 아이들을 더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는 지금까지 만났던 아이들보다도 더 다양한 방식으로 나의 상식을 넘는 아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자신할 수 없지만 노력을 할 작정이다.


그때에는 절대 내 기준으로 나만의 편견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지 않겠다고.

힘들더라도, 어렵더라도 그 ‘편견’ 잠시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아이들을 바라보려, 노력하겠다고.

그렇게 조금씩, 더 나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2학기가 시작됐다.

졸업을 앞두고, 2년 전에 쓴 타임머신과 함께 녀석의 고1 생활을 축하하는 편지 한 통을 꼭, 적어서 보내줄 것이다.

미안했던 만큼, 그리고 고마웠던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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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