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겨울, 호주 베이트만스베이
에덴동산과 같은 이름이지만 천국인지는 모르겠던-나 같은 악마가 과연 천국인들 제대로 알아보기나 하겠냐만- 에덴Eden과 모루야Moruya를 지나 차는 베이트만스베이Batemans Bay에 들어섰다. 쿵짝이 맞는 다국적 친구들과 함께 십시일반 봉고차를 렌트해 시드니에서 내륙으로 애들레이드까지 갔다가 해변으로 멜버른과 그레이트 오션로드를 지나 빙 둘러 돌아오는 5000km 대장정이 얼추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다.
2월 한낮의 해는 남극에서 멀지 않은데도 매정하게 따갑고 건조하다. 한국이야 한겨울이겠지만 변기 물이 거꾸로 도는 남반구 호주의 2월은 한여름이다. 이맘때 호주 사막을 여행하던 관광객의 사망 기사를 접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바다를 깊숙이 들여 양팔로 보듬은 항구 주위에 보트와 어선이 노닐었다. 수심은 얕았고, 저 멀리 요트가 창을 세운 중세 기사처럼 높이 솟은 돛대에 열을 맞춰 늘어서 있었다. 멀리 둥그렇게 물 위로 올라온 모래밭이 목가적 풍경에 방점을 찍었다. 창밖 경치에 매료되어 차를 세우고 놀다 가자고 말하려는 찰나, 도로와 이어진 부두에 시조새처럼 크고 기이하게 생긴 생물체들이 평화로운 마을과 이질적으로 툭 도드라져 모두 차에서 내려 구경하러 갔다.
펠리컨이었다. 어릴 적 사진으로 보고는 고약한 혹부리 영감이라 치부했던 새. 가까이 다가가기 두려울 정도로 크고 부리는 날카로웠다. 이십여 마리가 어선 부근의 부둣가 바다에 몰려 있었는데 서로 날개가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면 먼저 못 참는 놈이 퍼덕퍼덕 날갯짓을 크게 해서 제 영역을 넓혔다. 큰 펠리컨은 날개를 펴면 성인이 양팔을 편 정도로 컸다.
펠리컨의 시선은 부둣가의 어부들에게 쏠려 있었다. 풍어로 돌아왔는지 어부 서너 명이 물고기가 잔뜩 든 플라스틱 박스에서 물고기를 한 마리씩 꺼내 능숙하게 살점을 발라내고 나머지 머리와 뼈는 펠리컨에게 던져주고 있었다. 물고기는 적어도 60cm, 큰 놈은 1m는 족히 되어 보였다. 살을 발라냈다고 해도 저렇게 큰 덩어리는 상어나 악어가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한입에 받아먹을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어미새를 기다리는 둥지의 새끼들처럼 펠리컨들은 목을 빼고 던져진 생선뼈를 정확히 입으로 받아 삼켰다. 아무리 큰 생선뼈라도 펠리컨은 몇 번이든 부리와 머리를 움직여 꾸역꾸역 큰 덩어리를 목으로 넘겼다. 생선뼈를 삼킨 펠리컨의 목은 앞으로 축 늘어졌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처럼 생선의 형체를 그대로 드러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어촌에서 위아래가 이어진 남색 방수복을 입은 어부들이 그 자리에서 살을 발라내고 생선뼈를 던져주는 모습과 제 몸길이의 반 이상은 되어 보이는 먹이를 목을 뻗어 받아먹는 큰 부리의 펠리컨들을 지켜보는 건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기이한 광경이었다.
- 서로 먹으려 다투는 것 같아 보여도 우리에게는 먹이를 나눠 먹는 나름의 질서가 있다고.
내 어릴 적 첫인상의 혹부리 영감처럼 펠리컨도 지독한 욕심쟁이일까 궁금해하며 받아먹는 광경을 보는데, 무리에서 떨어져 부둣가 턱에 앉았던 펠리컨이 내게 말했다.
- 아, 그렇군요. 펠리컨 님들을 처음 보기도 하지만, 커다란 생선뼈를 받아먹는 모습이 놀라워요. 쥐라기 시조새 같은 생김새와는 달리 먹이를 사이좋게 나눠 드시는군요.
- 그 말은 실례인데, 흠. 어딜 봐서 우리가 시조새를 닮았다는 거지.
목에 지느러미가 접힌 생선 형상이 그대로 드러난 채로 아랫 부리에서 이어진 주머니가 축 늘어져 있었다. 이 분은 이미 드셨구나. 생선뼈나 지느러미가 아무리 날카로워도 저 목을 찢거나 뚫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입을 움직여 말할 때마다 생선 형상의 목 주머니가 움직여 혹시 생선이 아직 살아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 그건 말이야, 마치 당신들 인간에게 '생긴 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닮았는데 잘도 기타를 치네'라는 말과 같은 표현이라고.
- 확실히 실례군요. 죄송합니다.
- 노 워리스(No worries, ‘괜찮다’는 호주식 표현). 에헤이, 저 양반은 또 뭐하러 여기에 오는 거야.
시조새, 아니 펠리컨이 가리키는 바다를 보자 사각형의 박스 같은 것이 천천히 부두 쪽으로 물결에 밀려오고 있었다. 마름모의 한쪽 끝에 꼬리가 달려있어 바다에 비친 갈색 연 같아 보이기도 했다. 점점 가까워 오는, 떠밀려 오는 게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그 마름모 '양반'은 박스나 연이 아니라 가오리였다! 꼬리 길이까지 족히 3m는 될 듯한 거대한 가오리가 서서히 다가와 펠리컨 주위를 돌았다. 천천히 펠리컨 주위를 선회하는 영법은 바다를 헤엄친다기보다는 날아다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싶었다.
- 어이, 오늘도 점심 나눔 봉사가 있는 날인가 보네.
- 그렇소, 여기는 별 문제없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 알겠어. 성격 사나운 몇몇 펠리컨에겐 항상 신경이 쓰여서 말이야.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연락 달라고.
가오리는 펠리컨들의 소란에 무슨 일인가 싶어 불구경 나온 이웃처럼 느릿느릿 무리 아래를 한 바퀴 크게 선회하고는 조용히 멀어져 갔다. 어둡고 거대한 마름모꼴 형체가 유영하는 모습은 당시까지 스노클링을 체험하지 못했던 내게 또 하나의 놀라운 구경거리였다.
- 여기 치안 담당인데 한 번 참견하기 시작하면 영 골치가 아프거든. 가끔은 저 양반 때문에 베이트만스베이 치안이 불안한 건 아닐까 싶기까지 하다니까. 그나저나 점심 식사들은 하셨나?
- 아니요, 이제 곧 점심을 먹을 참이기는 합니다. 이 동네에 추천해주실 맛집이 있을까요?
- 없어. 호주는 웬만한 도시가 아니면 온통 피시 앤 칩스 식당뿐이거든, 쯧쯧. 대신 저 물고기 어떤가. 원한다면 어부에게 당신들 몫을 나눌 수 있는지 물어볼게.
- 생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만, 저희는 괜찮습니다.
매운탕 재료가 아니라면 우리가 생선뼈 따위를 먹을 리가 없잖아.
잠시 후 물고기를 발라내고 남은 뼈를 펠리컨에게 던져주던 어부가 그에게 다가간 펠리컨의 말을 듣더니 우리 일행에게 원하면 물고기를 주겠다고 했다. 큰 덩치와 거칠던 칼질에 비해 타지 않은 뽀얀 피부와 뿔테안경 때문에 지적인 이미지를 풍겼다. 방수복 차림에 칼을 들고 있지 않았다면 야근직 회사원이라고 해도 믿음직할 외모였다. 나는 여행의 총무 겸 살림을 담당 중이었고, 빚을 내 떠나온 여행은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기에-딱히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1센트라도 저렴한 주유소를 찾아 연료 경고등이 뜬 상태에서 무리하게 운전하다 렌터카가 숲길 한가운데 멈춰버린 적도 있었다.-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얼른 좋다고 했다. 어부는 살점을 잘라내지 않은 싱싱한 물고기 한 마리를 번쩍 들어 봉지에 넣지도 않은 채 내 손에 턱 올려주었다. 미끄럽게 꿈틀거리던 물고기는 내 팔뚝보다 길고 굵었으며 뻐끔거리는 입은 내 엄지손가락도 삼킬 수 있을 만큼 크고 검고 깊었다. 예상보다 무겁고 미끄러워 나는 휘청이며 녀석을 떨어트리지 않으려 양손으로 꽉 잡았다.
- 어때, 먹을 만하겠나?
펠리컨이 웃는 낯으로 푸드득 다가오며 물었다. 오리처럼 짧은 발에 물갈퀴도 있었지만 잘도 걷는다. 생선 형상이 덜렁거리는 목 주머니에서 애써 눈을 떼며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덕분에 고맙다고 했다.
과연 이 녀석을 어떻게 요리해 먹을지 고민하며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데, 어부가 원하면 한 마리 더 주겠다며 손질 안 된 물고기를 가리켰다. 내 손에 들린 물고기로도 일곱 명 일행이 충분히 먹을 듯싶었고, 두 마리나 요리할 엄두도 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이렇게 큰 눈을 마주치고 입을 뻐끔거리는 물고기를 두 마리나 들 용기가 없어 웃으며 사양했다.
펠리컨에게 미끌거리는 물고기를 머리 위로 들어 보이며 웃어 주었다. 대화를 나눴던 펠리컨 주위로 생선뼈를 목 주머니에 담은 다른 펠리컨들이 하나 둘 올라와 나를 보고 웃거나 부리를 딱딱거렸다. 그러고 보니, 나는 시조새를 본 적도 없으면서 잘도 펠리컨을 시조새로 오해하고 있었구나.
차를 빠르게 몰아 요리가 가능한 곳을 찾아 헤맸다. 물고기가 네 시간 정도는 신선할 게라고 펠리컨이 귀띔했었지만 점심시간이 지났고, 얼음도 없이 비닐봉지에 넣어둔 터라 운전대를 잡은 일본 친구 나츠키는 길을 재촉했다. 날은 맑고, 신기한 구경도 했고, 살집이 탱탱한 신선한 먹거리도 있어 일행은 모두 들뜨고 즐거워 눈이 반짝였다.
펠리컨이 가르쳐준 대로, 해안 가까운 공원 잔디밭에 전기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BBQ 열판과 테이블이 있었다. 어부의 인심만큼이나 후한 어촌이다. 한 번도 생선살을 발라본 적이 없었지만 나는 작은 과도를 이용해 꽤 그럴듯하게 물고기의 비늘을 벗기고, 양면의 살을 발라냈다. 낚시에 따라가서 아버지가 하던 칼질을 곁눈질로 봤던 게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다. 녀석은 이미 숨이 끊어져 저항하지 않았기에 억지로 죽이지 않아도 되어 죄책감을 어느 정도 덜 수 있었다. BBQ 열판에 호일을 깔고, 식용유를 친 후에 살점을 올리고 소금 간을 해서 익혀 먹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그 맛은 지금도,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게다. 두 마리를 받아올 걸 그랬다. 생선을 다루느라 손에 밴, 씻어도 지지 않던 비린내 따위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잘 익은 살점은 연인의 입술과 같이 달콤해서... 다 먹지 못할 것 같았던 생선 두 쪽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펠리컨처럼 생선뼈까지 먹고 싶었던 걸 꾹 참았다.' 당시 다이어리에는 이렇게 적었더라.
물고기로 배를 채우고 다시 차에 올라 해변을 따라 돌아가는 길에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뉴스에서 크게 다뤄지던 산불bushfire 피해를 입은 폐허를 지났다. 도로 옆의 산은 온통 검은색이었고 여전히 탄내가 진동했다. 호주에서는 시내만 벗어나면 어딜 가나 캥거루며 사슴이며 토끼며 양떼며 검은 소떼 등을 볼 수 있었는데, 검게 그을린 이 산에서는 대체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불타 죽었을까. 나는 검게 그을린 눈앞의 광경에 압도당하고 속절없이 죽어갔을 생명들에 절망했다. 겨우 11일이 지났을 뿐인데도, 그 심한 산불에도 불구하고 대지 곳곳에서 연두색의 새싹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곳에서 죽음과 생명이, 절망과 희망이 같은 한 땅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죽음의 증거이자 나머지였던 재는 이제 새 생명에게 영양분을 제공할 것이다. 새삼 자연의 위대함을 실감한다. 둔감해진 코를 통해 가슴으로 밀려 들어오는 옅어진 탄내가 왠지 구수했다.
'아쉬움과 추억, 아련한 감정의 복합적인 응어리가 목구멍 안을 가득 메워서 서로 대화를 나누기가 힘들다. 글을 적기 힘들다.' 여행 막바지, 달리는 차 안에서 적어 악필인 당시 다이어리는 두서없이 생각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나는 짧은 동안 너무 많은 걸 보고 듣고 느껴 감성적 포화 상태였다. 시야를 스쳐가는 가로수나 표지판처럼 삶은, 기회는 뒤도 돌아볼 틈 없이 지나쳐 버렸다.
*사족 대신 펠리컨 목 주머니. 매거진 '가을 수다의 맛' 모든 이야기들은 여행한 나라에서의 실제 경험담입니다. 동물과의 대화를 제외하면 모든 이야기는 사실과 경험을 바탕으로 합니다.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단순히 재미를 위해 동물과 나누는 대화 형식을 차용했으며, 어떤 대화는 여행지에서 만난 현지인이나 여행객과의 실제 대화를 동물 화자로 대체하기도 했습니다. 어디까지 사실이네, 픽션이네 하나하나 설명하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독자의 자유로운 상상에 맡기고 싶습니다.
*타이틀 그림 by 김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