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가을, 몰디브.
"살려 달라 구걸하진 않겠어. 다만 분할 따름이라고, 젠장."
상어는 꼬리지느러미를 신경질적으로 휘저으며 몸을 부메랑처럼 꼬아 얼굴을 내게서 돌렸다. 요리사가 회칼로 살을 발라낸 듯한 아가미가 거칠게 뻐끔거렸다.
녀석은 어부도 낚시꾼도 아닌 한심한 여행객에게 낚여 적잖이 분하고 불명예스러운 눈치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나는 낚시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고, 배낚시는 처음이었다. 줄낚시는 어떻게 잡는지, 줄을 어떻게 풀어 어디까지 미끼를 내리는 지도 몰랐다. 고기를 낚을 기대는 애초에 없었고, 그저 석양을 구경하며 줄낚시를 경험해 본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설레고 즐거운 어른아이였다.
바람은 파도를 따라 왔고, 배는 파도의 율동에 맞춰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엔진을 끄고 닻을 내린 배에 부딪치는 파도소리 외에 주위는 조용했다. 함께 승선한 외국 여행객들이 가끔 소리를 지르며 고기를 낚아 올리면 부럽게 쳐다보며, 어쩌면 나도 작은 물고기 한 마리쯤 낚을 수 있지 않을까, 멍청한 물고기가 어설프게 낚여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내 낚싯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다 아래로 해가 지고 선원들이 돌아갈 채비를 할 무렵 상어를 낚기 전까지 조그만 열대어 한 마리를, 그것도 입으로 미끼를 문 게 아니라 왼쪽 몸통이 낚시 바늘에 찔려 낚아 올린 것이 전부였다. 운도 없지, 낚시 바늘에 배가 찔릴 건 뭐람.
숙소에서 제공하는 배낚시 무료체험에 참가해 한 마리를 낚아본 나는 충분히 만족했으며 슬슬 호텔로 돌아갈 생각에 들떴다. 나는 머릿속으로 온몸에 구수하게 묻은 바다냄새와 햇빛냄새를 닦아낼 시원한 샤워를 상상했고, 저녁식사로 먹을 푸짐한 뷔페 메뉴를 기대했다.
붉고 찬란한 석양은 갈 길을 서둘렀다. 바다 한가운데서 어둠은 육지보다 빨리 찾아오고 더 짙게 흩뿌렸다. 바닥에 몸을 누이고 눈을 감듯, 세상은 뜨거운 제 몸을 쉬이기 위해 눈을 감았다. 선내를 제외하고 세상은 깜깜해서 바다는 한없이 좁아졌고, 동시에 한없이 멀어졌다. 흐드러지게 핀 별을 보며 군대에서 외워 뒀던 별자리를 따라 그려보는 순간 녀석은 내 오래된 낚싯밥을 물었다. 아이 주먹만 한 생선 쪼가리는 점점이 뜯기고 물에 불어 제 역할도 못 할 미끼였을 텐데 물다니 참 지지리 복도 없다.
처음 입질이 왔을 때 나는 유일한 수확이던 작은 물고기 정도의 크기를 예상했다. 입질도 약하고 당기는 맛도 없었으니까. 이렇게 힘없이 딸려 오는 놈이 펄떡펄떡 힘이 무지막지한 상어일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잠깐 말로 하자. 아 씨, 기다려 보라니까!"
수면에 거대한 회색빛 등지느러미가 언뜻 스치는 모습을 보고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현지인 선주를 불러 낚싯줄 끝을 가리켰더니 곧장 큰 동작으로 서두르며 나머지 선원 둘을 불렀다. 그 악명 높은 상어가 이렇게 어리바리한 낚시꾼의 줄에 힘없이 딸려 올라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던 나는 현지 뱃사람이 샤크shark라며 난리를 부리는 통에도 어리벙벙 어쩔 줄 몰라 바지에 오줌을 지린 아이처럼 낚싯줄만 잡고 서있었다. 손전등을 비추고 상어를 묶을 밧줄을 챙기고 뜰채를 준비하는 등 파티라도 여는 듯 갑자기 선내가 부산스러워졌다.
이 정도 힘없는 입질이라면 물 위로도 쉽게 들어 올릴 수 있을 줄 알았으나 수면으로 떠오른 녀석의 크기나 공포스러운 아가리를 보고는 감히 치기를 부릴 수 없었다. 저 정도 아가리를 벌린 상어를 물속에서 만났다면 내 팔 쯤은 거뜬히 삼킬 수 있을 듯싶었다. 어차피 상어고기를 먹을 생각은 없으니 낚싯줄을 끊을까 생각했지만 한껏 들뜬 선주와 선원들은 화가 잔뜩 난 상어를 끌어올릴 생각임이 분명했다. 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조절하며 홀로 상어와 대치하는 동안 그들은 겁도 없이 밧줄을 상어 가슴지느러미에 묶으려 했다.
“말로 하는 건 좋아요. 하지만 놓아드리는 건 글쎄요. 낚싯바늘을 빼 드려야 하기도 하고요, 선장은 아무래도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끌어올릴 생각인 것 같아요.”
뱃마루에 내평개쳐진 상어는 격렬히 몸을 비틀며 저항했다. 몸을 요동칠 때마다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고, 바닷물이 얼굴로 튀었고, 사람들은 놀라 저마다 감탄사를 내뱉거나 소리 질렀다.
“가까이 오지 마, 아주 그냥 확! 만지기만 해봐. 이 이빨로 다 물어 뜯어버린다.”
강하게 저항하던 상어는 숨 쉬기가 힘들었는지, 나와의 줄다리기로 힘을 소진해서였는지 금세 거친 몸짓이 잦아들었다. 이제 됐나 싶어 선원 한 명이 낚싯바늘을 빼려 몸을 만지자 갑자기 몸을 펄떡였다. 가까이 모이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일시에 물러설 만큼 빠르고 강한 몸부림이었다.
“쳇, 겨우 이 정도에 겁먹는 녀석에게 내가 낚이다니. 너 앞으로 바다 조심해. 난 잡혔지만 내 형제들이 널 가만 둘 줄 아나?”
“글쎄, 저는 ‘상어 님’을 낚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니까요. 미끼를 던진 건 죄송합니다만, 별 생각 없이 그냥 내리고 있었을 뿐인데 왜 무셨어요. 아시다시피 배에 올린 것도 제가 아니고요.”
상어를 생포한 건 난데 오히려 내가 낚인 듯 주눅이 들었고, 미안해했고, 조용히 용서를 구했다. 속으로는 지금이라도 상어를 놓아주었으면 했지만 겉으로 나는 대담한 척했고, 상어를 낚은 ‘오늘의 영웅’인 듯 굴었다.
“살려 달라고 하진 않겠어. 내 동료 중에 살려달라고 애원했다가 지느러미가 모두 잘려나간 채 바다에 도로 던져진 놈이 있었는데, 사지가 잘렸으니 어쩌겠어. 뒤뚱거리고 바동거려도 점차 해저로 가라 앉아 모래바닥에서 무기력하게 뒤척이다가 결국 죽었다고."
“그런 일이 있었다니 유감입니다.”
“왜 잔인하게 지느러미를 자르고 살려주나 원망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 지느러미를 네들 사람은 즐겨 먹더구먼. 심한 동네에서는 지느러미 잘린 상어가 수없이 던져져서 바닥 일대가 그대로 공동묘지가 되기도 했어. 상상해 보라고. 손발 없이 바닥을 기는 우리 모습을.”
그러고 보니 지느러미가 유난히 크고 통통해 보인다. 샥스핀, 저걸 먹는구나. 중국집 메뉴판에서 봤던 요리의 모습을 더듬어 기억해내려고 했고, 이어서 지느러미가 잘려나간 상어의 몸통을 상상했다. 녀석이 내 눈길을 의식했는지 꼬리지느러미를 크게 흔들자 사람들이 다시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지느러미 끝은 칼처럼 날카로웠다.
우리 대화를 들었는지 선원이 작게 ‘쉬쉬~’하는 휘파람 소리를 내며 화가 난 상어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엄마가 아이를 재우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행동이 통할 리가 없기에 장난인 줄 알고 구경했는데 놀랍게도 상어는 곧 잠잠해졌다! 잠든 듯 진정되었고, 심지어 입에 낚싯바늘을 빼는데도 움찔거리지 않았다. 현지 어부들이 경험을 통해 깨우친 상어 진정시키는 방법인 걸까.
“저기, 상어님. 내 말 들려요? 괜찮아요?”
“나아쁜 노옴, 너어 나아중에... 그러언데 왜에 이렇게 졸리냐아.”
말이 둔했다. 기절했는지 잠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선원의 조처와 상어의 반응은 놀라웠다. 나는 호기를 부려 상어에게 다가가 등을 꾹 눌러 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녀석의 몸은 보호막 같이 미끄럽고 끈적끈적한 체액이 감싸고 있었다. 매끈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비늘 없는 피부는 돌처럼 오돌토돌했고, 살은 탄력 없이 눌러졌다가 메모리폼 베개처럼 서서히 제자리로 올라왔다. 녀석은 미동도 없었다.
아가리에서 낚싯바늘을 뺀 선원이 양 가슴지느러미를 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상어는 아무 저항도 못하고 축 늘어진 채 선원의 팔에 매달려 흔들렸다.
“에이, 말 많은 양반. 살려주면 될 거 아니요. 뭘 그리 겁을 주고 협박하고 말이야. 이렇게 얌전하실 거면서.”
나는 그제야 옆에 서서 핀잔을 주고, 무거운 상어를 함께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코를 골지도, 숨을 쉬려 아가미를 벌름거리지도 않은 채 녀석은 부상당한 패잔병처럼 멍하니 사진에 찍혔다.
승선했던 관광객들 중 원하는 사람 몇몇이 사진을 함께 찍도록 지켜보는데 선주가 다가와 살려주겠냐고 넌지시 물어왔다. 귀국 비행기에 태워 가져갈 수도 없고, 상어고기에는 관심이 없으며, 관상용으로 어항에 넣을 수도 없기에 물론 살려주겠다고 했다. 무뚝뚝한 선주는 별 다른 의견이나 표정 없이 선원들에게 지시했다.
“저기요, 제 말 들려요? 전 분명히 살려드립니다. 동료들에게도 분명히 일러두세요. 저는 당신들에게 호의적이고, 두려워하고, 존경하고, 샥스핀은 한 번도 입에 넣어본 적도 없다고요.”
“......”
상어는 여전히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불안했다. 살려주는 걸 생색내고 보내줘야 뒤탈이 없을 텐데. 선원 둘이 상어를 뱃전으로 가져가 신호에 맞춰 바다로 던졌다. 힘없이 잠기던 녀석이 막 시야에서 사라질 무렵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모습이 언뜻 보인 듯했다. 서둘러 말했다.
“잘 가요! 분명히 전 살려드렸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상어는 답이 없었다. 분명히 의식이 돌아온 듯했으나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면죄부를 받았다고 안도했으나 그건 나만의 생각인지도 몰랐다. 귀국 후, 꿈에라도 등장해 살려줘서 고맙다고 말해주길 기대했으나 꿈에도 상어는 나오지 않았다.
그 후로 웬만해서는 바닷물에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