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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녹차라테

by 안녕

제자를 만났다. 책 속의 주인공인 녀석과 진즉부터 만나려고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미루고 미루다 오늘, 만나게 되었다.


나는, 아이의 학원 등원 시간에 맞춰 겨우 짬을 내었고, 제자는 어려운 시간을 내어 먼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와 주었다.


열여섯 살에 만났던 아이는 어느덧 스물여섯이 되었고 나는, 10년 전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비교적 편하고 자유롭게 쏟아낼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 꿈꿔왔던 장면이었다. 마음을 나누며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는 그런 사이. 선생님과 학생을 넘어선 그런 사이.


이상하게 다른 아이보다도 성희를 만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끝도 없이 넓을 것 같은 마음밭은 내가 어른임에도 힘듦을 더 털어놓고 싶게 만든다. 성희의 힘이다. 아마 녀석은 모르겠지.


바쁘고 정신없는 주간이 끝나 미처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내 앞에 <오직 쓰기 위하여>라는 책과 편지 한 통을 내민다. 성희와 헤어지고 버스를 기다리며 읽노라니 또한 너무 한 장 한 장 아까워서 넘기지 못하고 얼른 가방에 넣었다.


편지엔 마음이 가득해 흘러넘치는데 내가 과연 그런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하고 한참을 되뇌어 보았다.


구글에 내 책 이름을 검색하면 이곳이 나타난다며, 이곳에 드러나 있는 나의 글을 하나씩 하나씩 읽었다는 부분에서는 조금 많이 부끄러웠다.


일기장은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법이니까.


만약, 이 글을 성희가 또 본다면 꼭 하고 싶은 말.


우리, 나름의 삶을 버티듯 견디듯 즐겁게 산 후, 만나자.

네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더라도 넌, 멋진 사람이니 망설이지 말기.

나 역시 뒷 이야기를 끝까지 마무리 짓기.


그리하여 우리 다시 만날 어느 여름이나 겨울에 못다 한 즐거운 이야기를, 커피와 녹차라테와 함께 나누기.




사진: UnsplashMatcha &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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