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반장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회의를 이끌어가는 현우가 자꾸만 눈에 보였다.
반장이 하려는 말을 막아서며 제 말을 하거나, 의견을 내려고 하는 아이에게 "지금은 다른 이야기 중이니까 안돼."라며 단호하게 제지하기도 했다. 제 생각과 다른 의견이 나오면 "그건 아닌 것 같아."라며 그 자리에서 반대를 하니, 아이들의 목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들리지 않았다. 결국 결론은 아주 소수가 원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흐뭇하던 미소가 조금씩 사라진 것은 그즈음부터였다. 조금씩 못마땅한 마음이 들어 팔짱을 끼고 회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적어도 내게 '팔짱을 낀다'는 것은 '지켜보겠다'는 의미. 다소 부정적인 마음이 든 것임에 틀림없다.
워낙 눈치가 빠른 반장은 나를 살피며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 자, 자~ 얘들아. 그래서 이제 다른 의견은 없어?
하지만 이미 분위기는 살짝, 가라앉은 상태.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때 한 마디를 거들고 싶었다. 지금 이게 회의야?라고, 일침을 가하고 싶었다.
학급을 경영하면서 가장 중심으로 두었던 것은 '서로 긍정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이었다. 우리 모두가 완벽할 수 없다. 그렇기에 크든 작든 실수를 하며 살아간다. 앞으로 세상을 살며 수많은 실패를 거듭할 아이들에게 적어도 내가 꾸리는 학급에서만큼은 '그래도 괜찮아'라는 말을 서로 주고받게 하고 싶었다.
회의도 마찬가지. 엉뚱하거나 이상한 의견이 나와도 좋았다. 제 의견을 손들고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용기인지 칭찬해 주는 게 맞다고 봤다. 그렇게 조금씩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물론 내 성에 차지 않는 생각이어도 일단은 긍정했다.
- 아,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반장과 부반장에게는 조금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늘, 반장과 부반장이 주변 친구들을 헤아리길 바랐다. 학급 내에서 어쨌든 다른 아이들보다는 조금 더 권력이 있는(요새 애들은 그걸 권력이라고 느끼지도 않지만) 존재이니 학급 아이들에게 좀 더 배려하는 마음, 먼저 다가가는 마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마음을 갖길 바랐다.
나와 잘 맞는 반장과 부반장은 내 뜻을 잘 따라주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조금 힘들었다. 그래도 굽힐 수 없었던 것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매년 반장과 부반장이 뽑히면 꼭 한 번은 면담을 했다. 나의 철학을 공유해야 한 학기가 잘 운영되었으니까.
그 해에 현우와 반장에게 더 큰 기대를 했던 것은 둘은, 아니 특히 현우는 내 가치를 잘 이해해 준다면 정말 괜찮은 리더가 될 수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현우는 아이들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 큰 목소리, 유쾌한 말솜씨, 그리고 열성적인 수업 태도.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아이에게 적절한 리더십까지 겸비된다면 완벽하다고, 믿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우는 내 기대와 조금씩은 다르게 행동했다.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현우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장난치는 것을 무척 좋아해 수업 시간에도 쉴 틈 없이 개입했다. 재밌는 이야기이든, 다른 친구들이 모르는 상식 같은 것이든 툭툭, 말을 던졌다. 그럼 나는 그게 그렇게 불편했다. 통제욕이 강한 나에게 현우는, 잔잔한 수업에 돌 하나씩 던지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또 신기한 게 공부를 할 땐 누구보다 집중했다. 글쓰기 수업을 할 때의 일이다. 한 페이지 가득 글을 쓰는 게 힘들어 모두가 포기할 때 현우는 끝까지 글을 완성해 제출했다. 칸을 채우기 위해 듬성듬성 쓴 글씨가 아니었다. 여백 하나 없이 빼곡하게 글로 가득 채운 녀석의 학습지를 보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런가 하면, 승부욕이 너무 강해지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당시 우리 반 아이들은 체육을 잘하지 못하는 편이었는데 단체 경기에서 지면 그 속상함을 이기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그 속상함은 흐르고 흘러 아이들 전체에게 닿고, 급기야는 나에게까지 닿았다. 아무리 괜찮다, 고 위로해 줘도 스스로 감정을 정리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도 아주 많이 '시끄러워' 힘들었다. 외향성이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면 '현우'가 아닐까 싶을 정도. 늘 이야기보따리가 한 바가지였다. 아침 조회 시간부터 점심시간, 그리고 종례 시간까지 현우는 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조용히 할 타이밍에도 끊임없이 말을 했다. 그 말 중엔 가끔 내 심기를 거슬러 무척 혼이 난 경우도 있다. 중1 남학생의 호기심이 닿는 그 끝엔, 수업 시간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이 있었으니까.
한 번은 외부체험학습을 나가며 전세버스에 탄 적이 있다. 내 뒤에 앉아 (보통 나는 기사님 뒷자리에 앉는다) 계속 노래를 듣고, 게임을 하다가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통에 다른 반 여자애가 현우가 너무 시끄럽다며 조용히 시켜달라고 한 적도 있다. 5분, 아니 10분 동안 조용히 있으라는 미션을 주었지만 현우는 늘, 실패했다. 녀석에겐 그 시간이 영겁의 시간일 테니.
조금씩 조금씩 쌓아 올린 현우의 이미지는 어느새 모범생이 아니라 장난꾸러기, 말썽쟁이, 수다쟁이로 각인되어 버렸다. 나는, 그 옛날 내가 학교 다닐 때 목소리 크며 까불거리고 다른 사람에겐 장난이라는 이유로 상처를 주며, 제 뜻대로 밀고 나가려고 했던 수많은 친구들의 모습을 현우에게 덧입혀 버렸다.
현우가 열 가지 좋은 일을 했었어도 한 마디 말실수를 하면 엄하고 단호하게 혼을 냈다.
"반장(2학기에 현우는 반장이 된다)이 그렇게 말해도 돼? 다른 친구들을 배려해야 하는 거 아냐?"
현우가 뭔가를 제안하면,
"다른 애들 이야기는 들어봤어? 그거 혹시 반장과 부반장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냐?"
혹은 나를 도와주려고 학급 분실물을 애써서 찾아온 순간에도
"아. 고마워. 고마운데 교무실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 안 되지."
라며 나무랐다. 당시, 다른 반 선생님들이 현우는 너무너무 괜찮다고, 멋진 아이라고 칭찬해 주실 때도, 현우가 얼마나 수업 중에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라며 반박하기에 급급했다. 그때는 그들의 칭찬이 '속도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무척이나 어리석은 벽창호였다.
나는 누구인가. 담임 아닌가. 중1 때 처음 만난 담임.
그런데 그 담임이 자꾸만 현우의 안 좋은 모습만을 보려고 있었다.
한쪽으로 치우친 눈은 마음으로, 마음은 머리로, 그렇게 다시 눈으로.
풀리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았다.
그렇게 현우는 열심히 반장과 부반장으로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담임 선생님의 아주 사소하고 섬세하며 구체적이고 지독한 잔소리를 들으며(나의 꼼꼼함은 이렇게 나쁘게 발현되기도 한다. 하.. 나란 인간...), 1년 동안 씩씩하게 버텼다.
그리고 올해 2월. 현우를 다시 만났다.
덧: 쓸수록 부끄럽네요. 내일 개학입니다. 현우를 보면 마이쮸라도 하나 줘야겠습니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