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눈꽃

이름 붙이지 않은 하얀 고양이에게

by 겨우사리

새까만 밤이었다. 공모전 준비로 타자를 두드리다 꽉 막힌 머리를 환기시키려 산책을 나간 차였다. 가을의 언저리여서일까, 무르익지 않은 노을처럼 푸른 잎에 희끗거리는 나무는 아직 여물지 않은 잎마저 떨쳐내 수북이 진 낙엽이 소리 없이 사무쳐갔다. 기분을 풀어내려던 의도와는 달리, 저물고 사그라지는 게 세상의 순리라고 다그치는 듯한 풍광에 가슴이 쓰려, 나는 안주하려 되돌아가는 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희끄무레한 형체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것은 어느 틈에 내 발치로 다가와 선뜻 내민 손길에 아랑곳없이 뺨을 비벼왔다. 그 아이는 가늘고 여위 발을 내 손끝에 올리고 무엇도 내어줄 수 없는 맨 손을 하염없이 핥아대더니 텅 빈 품으로 올라 똬리를 틀었다.

네게 절실했을 품은,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해 부모의 품을 벗어날 수 없어 무력하고 무능해 품이 모자라거늘… 알면서도 나는 내치지 못하고 너를 품어 집으로 향했다. 그건 아집이었을까, 내 품은 한량없는 정이 내 품은 비분한 정 역시 당신들께 받은 성정일 테니… 그저 낙관이었을까.

“안 되는 거 알잖아.”

비단 먼저 품은 구름 탓은 아니리라. 되레 홀로 외로울 거라며 아이를 연민하던 당신들이었기에. 나는 그에 기대 막연한 기대를 품었으나… 그저 이상이었다. 현실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력으로 어느덧 눈앞에 놓였다. 당장 그 아이에게 그릇도, 방석 하나 내어줄 여분 하나 없었기에.

너는 이를 눈치채기라도 한들 허겁지겁 내 품에서 달아나 구름의 밥그릇에 코를 박고 게걸스럽게 사료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경계만 하던 겁쟁이 구름이 자신의 그릇을 빼앗기자 서슴지 않는 발길질에 이상은 한 순간에 부스러지며 나는 또 한 번 현실을 실감해야 했다.

그날 밤은 춥고 싸늘했다. 길 고양이에겐 익숙했을 서늘함일 텐데… 눈도 오지 않은 10월의 밤은 설웁고 처연하게 저물어갔다.

이름조차 주지 못한 하얀 너에게, 테라스를 어슬렁거리던 너에게 다이소 그릇과 수건을 깐 스티로폼 박스가 내어줄 수 있는 내 전부였다. 그런 너를 본래 자리에 되돌려 놓으라던 당신의 꾸지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든 체만 체 했던 건 알량한 믿음 탓이었다.

‘자주 보면 정이 든다’는 언제 생겼는지 모를 통념처럼 너를 자주 보다 보면 테라스 한 켠을 아무 말없이 내어준 당신이 언젠가 문을 열어주리라. 허나 세상은 그 시간을 기다려줄 만큼 자비롭지 않았다. 고작 사흘 만에 너는 어느샌가 보이지 않았다. 무른 변으로 뒤범벅된 잠자리를 남겨두고서.

병원에 데려가고 싶단 동생의 바람이, 그깟 것이라 거리를 두던 현실이 다시금 나를 옹졸하게 짓눌러, 나는 모질어졌다.

키우지도 않을 거 괜한데 헛돈 쓰지 말고 구름이 간식이나 챙겨주라고.

제 한 몸 건사하지 못해 주머니 속에 처박힌 처지인 내가, 당신이 흘린 땀으로 위세를 떨었다. 돈 아까운 줄 모른다고. 제 분수도 모르고 너를 품어왔던 게 누구였는지 그새 잊은 모양이었다. 동생은 불쌍하지 않냐며 나를 무시한 채 너를 안고 홀연히 병원으로 향했다.

어차피 내가 감당할 짐은 아니었다. 당신의 주머니 속에 안락하게 파고든 내가 짊어져야 하는 건, 자기감정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무능한 자신에 대한 경멸과 책임감 없이 감성을 앞세운 치기 어림에 동생이 보내는 모멸… 고작 그뿐이었다.

그러나 동생도 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명확한 증상을 알길 없이 항생제 주사 하나 고결한 자애는 자본 앞에 초라해질 뿐이었다. 그 행동은 그저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위선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 최선을 다했다고. 나에겐 그러한 위선조차 사치스러웠다.

늦가을에 이른 눈꽃은 찬바람에 하릴없이 떨어진 잎처럼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흙으로 스러지었다. 마지막을 직감하고서도, 나는 끝까지 너를 외면했다. 초연하여야 했다. 고작 일주일도 되지 않은 한낯 짐승이지 않은가. 눈물이 나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마음이 동하지 않은 것 또한 그럴 법한 일이었다. 비정한 인간이 되길, 각오하지 않았던가 비천한 미래도 애정마저 비분한 한없이 낮은 인간이 되겠다고….

그리하여 지금에 이른 나는 한치도 벗어날 길 없이 또다시 무엇도 이룩하지 못한 채로 제자리에…


이는 네가 보내는 원망인가?

아니… 그럴 리가.


비겁한 인간은,

비연하지 비창하지 못해 비천한 존재로 한없이 비루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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