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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Feb 11. 2020

#재회

1. 시한부 선고, 그 끝자락에서

2018년 07월 6일. 금요일



아빠의 소식이 가족들 모두에게 전해지고 하루하루가 바쁘게 흘러가고 있었다. 모두의 생각이 일치하는 건, 아빠를 혼자 둘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요양 시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서울 근교부터, 충청도 쪽, 엄마와 동생 살고 있는 근처 등 여러 곳을 후보로 두었다. 그러던 중, 엄마가 결정을 했다. 통영에서 직접 간호를 하겠다고 한다. 엄마의 결정 덕분에 모두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하지만 아빠가 순순히 엄마를 따라 갈지가 의문이었다. 다들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가능한 많은 가족들을 모아서 주말에 아빠가 있는 집에서 모여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아빠가 반대할 경우를 대비하여 여러 사람들의 한마디씩 거들어 결정하게 만들려 했다. 


가족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것은 오랜만이다. 1년여 전 엄마와 동생이 통영으로 떠난 후, 우리 가족은 함께 하지 못했다. 적어도 명절에는 가족들이 함께 저녁을 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지난 추억에 빠지곤 했는데 1년이라는 시간 동안은 그렇게 하지 못하다가 이 기회에 다시 모이게 된 것이다. 난 이렇게 가족들이 언제 모일 수 있을까 했었다. 몇 년, 몇 십 년 혹은 가족 내의 경조사가 있을 때에나 모일 수 있을까 했다. 비록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우리는 다시 만나기로 했다. 퇴근 후, 엄마와 동생을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났다. 엄마는 아빠가 좋아하는 생선과 이것저것을 챙겨왔다. 답답한 서울을 빠져나가는 길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3시간 이상을 달려 강원도 고향집에 도착했다. 우리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지냈던 곳. 우리의 기억이 남아있던 곳.


집안에 불은 켜져 있었다. 아빠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만났을 때, 우리의 눈앞을 눈물이 가리지 않기를 바랐다. 난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다행히 엄마와 동생은 예전처럼 아빠를 대했다. 그리고 아빠도 엄마와 동생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차분하고 따뜻했다. 지금까지 서로 가지고 있던 감정은 사라지고 우리는 다시 가족이 되었다. 오히려 이전보다 가까워진 듯했다. 


그렇게 우리는 재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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