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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Oct 20. 2023

같이 가면 길이 된다

북리뷰



     제목 : 같이 가면 길이 된다

     저자 : 이상헌



     책소개

여기, 일과 일터와 일하는 삶을 끈덕지게 보듬는 책이 출간되었다. 여럿이 같이 가면 길이 된다는 꿋꿋한 믿음 아래, 함께 모색하고 타개하여 연대와 회복의 길로 나아가는 데 값진 화두가 될 문장들을 엮은 《같이 가면 길이 된다》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고용정책국장으로 일하는 이상헌이 치열한 숙고와 엄격한 응시를 대동한 채 이런저런 지면에 꾸준하고도 찬찬하게 써온 글을 한데 모았다.


총 6부로 구성된 책은 ‘이 나라’의 일하는 삶을 구석구석 돌아본다. 저자는 여전히 원형 경기장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얼얼하게 아프면서도 살뜰한 통찰을 건넨다. ‘일하는 삶’과 ‘회복하는 사회’에 관한 섬세히 떨리는 희망의 문장이 우리를 찾는다.

[출처 : 알라딘]   




기억에 남은 한 문장

우리 시대 식인의 풍습 : 일터의 죽음


대통령은 너나없이 산재 사망자 수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한다. 하지만 사망자 수는 거의 줄지 않는다. “우리가 김용균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지금도 매일 3명의 김용균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안녕하다. 목표 달성은 난망하다.


묘책이 없다고도 한다. 당연하다. 가진 것을 모두 쥐고 있으면서 ‘죽음의 일터’를 막을 묘책은 없다. 일터의 안전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사실 손실도 아니다. 위험을 저당 잡고 누리는 잘못된 이익을 바로잡는 일이다. 따라서 정부는 과감해야 한다. ‘경제 기여’라는 자의적 잣대로 기업에 관대해져서는 안 된다. 산업안전에 대한 투자는 기술투자만큼 중요하다. 정부가 장려하고, 필요하다면 강제할 일이다.

p. 50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할 때 : 경제학의 그늘


이런 신념은 때로는 편리하다. 등대를 향해 가진 않지만 옛추억으로는 쉽게 돌아간다. 영국에서는 1980년대의 추억을 끌어올렸다. 물가 상승과 경기 축소가 겹치는 상황에서 영국 정부는 감세가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믿음을 기어코 “450억 파운드 감세” 정책으로 바꾸었다. 세금을 줄이면 가처분소득이 늘어서 소비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는 하나, 문제는 그 혜택의 절반을 상위 5퍼센트가 가져간다는 것. 하위 50퍼센트에게는 기껏해야 총 감세액의 12퍼센트 정도가 돌아간다. 부자에게는 황금 밧줄을, 나머지에게는 새끼줄을 주는 셈이다. 게다가 폭증하는 에너지와 의료비용 같은 민생은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로 조달하겠다고 하니 당장 파운드가 하락하고 금융시장이 흔들리면서 주택담보대출이 중지되거나 주택담보대출 이자율이 치솟았다. 그 결과, 시민들은 감세 몇 푼을 훨씬 넘어서는 주택비용 증가 앞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여론은 당연히 들끓었다. 정부 지지율은 27퍼센트로 떨어지고 거리에는 긴장감이 돈다. 이제 불평등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그만큼 불황의 늪은 깊어지고 있다.

p. 240   




감상평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은 평산책방의 책방 지기님 추천 책이라 궁금해하고 있을 때, 속초에 있는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났다. 그리고 두 번 고민하지 않고 문밖을 같이 나섰다. 하는 업이 업인지라 사람, 사회와 노동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작가는 국제노동기구에서 일하는 분이라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했다.


작가의 표현은 커브볼 같았다. 하지만 맞을 때는 아주 강력한 돌직구였다. 그만큼 아팠다. 우리 사회의 아픈 곳을 돌려서 때리는 것 같았다. 평소 뉴스를 보면서 생각했던 부분들을 더 생각하게 만들어줬다. 속도는 더디고 방향인 제각각인 세상에서 “우리 정말 이대로 살 순 없지 않나”와 같은 문장들은 마음에 와닿았다. 지금 나와는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언젠가 내가 될 수도 있다. 일하다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왜 바람이 되어야 할까. 당연한 건 없지만 당연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루쉰의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라.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이런 길이 많았으면 한다. 그리고 늘 서성거리기만 한다는 ‘희망’이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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