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퍼먼지 superdust Jan 26. 2022

할머니와 포크

2. 소우주, 나의 일상 -(7)


   백수가 되고 엄마의 심부름으로 오랜만에 시골집에 내려갔다. 오랜만에 시골집에 가니 할머니가 어김없이 반겨주신다. 할머니네에 가기 전에는 무조건 한 가지 다짐을 하고 가야 하는 데 그건 바로 할머니 네에서 무조건 밥을 잘 먹어야 한다는 것. 밥을 안 먹으면 괜히 속상해하시고 걱정하시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먹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나는 보통 군것질을 제외하고 하루에 2끼 정도 먹지만 할머니 집에서는 삼시 세끼가 정해진 룰이다. 집에서는 밥 대신 인스턴트나 배달음식, 빵이나 과자 등으로 자주 끼니를 때우기 때문에 하루에 한 번 쌀밥을 먹을까 말까 하는데 할머니가 인정하는 '밥'은 오직 쌀밥인 듯하다. (그 부분은 우리 아빠와 쏙 빼닮았다.)

  그날은 저녁 8~9시쯤 도착하여 할머니가 저녁을 먼저 드셨으면 과자로 대충 배를 채우고 자려 했으나, 할머니는 내가 도착하자마자 밥부터 걱정하신다. 


"먼지야 저녁은?"

"아직 안 먹었지"

"밥이 있나 모르겠네. 얼른 국 좀 데워야겠네."  


  할머니의 몸이 분주해진다. 할머니는 곧 미역국과 쌀밥, 잘 익은 김치, 몇 가지 반찬이 놓인 상을 내오신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어"

"응 할무니"


  밥그릇 가득 담긴 고봉밥을 보며 '밤에 이렇게 먹으면 살찔 텐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시골에서는 그런 칼로리 계산은 사치다. 나는 말없이 수저를 든다. 미역국을 한 입 먹고는 밥을 말아 후루룩 먹는다. '미역국엔 역시 김치지' 생각하며 김치를 놓아 맛있게 먹고 있는데 그런 내 눈에 할머니의 포크가 스친다. 

  할머니는 얼마 전부터 오른손이 불편해지셨다. 그런 줄은 알고 있었지만 손이 불편해 포크를 쓰시는 줄은 몰랐다. 아기처럼 포크를 쓰시는 모습에 왠지 마음이 서글퍼졌다. 나는 애써 못 본 척 밥을 먹는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가만히 보시더니 포크로 어설프게 김치 한 조각을 집으신다. 그리고 내 밥 위에 김치를 올려주신다. 


"반찬이 없어서 어쩐대"


  어설픈 포크질로 건네준 김치 한 조각. 때론 작은 손짓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온전히 따뜻해질 수 있음을 그날 알 게 되었다. 또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데 비싼 선물이나 화려한 이벤트 같은 대단한 것들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걸.





인스타그램 @super_munji

카카오뷰 슈퍼먼지

이메일 tearofmun@naver.com


매거진의 이전글 백수의 시간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